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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도배

풀칠의 자존심에 대하여

by 이에누

풀을 개는 일은 언제나 같다. 차가운 물을 붓고, 밀가루풀을 천천히 섞는다. 젓는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덩어리가 지고, 너무 빠르면 거품이 생긴다. 그는 그 중간을 정확히 찾는다.
“도배는 감이야. 감은 손끝에서 나는 거야.”
그가 늘 하던 말이다.

그 손끝은 한때 붓을 쥐던 손이었다. 물감을 다루던 감각이 이제는 풀의 점도를 구분한다. 그 사실이 조금 서글프면서도, 이상하게 평화로웠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대구 달서구에 사는 사촌 형이다. 형수는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풀 냄새가 좁은 작업실을 채우고, 오래된 라디오에서 <Let it be>가 흘러나왔다.
그는 조용히 웃었다.
“그래, 이제 그만 놓을 때가 됐지.”




젊은 시절, 그는 빛나는 이름이었다. 홍*대 조형미술과 졸업. 국전 입상, 비엔날레 초대작가. 도시의 광장과 공원, 신도시의 건축물에 그의 조형물이 서 있었다.
‘젊은 작가의 새로운 조형 언어.’ 그렇게 불렸다.

하지만 유행은 계절보다 빨랐다. 그의 선은 거칠고, 색은 무겁다는 평이 따라붙었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자 갤러리 초대장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 시대의 부산물일지도 몰라.”

생계를 위해 교단에 섰다. 학생들은 그를 ‘선생님’이라 불렀지만, 그는 여전히 ‘작가’로 불리길 원했다.
그러나 세월은 느리게, 그리고 잔인하게 변했다.
명예퇴직 후, 그는 ‘전직 미술 교사’가 되었고, 아무도 그의 작품을 기억하지 않았다.

형수가 먼저 움직였다.
“나 도배 기능사 준비할 거야.”
“그걸 왜?”
“이제 손으로 하는 일밖에 남은 게 없잖아. 당신은 손끝이 좋은 사람이니까.”

기능을 보유한 아내를 따라다녔다. 풀을 개고, 벽지를 붙이고, 틈을 메우는 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표면이 익숙했다. 벽지는 캔버스보다 넓고, 풀은 물감보다 진실했다.
그는 색감과 질감을 섞기 시작했다.

“이 벽엔 따뜻한 느낌이 좋겠어.”
형수가 웃었다.
“여보, 이건 미술이 아니라 도배야.”
“아니야, 사람 사는 집에 붙는 거잖아. 그럼 미술보다 어려운 거지.”

그의 도배에는 생계의 냄새보다 자존심이 묻어 있었다.
입에 풀칠하는 일과 도배지에 풀질하는 일은 달랐다. 그가 개는 풀에는 자존심이 섞여 있었고, 그 결기가 벽에 남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붙인 벽지 위로 세월이 지나면, 누가 다시 풀칠을 할까?’
새 아파트에는 벽지를 안 쓴다고 하고, 젊은 사람들은 셀프로 색을 입힌다지. 페인트 칠이나 실크 패널, 콘크리트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고.


잠시 손을 멈췄다가, 이내 다시 붓을 들었다.
어쩌면 마지막 벽일지도 몰랐다.
종이와 벽 사이의 공기를 손끝으로 읽었다. 그 미세한 울림 속에서 여전히 ‘창작’을 느꼈다.

부부는 좋은 팀이었다. 형수는 꼼꼼했고, 그는 감각적이었다.
신축 아파트, 신혼부부의 집, 오피스텔, 단독주택. 입소문은 금세 퍼졌다.
“이 도배사님은 색이 달라요. 방이 숨 쉬는 것 같아요.”

그의 마음속에 잊었던 ‘창작의 기쁨’이 다시 피어났다. 도배가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우리 빌라 전체를 맡아주세요. 열쇠 드릴게요. 다 선생님 감각으로요.”
그는 망설였다.
“열두 세대요?”
“네. 믿습니다.”

그는 설렘과 두려움 사이에서 열쇠를 받았다. 형수와 함께 빌라에 들어가, 낮에는 붙이고 밤에는 설계했다.
층마다 빛이 달라, 세대마다 색을 바꿨다.
한쪽은 따뜻한 리넨 질감, 다른 한쪽은 차분한 콘크리트 패턴.

그는 2주 동안 먹고 자며 그곳에 머물렀다.
“이번 작업은 내 인생의 전시야.”
형수가 피곤에 찌든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이건 돈이 아니라 내 이름이야.”

2주 뒤, 벽이 마르고 빌라는 완성됐다.
주인은 감탄했다.
“예술 작품 같아요. 세련됐어요.”
그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래, 아직 내 손이 살아 있군.”

그러나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세입자들의 항의였다.
“벽지가 너무 어두워요.”
“큐빅 무늬가 약간 날카로워요.”
“빛이 반사돼 눈이 아파요.”

주인은 당황했고, 그는 침묵했다.
형수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너무 예술로 갔어.”
"그러게. 자기가 살 집도 아니면서..."

도배는 주인이 아니라 세입자들이 할 일이었다.
결국 빌라는 다시 도배됐다. 그의 작품은 덮였다.
입소문은 식었고, 전화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1년 동안 일을 쉬었다. 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
벽에는 얼룩이 있었고, 그 얼룩은 묘하게 사람 얼굴처럼 보였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벽지는 결국 덮이지만, 그 아래엔 손의 흔적이 남겠지.”

형수가 물었다.
“이제 다시 그림 그릴 생각은 없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젠 내 그림이 벽에 붙어 있으니까.”

그 해 봄, 조용히 울리지 않던 전화가 울렸다.
“선생님, 혹시 아직 일하시나요? 부모님 댁 도배 부탁드려요.”
“저 이제 일 안 합니다.”
“선생님 손으로 해야 해요. 어머니가 그 벽지를 좋아하셨어요.”

그는 오래된 작업복을 꺼냈다.
형수가 물었다.
“진짜 마지막으로 하는 거야?”
그는 웃었다.
“그래, 마지막 도배야.”




시골집이었다.

창문 밖으로 매화꽃이 피어 있었다. 벽은 오래돼 갈라지고, 습기가 스며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풀을 개고, 한 장 한 장 벽지를 붙였다.
“이 벽지는 따뜻하네요. 손끝이 다르네.”
노모가 말했다.
그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손도 이제 나이를 타나 봐요.”
“손은 나이 들수록 따뜻한 법이죠.”

그는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작업이 끝나고, 형수가 물었다.
“왜 이렇게 풀을 진하게 탔어?”
“입에 풀칠할 정도로 될 일이 아니잖아? 그래야 오래 버티지. 이건 마지막이니까.”

그 벽은 언젠가 다시 덮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래엔 그의 손결이 남을 것이다.
팔레트 나이프 대신 주걱을 들고, 갤러리 대신 벽 앞에 서서, 그는 끝내 ‘면’을 다루는 예술가로 남았다.

그의 마지막 도배는 풀과 종이와 빛으로 완성된 하나의 생이었다.
“입에 풀칠하는 거랑 벽지에 풀질하는 게 같을 수 있어?”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마지막으로 손끝의 풀을 닦았다.
그 손엔 여전히 예술가의 온기가 묻어 있었다.





※ 대구 달서구에 거주하는 사촌 형 이** 도배 장인 (70)의 실제 체험을 모티프로 한 다큐 픽션입니다. 그의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하되, 감정과 장면은 '글쓰기'를 위해 재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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