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를 유혹하는 문장들

장석주,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by 이에누

이 책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 빌려온 책이다. 내일까지 도서관에 반납해야 한다.




스스로를 ‘문장노동자’라 부르는 작가답게 작품 목록이 방대하다. 찾아보니 내 서가에도 그의 책이 일곱 권 꽂혀 있네. 《고독의 권유》, 《일상의 인문학》,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북 '오후에 다가온 낯선 풍경들', '오후에 다가온 낯선 사람들'을 살짝 떠올리긴 했었다. '인생 오후에 다가온 낯선 책' 같은 묘한 겹침, ㅎㅎ

그의 글을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글쓰기는 스타일이다》부터였다. 대학에서 교양교육원 부원장으로 있으면서 <인문학 글쓰기> 수업을 맡아 해마다 백여 명의 학생들과 7년 동안 함께 읽은 책이기도 하다.

열흘 전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눈에 띈 근황을 뒤늦게 공유하면서 빌려온 책 이야기도 곁들인다.
구급차로 응급실에 실려 와 입원한 듯한 사진. 링거줄이 주렁주렁 매달린 병상, 책을 들고 침상에 기대어 앉은 그림이 그려졌다. 휴식의 시간이라고 적혀 있었다. 링거 수액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책이라는 또 하나의 수액을 맞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문장노동자라면, 나는 오랫동안 그의 문장 소비자였다. 쾌유를 바라는 댓글을 남겼지만 답은 없었다. 대신 파란 버튼 하나가 눌러져 있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좋은 문장을 필사하면 아낌없이 칭찬했는데, 이제는 내가 필사의 충동을 느낀다. 늦은 밤, 다음 날 아침 노트에 옮겨 적을 문장 몇 줄을 워드 파일에 미리 옮겨 두었다.

덧붙이자면,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필사 문장 중 하나가 그의 시 <대추 한 알>이라고 한다. 광화문 글판 가운데 베스트로 뽑히기도 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




책 속에서 만난 문장들이다.

서른을 갓 넘긴 나이인데, 나는 어쩌자고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지기 시작한다"라고 썼을까?... 지금 나는 진짜로,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지"는 인생의 '오후'에 당도했다.

풍경은 외부의 것으로 엄연하지만 내 안에 들어와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를 하면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풍경을 보는 자는 그 풍경의 너머에서 자신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란 은퇴해서 연금생활자같이 놀멍쉬멍 쓰는 게 아니라 매미가 맹렬하게 울 듯이 하는 노동이다.

시골에서 첫 겨울을 맞을 때 긴 밤마다 경미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저 중세의 사람들조차 어둠 내린 뒤 모여서 음식을 먹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사교생활을 이어갔지만 나는 시골에 격리된 채 세상의 낙오자가 된 느낌과 재기불능에 빠져 무력하게 깊은 나락으로 추락한다.

‘여름, 여름, 여름’ 하고 발음해보면, 모음들이 입안에 가득차며 맑은 노래처럼 울린다.

진정 자유를 갈망하는가? 진정 행복해지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놀고, 웃으며, 사랑하라!

일들을 벌이고 수습에 매달리면 어느덧 초심을 잃고 자기 본분을 망각한 채 엉뚱한 곳을 헤매기 일쑤다. 뜨락에서 피고 지는 모란과 작약 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유조차 없이 바깥일들에 자신을 소진시켜버리는 것은 허무한 노릇이다.

초여름 신록의 기운으로 가득찬 숲속에서 머물며 바람에 나뭇잎들이 사운거리는 소리, 계곡의 물소리, 새들의 노랫소리에 귀기울이며 한가로운 한때를 보낸다. 숲속에 들어서면 먼저 마음에 들끓는 근심과 걱정들은 내려놓을 일이다.

나는 단순한 공간, 단순한 사람, 단순한 문장, 단순한 디자인, 단순한 물건들이 좋다. 단순한 것들은 기본에 충실한 것이고, 복잡한 것은 기본에서 벗어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도서관에서 인류의 기억과 지식들은 이종교배를 하며 다른 책들을 낳는다. 책은 책을 낳고, 그 책은 또다른 책을 낳는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도서관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거대한 책의 우주를 이룬다.

걷기의 즐거움은 풍부한 감각적 경험을 낳는 것에서 비롯한다. 나는 풍경을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며 걷는다.

나는 오후 느지막이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 앞에 멈춰 서 있다… 건널목은 아주 짧게 번성하다. 이 세상의 모든 건널목들은 사라지는 ‘생각 정원’들이다.

나는 이 별에 와서 불을 다루고 말로 소통하는 인류의 일원으로 살았다… 봄과 여름을 각각 예순 번씩 겪고 흘려보내면서 아주 불행한 것만은 아니어서 절반의 불행, 그리고 아주 행복한 것만도 아니어서 절반의 행복은 내 것이었다.




책은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겠지만, 이 문장들은 당분간 나에게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