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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에누 Dec 05. 2024

여자의 눈높이와 키높이

페미니즘의 성을 쌓아가는 패션브랜드 광고들

중년남자 셋이서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숯불 화로 위에선 고기가 맛있게 익고 있었다.     


야, 너네는 언제부터 여자들 눈치 보기 시작했냐?
연애 초반부터였지. 여자친구랑 카페 갔다가 혼났잖아.
무슨?
무심코 커피에 설탕 두 스푼 넣었거든.  '넌 내가 달달이 커피 극혐인 거 몰라?' 하고 불같이 화를 내더라.
난 결혼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했지. 아내가 하루 종일 레이더를 돌리더라.
그럼 결혼 생활의 핵심은 뭔데?
딱 두 가지야. 첫째, 눈치껏 먼저 알아서 해라. 둘째, 아내 말이 곧 진리라고 믿어라.
그렇게 살면 행복하냐?
당연하지. 아내가 만들어준 행복을 빌려 쓰는 거지 뭐.     


새삼스럽게 낯선 풍경도 아니다. 여자와 남자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세상은 온통 우먼파워가 압도하는 듯하다. 특히 이 시대의 상품광고들은 여성들을 설득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그들의 환심을 사지 못하면 절대로 지갑은 열리지 않는다는 절박감으로 온통 여자마음 사로잡기에 매달리고 있는 듯하다. 페미니즘을 부추기는 전위대에는 항상 패션광고가 서 있다.      



페미니즘의 전사-쿠카이

 

쿠카이(Kookai)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캐주얼 브랜드이다. 프랑스의 한 일간지에 따르면 이 브랜드의 파워는 그 나라의 여성부 장관을 능가한다고 한다. 여성의 권익향상에 그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브랜드라는 얘기다. 부적절한 롤리타(Lolita impertinente) 이미지를 표방하면서 비주얼 스캔들을 일으켰던 문제적 광고. 쿠카이 브랜드 광고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더욱 확실하게 구축해 가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나는 내가 입고 싶은 것을 입는다"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여성의 선택과 스타일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2006년의 광고는 '우아한 반항'이라는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한 여성이 전형적인 사무실 복장을 거부하고, 과감한 컬러와 독창적인 디자인의 쿠카이 의상을 입고 도발적인 포즈를 하고 있다. 패션이 단순히 외모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얘기다. 페미니즘 이슈는 더욱 노골화된다. 2010년 캠페인은 "Be Yourself, Be Kookai"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다양한 인종과 체형의 모델을 내세워 여성다움의 기준을 깨려는 시도였다.         

상식을 뒤집는 표현, 난해한 기호적 묘사로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쿠카이가 고집스럽게 들고 가는 광고콘셉트는 '여자 기살리기'이다. 천년의 획을 새로 그으면서도 절대 변하지 않고 그런 메시지는 일관성을 지켜가고 있다. 이렇듯, 집요한 자세로 남성의 권위와 힘에 맞서서 여성우월을 부르짖은 덕분에 이제 쿠카이는 페미니즘의 전사로 우뚝 서 있다.      


남자의 자존심에 침을 뱉으마!      


남자는 오직 여자들에 의해 사육되는 존재에 불과함을 알리는 메시지일까? 어항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내의 모습을 아무런 느낌 없이 내려다보는 여자의 표정이 비인간적인 느낌까지 자아내고 있다.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이 먹이를 뿌려주는 여자의 얼굴에 야릇한 멸시감이 어려 있다. 생존경쟁의 수렁에서 발버둥 치는 남자들의 가련함을 조소하는 듯하다. 세상의 남자를 손아귀에 움켜 쥔 듯한 냉혹한 악녀 이미지.     


남자들의 알량한 자존심의 두께를 조롱하고 있는 것일까? 함부로 내팽개쳐진 음료수 캔에 남자의 이미지를 구겨 넣었다. 마법의 램프에 갇혀버린 거인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낄낄대는 지니처럼 가학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 이 시대 남자들의 생사여탈권은 여성의 손아귀에 있음을 풍자하는 기호적인 그림이다.     


박제되어 봉인된 남자들을 향해 처연한 시선을 떨어뜨리는 여자. 버튼만 누르면 언제든지 꺼내 사용할 수 있는 ‘남자 자판기’ 속에서 여자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남자들의 몰골이 퍽 대조적이다. 남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일회용의 인스턴트 소품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경고 같다.       

