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 사람들, 거리로 나서다!
단톡방에 ‘오늘 온다?’라는 한 줄이 올라왔다. 누가 보내는지 이름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색소폰을 잡았을 때만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들. 농막에서 처음 봤던 그 얼굴들이 떠올랐다. 바람 냄새와 흙냄새가 섞여 있던 그 농막의 밤처럼, 오늘도 뭔가 조용하게 예감되는 기운이 있었다.
첫 무대는 양재천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해, 자전거 대여소 앞. 자전거를 반쯤 세워놓고 생수 마시던 사람, 손잡이를 붙잡은 채 지켜보는 아이, 러닝 끝낸 부부가 숨 고르며 서 있던 바로 그 장소가 우리가 서게 된 첫 ‘콘서트홀’이었다.
전선 하나 없이, 앰프도 없이, 그저 생색소폰과 플룻, 드럼 패드, 그리고 사내가 들고 온 오래된 카혼 하나.
“여긴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도 아니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도 아니지만…”
선생이 색소폰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사람이 멈추는 순간이 곧 무대여.”
바람이 물결을 밀어내듯 천천히 사람들의 발걸음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계단에 앉았고, 누군가는 자전거에 한쪽 엉덩이를 걸치고, 한 아이는 씽씽이를 옆에 두고 귤 까먹으며 우리를 보았다.
선생은 첫 곡으로 ‘Summertime’을 골랐다.
곡 초반, 플룻 아주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음을 놓치자, 지나가던 남자가 휘파람을 잘못 불어 엇박을 냈다. 그게 우리 모두를 웃게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 아주머니의 다음 음은 조금 덜 떨렸다.
한 곡, 두 곡이 지나고 어떤 아저씨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앵콜!”
선생이 깜짝 놀라 돌아봤다.
“우리가 앵콜을 받는 날이 오네…”
그러더니 장난스럽게 눈을 돌리며 말했다.
“형님, 초보 솔로 한번 하실래유?”
심장이 귀까지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천변 공기 덕인지, 음은 농막에서보다 덜 틀렸다.
조금 낮고, 조금 느리고, 조금 비틀렸지만…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날, 양재천 물비늘 아래서 부에나비스타 농막 클럽의 ‘데뷔무대’는 그렇게 시작됐다.
하천 옆 산책로에 도착했을 땐 이미 멤버들이 각자 악기 세팅 중이었다. 여전히 경직된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해체된 리듬, 느슨한 동작들.
누구는 리드 조율하고, 누구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캔맥을 꺼내 손에 들었다.
어둠이 눌러앉을수록 색소폰 소리는 더 멀리 갔다. 흩어지는 빛과 물안개에 선율이 걸려 흔들렸다. 정식 무대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벤치 몇 개와 오래된 가로등이 전부인 곳. 대신 저 멀리 고속도로 소음이 희미하게 깔리고, 불빛은 낮아지고, 바람엔 산 냄새가 실려오는, 색소폰이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퍼져나갈 수 있는 그런 자리였다.
나는 관객으로 초대된 사람이었다. 그것 만으로도 기분이 묘하게 들떠 있었다. 하천 옆 비탈에 작은 랜턴들이 켜지고, 부에나비스타 농막 소사이어티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농막에서 흔히 보던 복장 그대로. 누군가는 목이 조금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또 누군가는 오래된 모자를 눌러쓴 채 리드 정리를 하고 있었다. 딱 그때, 어둑해진 하늘 밑으로 첫 음이 흘렀다.
조금 허스키하고, 약간 비뚤어지고, 완벽하진 않은데… 그래서 더 진했고, 더 사람 같았다. 도시를 벗어나야만 들을 수 있는, 가공되지 않은 정직한 소리. 내가 이런 소리에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사람인지 몰랐다.
둘째 곡쯤 됐을까. 뒤쪽 하천길을 산책하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삼삼오오 벤치에 앉기 시작했다. 조용한 박수 소리와 아이들의 작은 웃음소리가 얇게 깔리고, 색소폰 선율은 바람 방향 따라 이리저리 흩어졌다 모였다.
