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라고 자존심을 걸어?
두 달 전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도 아닌데, 그땐 꽤나 가슴에 맺혔던 사건 하나가 있다. 야채값이 구름 위로 치솟던 추석 무렵이다. 아내가 상추 좀 사 오라면서 이천 원을 쥐어줬다. 오래된 야채가게라 카드 안 받는 건 알겠는데, 문제는 그 돈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는 거다. 요즘 야채가게를 가 본지 오래여서 그랬나?
그 시절 전국 어디를 뒤져도 ‘상추 2,000원’은 전설 속 이야기였다. 2,900원, 3,300원… 전부 금지옥엽. 겨우 쌈상추 세 이파리 들어 있는 1,000원짜리 봉다리가 있긴 했다. 근데 그걸 집으로 들고 들어간다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 ‘이걸 사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30초쯤 서성이다가, 괜히 빈정이 확 상해 버렸다.
문제는, 카드도 안 들고 나온 상황. 추리닝 주머니엔 달랑 천 원짜리 지폐 두장. 그걸로 상추를 구해보겠다고 동네 마트, 슈퍼, 편의점까지 다 돌았다. 쓰레빠 끌면서 ‘상추 탐사대장’ 모드로. 원래 운동이라고 해봤자 가끔 집 앞 공원 걷기가 전부인데, 그날은 어지간한 만보계 기록을 다 깨버렸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고, 마누라는 “왜 안 사 왔어?”라고 물었지만, 나는 그냥 “없더라” 하고 끝냈다. ‘세 이파리 상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왠지 굴욕적인 진실 같아서였다.
그날 이후 기묘한 습관이 생겨 버렸다. 마트만 들어가면 무조건 상추 가격부터 확인하는 것. 누군가는 비트코인 차트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더라. 나는 그 한 달 동안 상추 가격으로 하루의 운세를 점쳤다.
“오늘은 안정세인가? 또 오를까? 혹시 떨어졌나?”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꽤 떨어진 동네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1,900원짜리 상추를 발견했다. 하마터면 "심봤다!"라고 외칠 뻔했다. 세 봉지를 움켜쥐고 계산을 하고 나서 주변을 경계하며 가방 안에 숨겼다.
“이건 보물이다. 집에 가면 마누라한테 생색 좀 내야지.”
하지만 집 냉장고를 여는 순간, 내 환희는 처참히 무너졌다. 마누라가 이미 이마트에서 1,490원짜리 상추를 잔뜩 사다 쟁여놓고 있었던 것. 냉장고는 상추 군단의 등장으로 숲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1,900원 상추들은 구석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상추 사태 이후, 나는 채소 코너만 봐도 긴장하는 체질이 되었다. 그런데 사람은 쉽게 교훈을 얻지 않는 존재다.
어느 날은 마트에서 파 한 단이 980원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건 무조건 득템이지!”
그래서 파 세 단을 한 번에 집어왔다.
돌아와서 의기양양하게 자랑했더니, 마누라가 하는 말.
“어제 쿠팡에서 890원짜리 두 단 주문했는데?”
우리 집은 거의 파 농장이 됐다. 마누라 몰래 파전 부치고, 파절이에 파채, 계란찜에도 괜히 파를 두 배로 넣고…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마누라가 “왜 이렇게 파가 안 줄어들어?”라고 중얼거렸다. 차마 “내가 사서 넣었어”라고 말 못 하고 김칫국만 홀짝였다.
배추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5,900원짜리 배추를 하나 건져오며 생색 좀 내려했는데, 하루 뒤 장모님이 오시더니 말했다.
“지나가다 보니 3,000원 하길래 사 왔어.”
그 순간 우리 집은 갑자기 김장철이 되어 버렸다.
배추 두 통 들고 서로 멀뚱히 바라보다가 결국 김장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은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사소한 패배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세일이라고 사온 귤 한 상자가 시고 떫어서 냉장고 안에서 나날이 말라갔고 특가인 줄 알고 산 두부 네 팩은 알고 보니 ‘원래 가격’이었으며 카드 안 들고 나갔다가 편의점 라면 네 개들이 한 팩을 돈 없어 못 사고 쓸쓸히 돌아온 밤도 있었다
인생이란 전투에서, 이런 소소한 패배들이 모여 자존심과 기가 꺾인다. 대신 생활력은 살짝 상승하는 기분을 맛본다.
내가 봐도 이러는 내가 낯설다. 꼼꼼한 듯 엉성하고, 잔머리 굴려봐야 허당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야채값에 온 정신을 쏟아부으며 사는가? 어쩌다 보니 야채값 뉴스를 누구보다 열심히 보는 중늙은이가 됐다.
근데, 또 이런 일상이 모여 나름 풍경이 되고 이야깃거리도 되고… 결국 이렇게 글이 되기도 한다.
찌질하지만 이게 내 리얼 라이프다.
조금 부끄럽지만, 꽤 재미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