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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에누 Nov 28. 2024

개밥에 도토리?

Cesar 개밥광고 캠페인

 '개’를 대하는 태도만큼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 또 있을까? 귀여운 손주를 보면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라면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다고 한다. 그러다가 맘에 안 드는 짓을 하는 개망나니를 보면 “저런 개만도 못한 놈“이라면서 혀를 끌끌 차기 일쑤다.

 인간보다 의리 있는 충직한 개로 ‘플란더스의 개’ 나 ‘오수의 개’를 소환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명으로 불린 그곳에 가면 그 실화를 기린 동상도 있을 정도다. ‘개같은 날의 오후’나 ‘저수지의 개들’은 개에 담긴 상징성을 명징하게 묘사하는 국내외의 전설 같은 영화다.

 서양의 경우 개밥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메뉴라고 한다. 요즘 미국 첨단기술업계에서 내로라 잘 나가는 사람들이 먹는 아침 식사는 콘 프레이크가 아니라 '개밥’인 것 같다.

 '자신이 만든 개밥을 스스로 먹다.(eating your own dog food)’라는 표현이 유행이라고 한다. 이 말은 자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나 상품을 성능 향상을 목적으로 시험적으로 직접 사용해 보는 것을 가리킨다.

 통신기업의 원조 벨(Bell)의 한 중역은 “우리가 개발한 개밥이 먹으면 배탈이 나는지, 또 맛은 어떤지 알려면 직접 먹어봐야 한다."라고 목청을 돋우었다고 한다. 용도야 어떻든 '개밥’이란 표현은 썩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결국 소비자를 개로 생각한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광고에서 개밥은 아직 개밥에 도토리다. 개들도 좋아하지 않는 도토리마냥 신경 별로 안 쓰고 대충 만들어도 잘 팔린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런지 애완견 식품은 변변하게 광고의 소재로도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애완견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 프랑스나 남미 같은 곳에서는 개밥은 종종 특별한 광고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쪽의 개들은 사람들과 한 식구처럼 살을 부비고 어리광을 부리는 존재이다. 아파트를 구할 때도 개를 키우기에 맞춤한 곳인가부터 먼저 고려한다고 한다.

 광고영화제를 보기 위해 잠시 머무른 프랑스 칸의 새벽 공원에서도 어김없이 견공들이 사람들의 지극한 서비스를 받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루만지고 먹이고 함께 조깅을 하는 등의 지극정성이 마치 노인들이 귀한 손자를 대하는 것에 비할 바 아니었다.

 그래서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광고작품 중에서는 골 때리는 크리에이티브가 개밥의 이름으로 자주 등장한다


  '입맛 까다로운 개들을 위한 특별한 식품들’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Cesar라는 이름의 애완견 식품을 위한 광고는 아이디어가 정말 기발하다. 그림을 반으로 딱 쪼개어서 이상야릇한 표정을 가진 사람과 강아지의 증명사진 같은 모습이 눈길을 잡아채고 있다.

Cesar 인쇄광고: '까다로운 개들을 위한 특별템'

 자세히 보면 양쪽의 그림들이 예사롭지 않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전체적인 컬러 톤이며 얼굴윤곽, 이목구비의 배치 등이 빼다 박듯이 닮아 있다. 남의 얼굴 가지고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잠시 시선을 멈추지 않을 수 없는 광고다.

 어쨌단 말이야? 당신이 기르는 개가 설령 당신이랑 복제하듯 닮았기로서니 그게 어쨌단 말이야? 개 같은 개는 더 이상 취급하지 않고 사람 못지않은 명견만을 분양하는 페트샵이라는 얘기를 할 참인가? 섣불리 어설픈 속단을 내리기 전에 눈길을 오른쪽 아래 제품로고 바로 위쪽으로 살짝 돌려보자.

 국제광고제에서 수상한 대부분의 광고가 그림으로 할 말을 끝내고 마는 경향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카피도 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녀석이 당신이랑 닮았다고요? 하지만 먹는 것까지 꼭 닮을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거기에 덧붙여서 '특별한 개를 위한 개밥-세자르'라는 슬로건이 광고의 의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준다.  