잠깐씩 농막 풍경이 떠올랐다. 첫 만남. 어두운 농막 안, 흰 벌레들이 스르륵 날아다니던 가을밤, 그때 처음 들었던 색소폰. 누군가는 템포를 틀리고, 누군가는 박자를 잃었지만 모두가 그 무대의 주인이었다. 그 농막의 공기, 냄새, 분위기… 그게 어느새 이 하천길로 옮겨온 것 같았다.
곡들이 더 깊어질수록 하천 위 안개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가로등 불빛이 물결 위에 떨어져 흔들리는데, 그 위로 색소폰 소리가 얇은 은선처럼 흘러갔다. 농막에서 들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공간이 바뀌면 음악의 결이 달라지는구나 싶었다.
마치 조용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오래전 미국의 작은 도시 외곽에서 몰래 열리는 재즈 공연처럼.
곡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그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왔네, 형.”
“멀리서 왔다며? 잘 찾았어?”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색소폰 케이스 사이로 하천 냄새와 흙냄새가 묻어나고, 그 얼굴들이 하나같이 편안했다. 농막에서 보던 그대로의, ‘자기 속도’를 알고 사는 사람들.
마지막 곡은 준비도 없이 즉흥으로 이어졌다. 서로 눈짓 하나 나누고 바로 들어가는 스타일. 그런데 그 곡이 유난히 좋았다. 멜로디가 단순하고, 반복적인데, 이상하게 가슴 한쪽을 톡 건드렸다.
그다음 모임은 일요일 오후였다.
너무 도심은 민원이 들어올 수 있으니, 더 외곽으로 밀려난 자리였다. 고촌 근처 한강 둔치. 댕댕이 산책 나왔다가 잠시 쉬어가는 조용한 구역.
해는 아직 남아 있었고, 강 위로 바람이 일정하게 흘러갔다. 색소폰 키가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릴 만큼.
첫 곡이 막 끝날 무렵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었다.
멤버 중 한 명이 키를 놓쳤고, 에어가 빠진 소리가 ‘삑’ 하고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관객들이 모두 웃었다. 귀엽다는 듯, 실수마저 음악의 일부인 듯.
누군가 말했다.
“오늘 바람이 지휘자네.”
그리고 다들 웃었다.
나는 먼발치에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녹음이나 촬영으로는 이 공기의 질감을 담지 못한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색소폰은 바람과 협업한 사운드였다.
이곳은 외곽 중에서도 약간 ‘도시의 그림자’가 비치는 곳이었다. 철교 아래, 기둥 사이로 기차 소리가 쿵쿵 울리고, 저쪽에선 낚시하던 아저씨들이 라디오를 조용히 틀어둔다.
색소폰은 도시의 잔향과 자연의 공명 사이 어딘가에 놓였다.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 멤버들이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진동과 박자가 곡에 스며들었다. 그 장면이 유난히 멋있었다.
도시의 소음을 이겨내는 게 아니라, 그 소음 위에 또 하나의 서정을 얹는 방식. 바람이 잠잠해지던 순간, 선율이 아래로 또르르 굴러 떨어지고, 바로 위로 다시 치고 올라가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들은 비닐하우스에서 음악을 한 게 아니라 시간을 음악으로 이어오고 있었구나.
그 시간은 장소를 옮겨도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외곽 하천에서도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마침내 홍대 앞까지 진출하는 만용을 부렸다. 하지만 그곳은 달랐다. ‘음악하는 사람’이 넘쳐났고, 그 사이에 낀 우리는 그냥 ‘듣보잡 팀’일 뿐이었다.
멤버들이 막 세팅하려는데, 옆에서 기타 치던 대학생이 말했다.
“어르신들, 여기 자리 돈 내고 쓰는 팀들도 있는데요.”
선생이 피식 웃었다.
“돈은 못 내도, 마음은 내요.”
그 말이 오히려 상대를 자극했는지
“개인 연습하러 나왔으면 집에서 하시죠!”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순간 팀 전체가 멈췄다. 속이 턱 막혔다.
플룻 아주머니는 얼굴이 빨개졌고, 드러머 영감은 “에잉…”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때 사내가 조용히 말했다.
