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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에누 Nov 28. 2024

장애...그래서 뭐?

패럴림픽 시즌 광고캠페인

무심코 말을 던진다.

“장애인인데도 잘하네?”

“의족을 하고서도 정말 대단해!”


칭찬일까? 동정일까? 대수롭지 않은 이 한마디 말에는 엄청난 편견이 들어 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장애는 주목받을 일일지언정 결코 동정받을 대상이 아니다.


2024 파리 패럴림픽이 막을 내렸다. 여기에서도 이 당연한 사실은 입증되었다. 경기장면을 글로 중계하기는 힘들어 광고캠페인 몇편을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영국의 공영방송 채널4에서는 패럴림픽 TV캠페인을 개막 전에 미리 선보였다. 타이틀은 '뭘 고려한다는 거죠?(Considering What?)'. 당신이 누구든 장애가 있든 없든 고려하지 않고 자연의 힘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는 메시지였다.

Channel4 영상광고

애런 핍스, 데임 스토리, 이마뉴엘 코커, 조셉 레인, 엠마 위그스, 올리비아 브롬, 알피 휴엣 같은 유명한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이 혼신을 다해 훈련하고 경기하는 영상이다. 장애인 선수들도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중력, 마찰, 시간 등을 적용받는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캠페인이다.


“누구나 무지막지한 자연의 힘과 200파운드의 중량, 테니스 공의 속도와 싸워야 한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흐를 뿐이다.”라는 카피가 이야기를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이 영상을 보고도 장애인치고는 대단하다는 칭찬을 하는 것은 만용에 가까울 것이다. 오히려 장애가 없어도 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애플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단체전을 하는 모습을 광고영상에 담았다. 한쪽 손이 없는 사이클리스트와 휠체어를 타고 경기하는 레이서, 시각 장애인 수영선수, 의족 스프린터 등 4명의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선수 4명이 애플기기를 활용해 훈련과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체는 다를지라도 사고와 의지, 노력과 결과는 동등하다는 메시지다. 경주를 끝낸 선수들이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고 발맞춰 걸으면서 격려와 포옹을 나눈다는 엔딩씬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애플 영샹광고

오메가는 '올림픽의 영원한 타임키퍼' 임을 각인시킨 광고캠페인을 했다. 12명의 홍보대사를 출연시켜 파리의 명소들을 선수들의 멋진 놀이터로 탈바꿈시켰다.

오메가 영상광고

나이키, 스포츠 영웅의 제국


올림픽 광고 이야기에 나이키를 뺄 수는 없다. 나이키는 단순한 상표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스포츠의 모든 것이다. 사람들의 꿈과 비전, 희망과 동경, 열망과 존경 등이 이 이름 안에 다 담겨 있다. 나이키라는 브랜드는 이제 미국을 넘어서서 전 세계인의 생활이요 문화가 되어 버렸다. 코카콜라가 단순한 음료로 기억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이키의 광고에 항상 붙어 다니는 ‘Just Do It’은 슬로건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인들의 생활수칙이요 좌우명이며 복음이요 교리가 되어 버렸다.


나이키는 또한 영웅과 스타의 제국이기도 하다. 마이클 조든, 보 잭슨, 존 맥켄로, 안드레 아가시, 배리 센더스, 시드니 몬크리프, 칼 루이스, 마이클 존슨, 세르게이 부브카… 오늘날 나이키의 브랜드이미지를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스타 플레이어의 이름들이다.


