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이 극장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OTT(Over The Top) 플랫폼 덕분이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왓챠 등 다양한 플랫폼 덕분에 굳이 발품을 팔아 영화 한 편을 보러 극장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그 외에도 티빙, 웨이브,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쿠팡 플레이, 유튜브 프리미엄 같은 다양한 플랫폼들이 있다. 지역별, 특정 콘텐츠에 특화되어 취향에 맞춰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리모컨 하나만 있으면 세계 각국의 최신 영화와 드라마가 손쉽게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여전히 극장이 주는 매력은 무시할 수 없다. 극장의 몰입감, 대형 스크린이 주는 임팩트, 깊이감은 OTT 플랫폼에서 쉽게 재현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압도적인 몰입감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의 몰입감은 집에서 느끼기 어려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예로 들어보자. 재난 상황에서의 인간 군상을 그려내며, 대형 화면으로 표현된 도시의 파괴와 혼란을 압도적으로 전달한다.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갈등이 대형 스크린과 서라운드 음향을 통해 관객에게 더 깊이 전달된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OTT로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손쉽게 일시 정지하거나 다른 작업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에 몰입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도 그랬다. 거대한 핵폭발 장면과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 표현을 아울러, 극장에서 대형 스크린과 함께 볼 때 그 진가를 발휘했다. 놀란 감독은 특별히 IMAX 카메라를 사용해 촬영했는데, 이 포맷은 거대한 화면을 통해 극대화된 감정과 스케일을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OTT의 작은 화면으로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시청각적 경험을 온전히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임팩트, 깊이와 집중력
OTT 플랫폼은 집에서의 편안함을 제공하지만, 대형 스크린이 주는 임팩트는 결코 대체될 수 없다. 특히 액션 장르에서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3은 극장 스크린에서 빛을 발하는 작품 중 하나다. 은하계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전투 장면, 인물들의 섬세한 표정 변화를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시각적 쾌감은 집에서 소형 TV나 태블릿으로 볼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물론, OTT를 통해 반복 감상이 가능하고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한 번의 극장 경험이 주는 충격과 전율은 고유하다.
OTT는 시청자가 자유롭게 시간과 장소를 선택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한다. 이 유연함이 오히려 영화의 깊이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화 <기생충>을 집에서 시청한다면 언제든지 휴대폰을 확인하거나 중간에 멈추고 쉬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극장에서는 영화의 각 장면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며 감정선을 더 깊게 따라갈 수 있게 된다. 이는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 변화와 상징적인 장면들이 더 강렬하게 와닿게 만드는 요소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OTT 플랫폼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편리한 콘텐츠 소비 방식을 제공하면서 영화 산업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여전히 대체될 수 없는 독특한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몰입감, 대형 스크린의 임팩트, 그리고 영화적 깊이가 극장에서 경험하는 영화의 핵심 요소들이며, 이는 OTT 플랫폼이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극장이라는 특별한 공간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순간이 있다. <어벤저스: 엔드게임> 같은 대작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이 나올 때, 관객들이 함께 웃거나 눈물을 흘리는 경험은 집에서 혼자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영화 상영 후 감독이나 배우와의 대화 시간도 이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제나 특별 상영회에서 <범죄도시>와 같은 작품 상영 후 관객들이 직접 감독에게 질문하거나 배우들이 즉석에서 답변하는 자리는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이벤트였다.
심야 영화는 극장 경험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다. 새벽 1시나 2시에 영화를 보는 경험은 일상에서 벗어난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늦은 시간 비교적 한산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영화를 본 후의 밤산책은 OTT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아바타> 같은 영화를 IMAX나 4D로 보는 것은 극장에서만 가능하다. 4D 상영관은 좌석이 흔들리거나 물이 튀기는 등 영화의 장면에 맞춰 다양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이를 경험하는 관객들이 영화 속 장면에 놀라거나 웃음 짓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액션 영화나 재난 영화를 특별관에서 관람하는 것은 몰입감을 극대화시킨다. 집에서 볼 때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어두움의 판타지
극장은 어둡다. 그 어둠 속에는 예민한 긴장과 공포가 서성인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쌔근거리는 숨결과 옷자락 바스락거리는 소리, 엉덩이 뒤척이는 소리까지 입체음으로 잡힌다. 언제 상대의 손을 잡아야 할지 노심초사하는 초짜 연인들에게는 시신경과 청신경을 화면에만 집중하기가 힘든 장소이기도 하다. 극장은 호모들의 은밀한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한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우연히 들른 충무로의 어느 성인전용 극장에서 확인한 구체적 사실이다. 번들거리는 눈빛, 가쁜 숨소리, 음습하고 끈적끈적한 욕망의 열기. 전율이 온몸을 휘어 감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기분 나쁜 체험이었다.