Cesar 영상광고: '까다로운 개들을 위한 특별템'

 이쯤 되면 광고장이는 인상학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보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성격이나 고민, 취미, 정도를 알아내는 정도는 웬만한 하수도 다 할 줄 안다. 집에서 기르는 개의 골상학에까지 특별한 조예가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해야 고수 소리를 듣게 생겼다.

개밥 광고의 넉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는 개를 위한 애틋한 주인의 마음을 공략하는 광고쟁이들의 재치는 정말 기발하다. 얘기인즉슨, 이번에 새로 나온 개밥에는 닭고기랑 쇠고기 성분이 듬뿍 함유되어 있다는 것인데...​

게다가 녀석들의 까탈스러운 입맛을 돋우기 좋게 야채성분을 곁들여 토핑효과까지 내었다는 얘기다. 그런 사연을 그림으로 전달하는 솜씨가 역시 한 수 위다. 닭의 벼슬이 있던 자리에는 상큼한 야채 이파리로 장식을 해서 닭고기와 야채가 절묘하게 조화된 먹거리임을 우스꽝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Cesar 인쇄광고:  '육류와 야채의 완벽균형'

 또한 쇠뿔 대신에 먹음직스런 홍당무를 박아놓은 너스레는 또 어떤가? 비프스튜 같은 요리에 야채 수프나 샐러드를 곁들인 요리라면 제 아무리 미식에 길들여진 견공이라도 황공한 노릇 아닐까 싶다.

Cesar 인쇄광고:  '육류와 야채의 완벽균형'

 이렇게 마냥 귀하게 키운 녀석이다 보니 버릇이 없는 것은 불 보듯 뻔할 일 아니던가?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서는 시도 때도 없이 앙탈을 부리기 십상일 것이다. 기껏 진수성찬으로 모셔 놓았더니 세자르라는 개밥에 잔뜩 입맛이 길들여진 녀석에겐 금단증세 같은 부작용이 생겨 버렸다. 먹고 싶은 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바로바로 입에 넣어야 조용해진다. 이런 얘기를 절묘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 광고 몇 편도 기억에 남아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속담은 개의 세상에선 어불성설일 터. 메이저 리그나 내셔널 리그 같은 야구경기에 빠져서 식음을 잊은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터이다. 하지만 집에 개가 있을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자기가 굶는 거야 말릴 수 없겠지만 귀하디 귀한 견공의 식사대접에 소홀한 건 용서가 안 된다.

Cesar 영상광고: '사랑을 되찾으세요.'

  맛있는 개밥을 식탐하느라 사정없이 보채는 성질머리 급한 개들의 심리를 카피로 만든 광고가 시리즈로 눈길을 끈다.


 “안 돼, 이 장면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잠시만 참아주란 말이야!” 주인장이 먹이를 보채는 녀석에게 통사정을 한다. 그런다고 대충 봐줄 녀석이라면 광고에 나오지도 않았겠다.
 결국은 항복 선언을 하고 마는 주인장의 절규.  ”알았어, 알았다고! 이깟 플레이 오프, 내년에 또 보면 될 일 아니여?” 광고지면을 반으로 나누어 그런 스토리를 만화처럼 풀고 있다.


 이런 광고도 있었다. 개밥이 떨어진 모양이다. 주인이 임시방편으로 녀석을 어르고 있는 모양인데 영 먹히지를 않는다. ”따끈한 코코아, 포근한 담요, 아늑한 난롯불? 웃기지 말라고!  그 따위가 나랑 무슨 상관이야?” 개의 논리인즉슨 이렇다. “아무리 금강산도 식후경인 줄 알면서 개수작이야?” 우는 아이에겐 떡이 약이요, 보채는 개에겐 세자르가 특효약이란 말씀의 광고다.

Cesar 영상광고: '사랑을 되찾으세요.'

 개를 먹는 인간은 야만족이라는 말로 이 땅의 보신탕 마니아들을 분개하게 했던 브리지트 바르도. 그녀의 나라 프랑스가 견공의 천국이라 불리는 건 전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해마다 복날 즈음이면 쥐구멍을 찾는 이 나라 개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개팔자 상팔자’라는 속담은 더 이상 동양의 것이 아닌 성싶다.

  행복한 개들이 있어 행복한 개밥 광고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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