패션광고는 더 이상 마케팅 목적을 향해 직격탄을 쏘진 않는다. 의상의 특징이나 디자인, 색상을 파는 대신 시대정신이나 문화를 앞세워 상표이미지를 끼워 팔기 하는 것 같다. 코카콜라가 미국의 풍요를 팔고 나이키가 NBA의 스포츠 제국주의를 팔고 볼보 자동차가 안전지상주의를 팔듯이 말이다.


패션광고의 주된 고객인 신세대는 기성세대의 구매패턴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입기 위해'구매하는 시대에서 '즐기기 위해'사는 시대로 변한 것이다. 기분전환을 위해 패션 카탈로그를 넘기다 우연히 눈에 띈 브랜드를 위해 지갑을 톡톡 터는 것은 적어도 그들에게는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거기에 광고 하나에서 여성상위시대임을 확인하는 짜릿함까지 얻을 수 있다면 패션광고는 단순한 상표값 이상의 보상을 하는 것 아닐까?     


할로겐램프에 꼬이는 나방처럼 여자들에게 기생하는 존재로 비하되는 남자. 그리고 네일 파일 끝에 매달려 구명을 애걸하는 남자는 말 그대로 손톱밑의 때처럼 귀찮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선탠을 하는 여자의 등에 오일과 크림을 발라주는 남자들. 아슬아슬하게 드러나는 여자의 비키니라인을 마치 잔디밭을 손질하듯이 충직하게 보살피는 남자. 한 움큼의 머리카락과 함께 개수구에 빨려 들기 직전 여자에 의해서 목숨이 구해지는 남자 이미지. 이 모든 광고 이미지들은 이 시대 여성들의 우월감과 가학적 쾌감을 자극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여자 기살리기' 테마의 파격 변신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쿠카이 광고는 변신했다. 그림이 달라지고 이미지가 달라지고 충격의 정도가 더 강해지고 있다. 마치 간음한 여자 헤스터에게 남겨진 주홍글씨처럼 남자의 육체를 벌하고 있는 징그러운 생채기들. 더 이상의 설명도 없고 제품을 연상시키는 시각단서도 따로 없다. 광고를 보는 사람의 반응도 제각각일 것이다. ‘도대체 주장하는 바가 뭐야?’ ‘이 끔찍한 이미지가 도대체 브랜드에 도움이 되기나 하는 걸까?’ ‘쿠카이와 이 그림은 도무지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지?’ 오만무례하고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광고다.        

이 광고들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실마리는 심벌마크에 있다. 남자의 몸을 향해 벼락을 치는 형태의 브랜드 마크를 사람들은 익히 기억하고 있다. 그 마크가 이번 광고에는 빠져 있다. 군더더기로 여겨 과감하게 날려버렸다. 대신 쿠카이라는 로고타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마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이 광고는 채택하고 있다. 마치 나이키가 로고없이 갈쿠리 모양의 마크만으로 얼굴을 대신하듯이 불필요한 요소는 최대한 절제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자들이 행사해 오던 권위, 오만, 가부장적 지위, 독선, 제도적 특권 따위에 철퇴를 가하듯이 광고 아티스트들은 남자들을 향해 잔혹한 저주의 징벌을 가하고 있다. 로고에 담겨 있는 '벼락 맞는 남자'를 아예 표현소재로 끌어올렸다. 남자들의 벌거벗은 몸에 칼자국을 내기도 하고 불에 덴 상처를 남기거나 징그러운 벌레가 할퀸 흔적을 남기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세상 모든 여자들의 통쾌한 복수가 체화된 남성학대의 징표가 비주얼의 전부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듯 상처받을 사내들. 그들의 자존심이 이 광고의 공격목표였다. 그것을 위해 아티스트는 페미니즘의 날이 시퍼렇게 선 비수를 남성우월주의의 심장에다 꽂아 버린 것이다. 그 의도가 너무 섬뜻해서 거부감이 들 정도다. 꼭 이렇게 살벌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만큼 아직도 여자는 약한 존재인가?  여자의 자존심이나 정체성은 꼭 남성과의 대결을 통해서만 쟁취되는 것인가?                