“그냥 합시다. 우리가 쪼는 음악 아니니까.”
그리고 첫 곡을 시작했다.
기타 학생은 비웃듯 뒤로 물러났지만, 이상하게 우리 곡이 끝나자 그의 손이 먼저 박수를 쳤다.
그는 멋쩍게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잘하시네요.”
선생이 말했다.
“우린 잘해서 칭찬받으려 온 게 아니고, 해보려고 온 거여. 음악하려고.”
홍대 첫 공연은 욕 한 번과 박수 한 번이 뒤섞인 이상한 밤이었다. 하지만 더 오래 남은 건… 박수였다.
난지공원은 밤이었다. 우리는 삼겹살 냄새 사이를 지나 강바람 부는 곳에 악기를 펼쳤다.
처음 15분은 괜찮았다. 아이들, 캠핑 나온 부부, 누워 있던 청년들… 모두 흘끗흘끗 돌아봤다. 그러다 갑자기 싸움이 났다. 두 청년이 술에 취해 말싸움을 시작했고, 그중 한 명이 우리 쪽으로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형님들, … 재즈 하시는 거예요?”
말투가 흐릿하고, 눈은 풀려 있었다.
선생이 말했다.
“네. 재즈 하는데, 도움드릴까요?”
그 청년이 갑자기 소리쳤다.
“저두! 연주할 줄 알아요!! 드럼 칠래요!!”
드러머 영감이 놀랐다.
“아이고… 이러시면…”
그가 손을 뻗어 스틱을 잡으려는 순간, 사내가 카혼을 앞으로 당겨 재빨리 손바닥으로 리듬을 쳐서 분위기를 바꿨다.
둥— 둥둥—
그 리듬이 청년의 몸을 슬쩍 잡아끌었다.
청년은 갑자기 그 리듬에 맞춰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뜻밖에도 말했다.
“… 저 이 노래 알아요… ‘Black Orpheus’.”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곡을 아는 술 취한 관객은 처음이었다.
선생이 순간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우리는 그 청년에게 관객이 아니라 ‘게스트’의 자리를 내줬다.
그는 정확한 음을 냈고, 관객들이 숨을 멈춘 채 지켜보았다. 곡이 끝났을 때, 그는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형님들… 고맙습니다. 오늘 너무 힘든 날이었어요.”
그의 친구가 와서 부축하며 말했다.
“이 형… 요즘 우울증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어요. 진짜 감사해요.”
그날 우리는 음악이 사람을 살리는 순간을 조금은 본 것 같았다.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은 조용히 박수를 친다. 큰 함성도, 휘파람도 없다. 대신 오래된 친구에게 건네는 듯한 낮고 따뜻한 박수다.
색소폰을 닦아 케이스에 넣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한다. 자기 목소리 내기 좋은 장소가 필요하다고. 그게 농막이든, 하천 옆 벤치든, 혹은 내가 조용히 듣고 있었던 어둠 속 자리든.
서울 외곽의 그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가방을 둘러메고 집에 돌아가는 길, 멀리서 마지막으로 들려오는 색소폰의 잔향이 귓속에 머문다.
네 곳의 장소, 두 번의 즉흥, 한 번의 실수까지.
한 주 안에 이렇게 많은 공연을 본 적이 있었던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카톡이 또 왔다.
“형, 다음번엔 같이 불어. 관객으로만 있지 말고.”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두 글자를 보냈다.
“됐어.”
관객이면 충분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음률의 서정은 ‘초대받은 구경꾼’ 일 때 더 또렷하게 와닿으니까. 내가 이들의 연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이 안에 ‘끼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허락해 주기 때문이다. 초대받은 구경꾼으로 서 있는 그 조용한 순간.
서울 외곽의 저녁 공기, 물안개, 바람, 가로등, 사람들의 숨결. 그 모든 것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자리.
지금도 나는 다음 공연 안내 문자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
※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있는 색소폰 동호회를 모티프로 한 다큐 픽션입니다.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하되, 감정과 장면은 '글쓰기'를 위해 재구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