나이키의 스포츠 제국은 흑인과 백인, 남과 여, 나라와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당대의 기라성들을 황제로 추대했다. 때로는 뭇별 중에 섞여 광채를 빛내지 못하던 신성을 미리 발굴해 스타덤에 올리는 마케팅 육감을 발휘하기도 했다. 무명의 골퍼였던 타이거 우즈도 나이키 웨어를 입고서부터 승승가도에 가속도를 붙여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들의 성공신화는 곧 나이키의 성공신화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나이키의 얼굴들이 모두 화사한 광휘를 띠고 매체를 장식했던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축구선수 브라이언 맥브라이드의 발톱, 농구선수 케빈 가넷의 팔목 밴드, 육상선수 밥 케네디의 뒤꿈치, 농구선수 스카티 피펜의 코가 모델로 초빙되기도 했다. 얼굴을 감추고 특정 신체부위를 강조함으로써 징크스에 곧잘 사로잡힐 만큼 예민한 운동선수들의 내면세계를 묘사하는 표현전략이었다. 우아한 것, 위대한 것, 화려한 것, 강한 것, 반듯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위악적인 반발이기도 했다. 스포츠의 터프함과 섬세함, 그 양면성을 묘사하는 탁월한 기획이었다고 평가된다.


마이너 리그의 이미지 메이커들


패럴림픽 시즌에는 어김없이 장애인들이 나이키의 광고 모델로 나서기도 한다. 눈은 이글거리고 입은 비틀어지고 얼굴근육이 일그러져 있는 반항기 어린 마이너들이 광고에 등장하고 있다.


“볼테면 봐!” 한쪽 팔과 또 다른 한쪽 손이 뭉텅 짤려진 선수가 냉소어린 시선으로 내뱉고 있는 말이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그에게 시선을 주어야 할까? 정작 보이는 사람은 당당한데 보는 사람이 웬지 주저하게 되고 괜히 힐끔거리게 된다. 헤드라인 아래의 카피가 쭈볏거리는 독자를 향해 마음의 빗장을 풀어준다. '세계기록 보유자가 아니었다면 당신이 보기도 힘든 사람이야' 그의 육신이 풍기는 그로테스크한 뉘앙스보다는 그의 인생이 쌓아올린 불멸의 기록에 주목하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

또 다른 광고 한편. “동정해도 좋아!” 뭘? 인조보족을 하고 있는 이 수영선수의 빈약한 다리를? 아니다.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남다른 외모나 신체조건이 아니라 그가 간발의 차이로 상실한 우승의 아쉬움이다. 카피가 그렇게 적고 있다. '그는 100분의 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다.'

휠체어의 바퀴를 부르잡고 비장한 눈길로 이쪽을 향하고 있는 선수의 모습도 눈길을 고정시킨다. “곁에 있는 게 쪽팔린다구?” 하지만 본문을 보면 왜 그가 그처럼 기세등등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어쩌면 당신따위는 준결승에서조차 그와 한번 겨루기 힘들 거야'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뿜어 내고 있다. 제품도 슬로건도 보이지 않는다. 승리의 날개 마크와 찡한 여운밖에 남는 게 없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비주얼 스캔들만이 목표는 아니다. 나이키다운 큰 브랜드의 자신감으로 보여진다.


물론 광고의 마이너리그에 장애인이 출전한 사례는 나이키가 처음은 아니다. 미국의 고급백화점 체인인 노드스트롬은 패션브랜드 카탈로그에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미모의 젊은 여성 등 장애인들을 등장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제 전화회사인 ATT는 농아여배우 말리 매틀린과 하반신 마비자인 슈퍼맨의 주연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를, IBM은 하반신 마비자인 그래미상 수상가수 커티스 메이필드를, GM은 암벽등반가 출신의 장애인 마크 웰맨을 기용해서 신선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나오는 광고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그들에 대한 온당치 못한 시선은 오히려 소비자 보다는 광고주 쪽이 더한 것 같다. 겉으로는 소비자의 불편한 심기를 염려하면서도 사실은 그들의 모습이 브랜드에 미칠 왜곡현상을 걱정하고 있다. 소비자는 그렇게 미숙하지 않다. 우리가 광고에 나온 장애인에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외모의 그 특이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의 생애 속에 어른거리는 비장의 드라마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도 상상외로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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