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의 영업비밀

건강은 어떻게 상품이 되었나?

by 이에누

방송국의 아침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지만, 방송국은 이미 하루를 시작한다. 이른 아침 홈쇼핑 채널을 켜면 익숙한 장면이 반복된다.

비타민B, 포스파디딜세린, NMN, 폴리코사놀, 토코페롤, 흑염소진액, 콘드로이친, 유산균, 오메가 3, 크릴오일, 단백질 보충제, 콜라겐, 루테인….

이름과 효능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쏟아지는 건강보조식품과 의약 관련 제품들이 쇼호스트와 쇼닥터의 언어를 통해 소비자의 일상으로 흘러든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시간대에 지상파나 종편 채널로 돌리면,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유사한 주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동시에 방송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혈관, 관절, 장, 면역력, 기억력, 수면.
홈쇼핑과 방송 프로그램은 마치 보이지 않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일한 화두를 공유한다. 이 현상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 방송 프로그램의 이슈가 쇼핑 아이템으로 전환되는 것인지, 아니면 쇼핑 상품의 판매를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 먼저 존재하는 것인지.
우리는 대략 알고 있지만, 명확히 말하기에는 불편한 영역에 속한다.

불안은 제작된다

쇼닥터의 하루는 병원이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시작된다. 그가 받아 드는 큐시트에는 의학 논문보다 데이터가 먼저 적혀 있다.

검색량, 타깃 연령, 구매 전환율, 그리고 ‘불안 유발 포인트’. 숨 가쁨, 가슴 답답함, 손발 저림.

이는 의학적 증상이라기보다, 시청자의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선택된 언어에 가깝다.
홈쇼핑 방송의 구조는 단순하다.
공포 → 해결 → 결제.
먼저 불안을 제시하고, 그 불안의 출구로 특정 제품을 제시한다. 의학적 설명은 그 과정에 신뢰를 부여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때 쇼닥터는 의사이면서 동시에 콘텐츠 제작자다. 그의 말은 치료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판매를 위한 스토리텔링이다.

'건강'이라는 콘텐츠

방송이 끝나면 유사한 주제를 다룬 기사와 프로그램이 포털과 SNS에 연달아 등장한다.
“심혈관 질환 위험 증가”
“면역력 저하, 중년의 적신호”
“장 건강이 노화를 결정한다”

질병은 더 이상 병원 안의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가 생산하는 콘텐츠가 된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곧 불안해질 증상을 예측하고, 언론은 그것을 기사로 만들고, 방송은 그것을 서사로 재현한다. 그 결과, 건강은 삶의 조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리해야 할 프로젝트로 변한다.
질병은 산업이 된다

제약회사와 연구소, 마케팅 부서의 회의실에서 질병은 의학적 대상이 아니라 시장 데이터로 분석된다. 문제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질병이 될 가능성’이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아플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소비하는 시장.

연구 → 언론 → 방송 → 홈쇼핑 → 제약 → 병원. 끊김 없이 이어지는 폐쇄 루프 속에서 환자는 점점 사라지고,
고객만 늘어난다. 쇼닥터는 이 구조의 핵심적인 연결 고리다. 그는 의학과 광고, 과학과 마케팅, 치료와 판매의 경계에 서 있다.

쇼닥터의 문법

하루가 끝나면 쇼닥터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의 언어는 여전히 방송의 문법을 닮아 있다.
“지금 관리하지 않으면 늦습니다.”
이 문장은 의학적 조언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개인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가깝다.
"당신은 아직 충분히 건강하지 않다.
그러므로, 소비하라."
쇼닥터의 하루는 한 개인의 일정이 아니라, 이 시대 미디어와 의료, 자본이 작동하는 방식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그 하루에 접속한다. 리모컨과 스마트폰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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