하지만 극장에서 느끼는 공포는 막연한 불안의 산물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구체적인 사건들이 그것을 증거 한다. 1980년대 말 <입속의 검은 잎>이라는 단 한 권의 시집으로 천재시인의 칭호를 얻었던 기형도가 이 어둠 속에서 서른도 안 된 나이로 요절했다. <세일즈맨의 죽음>도 이 어둠 속에서 일어났고 <오페라의 유령>이 은신하는 장소도 극장의 이 어둠이다. <쉰들러 리스트>나 <뮌헨>이라는 이름에서도 우리는 불길한 죽음의 그림자를 연상해야만 한다. 2012년,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한 극장에서 일어난 총격사건도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상영 중에 극장에 침입해 있던 범인은 관객들에게 총을 발사했고, 이로 인해 12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총상을 입었다.
극장으로 유혹하는 달콤한 거짓말들
독일의 대표적인 복합 영화전용관인 시네막스(Cinemaxx Movie Theatres) 광고캠페인은 어둠이 지배하는 극장의 판타지를 재기 발랄한 독설로 공격하고 있다. 다소 엽기적인 톤의 만화로 어둠 속에서 부닥칠 수 있는 공포스러운 장면을 묘사하는 연작광고이다. 거대한 코끼리의 항문 속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남자, 땅 속의 어두운 관 속에 갇혀 괴로워하는 사내, 소파에서 거대한 비계 덩어리 여자에게 짓눌려 성고문을 당하는 갈비씨, 항공기 프로펠러 속에 머리가 처박혀 두개골이 산산이 분해되어 버리는 운 나쁜 남자….
“어두운 장소라고 다 훌륭한 영화를 보여주는 건 아니다.”라는 다소 비아냥거리는 카피가 그러한 상황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적당하게 어두운 조명과 쿵쾅거리는 음향 시설, 푹신한 의자만 갖추었다고 다 극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기고만장한 자부심이 행간에 배어 있다.
영화의 리얼리즘은 단순히 현실을 충실히 재현해 내는 데 미덕이 있지 않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의 결합이 얼마만큼 현실처럼 꾸며져 있는지가 흥행을 좌우한다. 현실에서 일어날 개연성이 충분한 에피소드들을 탄탄하게 엮어서, 보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재보다 더 실재적으로 느끼게 해야만 제대로 된 리얼리즘의 반열에 오른다.
리얼리즘의 차원에서 보자면 영화는 안방극장에서 상영되는 드라마에 비해 경쟁력이 의심된다. 영화와는 달리 대부분의 드라마는 현실의 가장 리얼한 공간인 가정을 소재로 한다. 따라서 굳이 현실처럼 보이게 구성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없다. 적당히 교육받은 부부가 귀여운 아들딸을 두고 있는 단란한 상황은 그 자체로 감정이입의 모든 조건을 갖춘 리얼리티다. 영화는 이제 극장에서 상영되는 다른 영화작품뿐만 아니라 안방 영상물 장르와도 상대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다른 몇 편의 광고들은 바로 이런 사정을 간파한 코믹한 설정이다. 같은 영상물이라도 집에서 TV로 보는 드라마나 홈 비디오 따위와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천지차이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 그럴듯한 픽션을 제시하고 있다. 쓸데없이 집 안에서 빌빌거리다가는 TV가 폭발한다거나, 고드름에 찔려서 또는 바비큐 파티를 하다가도 재수 없으면 역기에 깔리거나 전동 톱날에 목이 잘려 비명횡사를 한다거나, 강도를 당한다거나 샤워하다 수돗물이 떨어지는 황당함에 처해진다는 등 집에 있는 동안 치명적인 사고가 많이 발생하니 집에만 박혀있지 말고 미련 없이 시네막스로 와서 화끈하게 영화 보는 재미에 빠져 보라는 감언이설이 애교스럽다. 이 광고는 에피카 상을 비롯해서 유럽 ADC, 클리오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Cinemaxx 영상광고
"사망 사고의 28.4%는 집에서 일어난다. 집에 있지 않는 게 좋다.”
이 광고 시리즈의 묘미는 ‘숫자의 우상’을 고발하는 듯한 태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숫자로 말하면 무조건 맹신하는 통계 지상주의, 구체적 자료를 들이대기만 하면 왠지 객관적이고 정확할 것 같다는 형식적 합리주의를 조롱하는 재치와 풍자가 서늘하다. 여기서 제시된 숫자는 아무런 근거도 없고 또 이런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숫자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에 대한 호감은 증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