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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나비스타 농막 클럽

짙은 색소폰 소린 아닐지라도...

by 이에누

매일 걷는 성내천변 산책로. 습한 바람 사이로 비닐 농막에서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온다.
최백호의 거칠고 쉰 목소리가 떠오른다.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한 모금에 눅진하게 번지는 향처럼, 음이 낮게 깔리고 오래 머문다.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 같은 건 진작 식어버렸지만, 이런 소리는 못 참지. 발걸음이 알아서 농막 쪽으로 방향을 튼다.

비닐하우스 문짝을 밀자, 바깥보다 더 짙은 어둠이 안쪽을 차지한다. 사람 기척은 없고, 바깥에서 개 짖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려 들어오며 묘한 배음을 만든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난롯불의 희미한 주황빛이 그의 실루엣을 드러낸다. 늙수그레한 사내, 입술 위에 걸린 색소폰, 숨을 밀어 넣는 어깨.

순간, 퍼뜩 떠오르는 장면.
천변 굴다리 아래. 올림픽공원으로 이어지는 그 길목.
십 분 남짓 조심스레 버스킹을 하던 남자. 민원 들어오지 않도록 소리를 너무 밀어붙이지 않던, 그 특유의 절제된 연주. 불빛도 없이, 사람 없을 때에만 은근슬쩍 음을 놓아두던 그.

그가 나를 본다. 불청객인데도 표정에 어떤 경계도 없다. 연주를 끊지 않은 채 손짓으로 들어오라 한다. 숨을 밀어내는 소리와 쇳빛 음색이 농막 안 공기를 천천히 흔든다.

이삼 분쯤 지났을까. 그는 마지막 음을 길게 늘이며 곡을 닫는다.
곧바로 연장 따위는 없이, 장작 난로 옆 간이의자를 발끝으로 끌어당긴다. 앉으라는 듯 눈짓을 보낸다.
농막 안 공기가 미세하게 움직인다. 난로 불이 작게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른다.


비닐하우스 안은 한겨울 냄새가 났다. 장작 난로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 벽면에 걸린 낡은 외투,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린 리드 조각들. 사내는 마지막 음을 길게 빼며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혔다. 특유의 농밀한 비브라토였다.
“왔어유?”
그의 첫마디는 충청도 억양이었다.

나는 잠자코 앉았다. 사내는 리드를 닦아 천천히 끼우고, 난로 위 주전자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걸 보더니 내게 종이컵을 내밀었다.
“생강차요. 이 날씨엔 딱이죠.”

“나 알아유?”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굴다리 앞에서 늘 듣던 분 같아서요.”
내 말에 그는 씩 웃었다.
“아, 거기선 오래 못 했슈. 민원 들어와서. 그러다 이 동네 주택가로 들어왔지요. 여긴 뭐… 민원 들어올 사람도 별로 없고, 들어와도 내가 워낙 사람 좋아해 갖고.”
그는 손바닥을 털며 주변을 가리켰다.
“여기가 내 새 스튜디오요. 이름은… 부에나비스타 소사이어티. 나 혼자 지었슈. 간지 나유?”




부에나비스타 소사이어티.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연주 스튜디오 치고는 거창한 이름이었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혼자예요?”
“아니죠. 동호인들 몇 있어유. 다 은퇴했거나 반쯤 놀아도 되는 사람들. 월세랑 난방비, 간식비까지 십시일반으로 걷어쓰죠.”
그는 벽면을 가리켰다. 낡은 콘트라베이스, 오래된 드럼 세트, 플루트 케이스 몇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형님도 하나 들여유.”
“내가요?”
“아니 뭐, 듣는 것도 좋지만… 사람이 어느 순간엔 소리가 하고 싶어져유.”

내 귀는 계속 근질거렸다. 결국 몇 주 뒤, 그는 나를 중고 악기점으로 데려갔다.
“초보는 알토가 좋아유. 무게도 덜하고 음정 잡기도 수월허고.”
“비싸네.”
“형님, 이건 나랑 같이 늙어갈 물건이라 생각하면 싸요.”

악기는 금색이었지만 세월의 상처가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그러나 부는 순간, 쩔어 있던 구릿빛 몸체에서 오래된 카페 바닥 타일 같은 소리가 났다. 내 음은 엉망이었지만, 그 소리는 묘하게 가슴을 찔렀다.

스튜디오에는 한 달 뒤 ‘선생님’이 들어왔다.
뉴올리언스에서 10년을 살다 왔다는 베테랑 재즈 연주자였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존대와 반말을 섞어 부르는 이름이 기가 막혔다.
“뉴올 선생!”


손 선생은 등장 첫날부터 말했다.
“여긴 연습실이 아니에요. 음악 살롱이에요. 그러니까 당신들, 소리만 내지 말고 분위기도 만들어.”