여자 는 세상, 말이 돼?”라는 질문을 던지는 광고들. 언뜻 보기엔 단순무식해 보이는 사진이지만 이 그림에는 수천 년의 성대결 역사가 담겨 있다. 여자를 억압해 온 온갖 굴레와 차별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 웅변으로 뿜어지고 있는 듯하다. 표현의 관점에서는 패션광고가 이래야 된다고 하는 인식의 굴레들이 박살 나고 있다. 감성과 무드, 터치, 스타일, 매너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있다. 한편 한편이 마치 패션광고의 성역에 도전하는 듯한 반항이요 실험이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브랜드의 인지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과 은밀한 계산을 들춰낼 수 있음 직하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이힐-카틸로네     


여자는 구두를 무엇으로 신는가? 패션? 발이 편한 구두? 디자인이 세련된 구두? 액세서리가 화려한 구두? 다 틀렸다. 이제 여자들은 구두를 제품으로 대하지 않는다. 브랜드로 느끼고 평가하고 즐긴다. 그럼,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컬러, 레이블, 디자인, 품질, 소비자의 평가, 가격, 명성...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미지를 파는 것도 전략이다. 소비자심리, 그중에서도 여자의 자존심을 파는 제품이 있다. 마케팅의 전략무기 중 제일 중요한 것은 그래서 제품이 아니라 소비자인 것이다. 가격은 소비자가 지불할 용의가 있는 비용의 성격을 띤다. 내 자존심을 높이는 데 돈은 얼마든지 지불할 태세가 되는 것이다. 허영심이라고 해도 좋다.


단순히 발을 감싸는 가죽으로 보면 사용가치가 구두의 품질을 재는 잣대가 되지만 현시의 백화점에 전시되는 순간 구두는 그 무엇과도  맞바꾸어도 아깝지 않은 교환가치를 띠게 되는 것이다. 자동차가 단순한 운송수단을 넘어서서 신분과 지위, 부와 능력의 상징으로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처럼 말이다. 이 광고의 이데올로기는 그래서 사악하다. 당신의 몸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욕망의 성장 촉진제를 주사하라는 충동질을 하는 것이다.           

독일의 여성구두 브랜드 리카르도 카틸로네(Riccardo Cartillone)의 재치는 단연 압권이다. 요런조런 남자들의 정수리를 탑뷰(top-view)로 보여주면서 굽 높은 구두를 신는 여자의 쾌감을 풍자하더니 이번엔 장난기가 도를 지나친다 싶다. 도대체 사람들 꼴이 저게 뭔가? 왜 저렇게 망가뜨려 놓고 있는 건가? 멀쩡한 남자들이 보기에도 민망한 난쟁이 모양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름대로 한 인물 하는 신사들이 하나같이 짜리몽땅 납작해진 모양을 하고 위를 올려보고 있는 형국이다.

폴로경기를 하고 있는 건장한 신사, 고급자동차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내, 거대한 컨테이너를 청소하는 미화원 아저씨, 나이트클럽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제비족... 그들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신고 있는 신발들은 왜 저리도 오종종해 보이는가? 이 남자들의 앞에서 거만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당신은 여우다. 더욱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힐(Highest Heels)'이라는 슬로건의 도움이 없이도 그랬다면 구미호라는 애칭을 주겠다. 아니, 사실은 이 광고 읽기에 그렇게 대단한 총기가 동원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약간의 비주얼 상상력, 디지털 사고방식, 기호에 대한 친숙함만 갖추고 있다면 이 광고는 쉽사리 해독의 실마리를 내밀어 보인다. 이런 식의 카메라앵글은 그야말로 우리들 의식의 허를 팍 찌르는 송곳이다. 문자언어가 소멸하고 시각언어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세례. 표현의 진화는 끝이 안 보인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는다는 것은 여자의 자존심을 끌어올리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구두에는 신분상승의 코드를 담겨 있다. 왕자가 애타게 찾는 유리구두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평민에서 왕족으로의 변신을 의미했다. 필리핀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이멜다는 구두수집광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구두를 소유하려는 욕망은 본능이라고 둘러대고 있다. 그는 ‘미스 필리핀’ 시절에서부터 영부인시절까지 모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3000켤레의 구두를 전시하면서 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었다. 그가 그토록 구두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구두박물관 개관 연설에서 그녀의 심경은 드러난다. “나는 구두를 신을 때마다 아직 남편이 대통령이란 느낌을 받는다” 그녀에게 있어 구두는 자신이 영원한 스타임을 증명하는 훈장쯤으로 여겨졌을 게다.    

    

꼭 구두뿐만이 아니다. 탐나는 물건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발정신이 소비사회에서는 근사한 풍경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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