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와 애사가 겹친 주말 오전
어제는 고교 반창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졸업한 해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의 모임에서 늘 총무 역할을 도맡아 반창회 모임을 주도하는 친구다.
당시 반장은 아니었지만, 총무라는 궂은일을 기꺼이 수행하며 일 년에 서너 번씩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후덕한 성품이라 우리는 그를 ‘총장’이라 불렀다.
친구들의 대소사에 빠짐없이 달려가 축의와 조의를 전하던 친구.
그의 발품에 화답하는 뜻으로 이번에는 그의 혼사를 축하하려는 친구 50명 정도가 결혼식장에 모였다.
피로연장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동창회 분위기였다.
누군가는 오래된 별명을 불렀고, 누군가는 흘러간 시간을 농담처럼 꺼냈다.
사람을 모으는 힘, 인화(人和)의 상징 같은 친구가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은 오늘 일요일 아침, 동창 단체대화방에 이런 소식이 올라왔다.
“안녕하십니까? 동기 친구 여러분.
몹시 안 좋은 일을 전하고자 합니다.”
OOO 친구가 지난해 12월 말 히말라야 등반을 하다가 실족을 하여 300미터 아래로 굴러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본래 1월 7일 비행기 편으로 귀국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실종 신고가 이루어졌고, 현지 전문팀의 수색 결과 그와 같은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했다.
단톡방은 잠시 멈춘 듯 조용해졌다.
이내 이어지는 친구들의 글들.
“정말 슬픈 일이고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가까이 사는 친구로서 평소 챙겨주지 못한 후회가 밀려옵니다.”
“허망하고 애통하기 그지없네요.”
짧은 문장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시간과 기억이 고여 있었다.
누군가는 미안함을, 누군가는 허망함을, 누군가는 끝내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을 적고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 단톡방에는 전혀 다른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내온 사진의 위치를 짚어가며 수색 범위를 논의하는 글.
현지 여행사와 계약했다는 대학 동기의 보고, 수색비용을 대학 동기회비로 부담하겠다는 결단,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한다”는 문장들.
그때 우리는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놓지 못한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모으던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우리는 웃고 있었고, 혼자 길을 떠난 친구는 히말라야의 능선 어딘가에 있었다. 하루의 시간 차이로 두 장면이 겹쳐졌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실종된 친구의 소식을 전하는 글들이 잠시 잦아진 며칠 전부터 다른 애경사 공지가 올라오고, 조의와 축의가 담긴 글들이 다시 이어졌었다.
다른 이야기들에 잠시 묻혀 있던 그의 소식이 이런 방식으로 전해져 오자 대화방에는 허망하고 비통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이 나이에 이르면, 삶은 더 이상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잔칫날 다음 날 초상 소식이 들려오는 일, 기쁨의 능선 뒤편에서 슬픔의 골짜기가 갑자기 나타나는 일, 그런 일들이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점점 자주 경험한다.
인생은 사계절처럼 길흉화복이 교차하고, 기쁨의 능선과 슬픔의 골짜기를 번갈아 건너는 과정이라는 말이 며칠 사이에 너무도 분명해졌다.
어제는 축배를 들었고,
오늘은 명복을 빈다.
우리는 여전히 단톡방 안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음 만남의 날짜를 이야기할 것이다.
누군가의 시간이 멈춘 자리 위에서 나머지 삶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된다.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이 나이에 주어진 또 하나의 숙제인지도 모른다.
친구의 목소리를 대화방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 히말라야의 능선 어딘가에서 멈춰 선 그의 시간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나마 조용히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다시 모였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며 잠시라도 웃을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젊은 부부의 행복을 축원하는 마음과 앞서 간 친구의 명복을 기원하는 심경이 교차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