그날부터 우리는 매주 둘째 주 금요일이면 ‘라이트 다운 데이’를 열었다.
조명을 낮추고, 커튼을 치고, 막걸리 한 통을 가운데 놓고, 각자 두 곡씩 돌아가며 연주했다.
들을 만한 실력은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연주가 끝나면 모두 박수를 쳤다.
“여긴 잘해서 치는 박수 아니에요. 용기 냈으니까 치는 거예요.”
뉴올 손 선생의 철학이었다.




난로 위 주전자 뚜껑이 덜컥거리며 끓고 있었다. 바깥에선 바람이 비닐벽을 들쇠처럼 두드렸다. 우리는 둘러앉아 있었다. 나, 농막 주인장, 손 선생, 그리고 클럽의 어설픈 초보들. 그날은 어떤 연습보다 “수업” 같은 날이었다.

뉴올 선생은 평소보다 술을 빨리 들이켰다.
준비운동 같은 첫 잔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그는 갑자기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뉴올리언스에서 뭔 짓을 하며 살다 왔는지… 들어보겠소?”

우리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처음 갔을 땐 상상했죠. 버번 스트리트에서 트럼펫 부는 흑인 아저씨들이 나한테 형님 대접할 줄 알았소. 뭐, 한국에서 꽤 이름 좀 날렸다구.”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어느 새벽, 처음 앉았던 바에서 드러머가 갑자기 그에게 소리쳤다.

“You got no swing in your blood!
네 피에는 스윙이 없어!”

그 말을 듣고 한 달 동안 기를 못 폈다고 했다.
“근데 말여… 그 말이 내 음악의 절반을 부쉈고, 나머지 절반을 새로 만들었소.”
선생의 눈빛이 이상하게 젖어 있었다.
“부딪히면서 살아야 나오는 소리가 있더라고.”

농막 주인이 물었다.
“그래서 뭐, 스윙을 찾긴 했슈?”
“찾았지. 내 무릎 관절에.”

모두 웃었지만, 웃음 밑바닥에는 묵직한 무언가가 남았다.

손 선생이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근데 그 시절에… 여자가 하나 있었소. 이름은 마리아.”

프렌치쿼터에서 작은 재즈바를 운영하던 혼혈 여성이었다. 그녀는 선생에게 첫날부터 말했다.

“You sound like someone who’s trying too hard not to cry.”
“울음을 참고 부른 소리 같다고 하더라고… 듣자마자 심장 세 방 맞은 기분이었소.”

둘은 밤마다 골목 카페에서 연습했다.
마리아는 악보를 모르는 대신 귀가 기가 막혔다.
어느 날 선생이 새 리드를 끼우고 재즈 표준곡 ‘Autumn Leaves’를 불자 그녀가 중얼거렸다.
“여름 소리잖아. 가을 느낌을 제대로 내야지.”

그 말이 선생의 평생 철학이 되었단다.
“음악은 결국 계절 찾기여. 내 마음의 계절.”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되지 않았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도시를 덮쳤고, 둘이 사랑하던 바도 사라졌다. 마리아는 텍사스로 떠났고, 손 선생은 그녀가 두고 간 작은 가죽 팔찌만 남긴 채 뉴올리언스를 떠났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잔을 들었다.

“거기 또 하나, 일이 있었다면… 늪지대 클럽 사건이 있었지.”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비 오는 밤, 친구를 따라 ‘늪지대 클럽(Zachary’s Swamp Jazz House)’이라는 허름한 바에 갔다.
문을 열자 악취가 확 들이쳤다.
“거기 사장은 악보를 안 봐. 술도 안 팔아. 대신 청중에게 늪지 물을 한 잔씩 줬다니까?”

우리는 폭소를 터뜨렸다.
“아니 왜 늪지 물을 줘요?”
“늪지 냄새도 음악의 일부라면서.”

그날 선생은 취객 둘과 리듬 배틀을 벌였고, 아침 해 뜰 때까지 블루스 세 곡을 돌려가며 즉흥 연주했다.
“그날 이후 난… 세상에 더 이상 상식이란 게 없다는 걸 알았소.”

쿠바의 아바나와 미국 뉴올리언스를 왔다갔다 하는 스토리. 그가 한 때 몸담았다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정체가 점점 흐려져 갔다. 암튼 손 선생의 허세 섞인 무용담은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이어졌다.
난로가 다 식어가도 우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선생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음악이든 인생이든 결국 버티기여.
흔들려도 살아남고, 살아남으면 또 흔들리고.
버티면서 나는 결국… 내 소리를 찾았소.”

그는 우리 모두의 얼굴을 한 명씩 바라봤다.
“당신들도 각자 소리가 있어요. 아직 안 나와서 그렇지.”

그 말 한마디에 비닐하우스 공기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우린 갑자기 어깨에 걸친 짐이 한 톨 덜어진 느낌이었다.

막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선생님,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되겠어요?
뭔가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평소 말수가 적던 드러머 영감도 고개를 들었다.
“나도. 계절 찾으려면 같이 해야지.”

플룻 부는 아주머니가 컵을 들었다.
“그래요. 늪지 물은 못 마셔도 마음은 같이 내립시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잔을 들고 원을 만들었다. 불쑥... 누가 ‘건배사’를 외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자리가 우리를 밀어냈다.

선생이 잔을 들었다.
“좋아요. 그럼 이 밤을… 우리끼리 도원결의 하는 날로 나중에 기억합시다.”

우린 잔을 맞댔다.
비닐하우스 천장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가 박수처럼 들렸다.

그날 이후 클럽은 달라졌다.

• 드러머 영감은 매일 새벽 5시에 나와 스틱 연습을 했다.

• 플룻 아주머니는 유튜브에서 뉴올리언스 재즈를 베껴 연주했다.

• 사내는 리드 커팅 방법까지 직접 공부했다.

• 나는 초보였지만, 그날의 “계절 찾기”라는 말이 귀에 남아 악기 연습 시간을 두 배로 늘렸다.

그리고 스튜디오 공기에도 이상한 활력이 돌았다. 회원 간에 작은 알력이 생기면 선생이 말했다.
“지금은 여름 소리예요. 우리 다시 가을 찾아봅시다.”

그 말 한마디면 대부분의 삐걱거림이 사라졌다.
음악이 아니라 마음이 맞는 게 먼저라는 걸 모두 알았기 때문이다.




그해 겨울, 동네 복지관에서 제안을 받았다.
“어르신 위안잔치에 와서 재즈 한 곡 뽑아주시면 좋겠어요.”
덜컥 느껴지는 책임감.
우리는 매일 밤 비닐하우스에서 떨리는 손으로 악보를 넘기며 연습했다.
“아니, 이 코드 진행을 왜 이렇게 꼬아놨어!”
“누가 좀 드럼 맞춰줘!”
“나 음정 또 새네.”

그러다 어느 날, 팀이 완전히 갈라질 뻔했다.
리듬 섹션이 화음을 못 맞춘다고 불평했고, 브라스 파트는 드러머가 템포를 끌어내린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한 명은 “차라리 몸보신하러 장어를 먹으러 가자”며 단체 채팅방을 나가버렸다.

그때 뉴올 선생이 말했다.
“이건 음악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예요. 다들 음악이 아니라 서로를 의심하고 있잖아요.”
다음 날, 선생은 작은 종이봉투를 하나씩 나눠줬다.
안에는 각각 다른 색의 리드, 펜, 작은 메모지 한 장. 메모지에는 똑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당신의 소리가 아니라 당신을 믿습니다.”

연주회를 코앞에 두고, 우리는 진천 산골 폐가 한 채를 ‘멋대로’ 빌려 합숙 연습을 했다. 창문은 바람이 숭숭 새었지만, 장작을 피워놓고 제각기 악기를 꺼내니 그 공간은 갑자기 재즈 클럽으로 변했다.
저녁에는 마을 주민들을 초청했다.
“우리는… 부에나비스타 소사이티에서 온 사람입니다!”
첫 소개치고는 한껏 들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박수보다 웃음이 더 많았지만, 어색한 걸 이해하는 듯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한 할머니는 끝나고 말했다.
“잘하구 못하고는 몰러. 근디 사람 냄새 나서 좋구먼.”
그 말이 이날의 가장 큰 박수였다.

연말 잔칫날, 우리는 떨리는 손으로 무대에 섰다.
첫 음이 조금 삐끗했지만, 뒤이어 들어온 드러머의 스윙이 흐름을 잡았다.
두 번째 곡 중반쯤, 나는 믿을 수 없게도 ‘즉흥 솔로’를 했다.
들리는 건 심장 박동뿐이었는데, 끝나자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 순간, 이 낡은 취미가 삶의 새로운 문을 여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초, 운영비가 부족해졌고 스튜디오를 닫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월세, 난방비, 악기 수리비까지 겹쳐 부담이 컸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다.
“우리 스튜디오 이름이 뭐였지?”
“부에나비스타 소사이티.”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끼리 버틴다는 뜻 아니었어?”

결국 우리는 매달 ‘오픈 살롱 데이’를 열어 자발적 모금 공연을 진행했다.
동네 빵집 주인, 아이들 엄마들, 천변 산책객들까지 찾아왔다.
“아유, 잘 들었어요. 이건 커피 값이에요.”
작은 봉투들이 쌓이며 다시 숨통이 트였다.




나는 아직도 이 팀에 정식으로 들지 않았다.

며칠 전, 천변 산책길을 걷다가 문득 스튜디오가 그리워졌다. 문짝을 밀고 들어가니 선생이 혼자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여전히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자, 오늘은 듣기만 하지 말고 한 소절 불어봐. 음악은 나이보다 마음이 먼저인겨.”

나는 대답 대신 마우스피스를 입에 문다.
낮게, 서툴게, 하지만 확실하게 울리는 첫 음.
천변을 따라 흐르던 그 색소폰 소리가 이제는 내 가슴에서도 조금씩 울린다.





※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있는 색소폰 동호회를 모티프로 한 다큐 픽션입니다.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하되, 감정과 장면은 '글쓰기'를 위해 재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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