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닥터》 14화
폭로는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았다.
첫날은 기사였다. 둘째 날은 해명이었다.
그리고 셋째 날부터 싸움이 시작됐다.
포털 메인에는 같은 기사들이 반복해서 올라왔다.
“건강기능식품 임상 데이터 조작 의혹”
“세프바이오 신제품 논란 확산”
“전문의 한성준, 자료 유출 핵심 인물?”
기사들은 서로 조금씩 달랐지만 방향은 비슷했다.
누군가는 데이터를 조작했고 누군가는 자료를 유출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성준이 있었다. 성준은 그 기사들을 조용히 읽었다.
이제 그는 놀라지 않았다.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기자. 방송사. 예전에 함께 방송했던 제작진.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바라봤다. 아파트 아래에는 여전히 기자 몇 명이 서 있었다.
그날 오후 병원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회의실에는 병원장, 사무장, 법무팀장 그리고 세프바이오 관계자가 앉아 있었다. 서정훈도 그 자리에 있었다. 병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커졌습니다.”
법무팀장이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문제는 데이터입니다. 공개된 파일이 실제 연구 자료와 일치합니다.”
잠시 침묵. 서정훈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도 방향은 잡혀 있습니다.”
모두 그의 말을 바라봤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자료는 유출됐고
그 자료는 편집된 것입니다.”
사무장이 물었다.
“누가 편집했죠?”
서정훈은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유출한 사람이요.”
잠시 정적.
병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이 사건의 방향은 다시 결정됐다.
그날 밤 세린의 메일함에 통보가 하나 도착했다.
“직무 정지.”
사유는 간단했다.
“연구 자료 관리 규정 위반 가능성 조사.”
세린은 메일을 한참 바라봤다.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폭로에는 항상 대가가 따라온다.
연구소에서 짐을 정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책 몇 권. 노트북. 그리고 USB 하나.
그녀는 마지막으로 연구실을 둘러봤다. 이곳에서 7년을 보냈다. 데이터를 분석했고 논문을 썼고 수많은 그래프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 데이터 때문에 쫓겨나고 있었다.
세린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참 아이러니하네.”
그날 밤늦게 세린은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성준이 앉아 있었다. 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였지.”
세린은 부정하지 않았다.
“응.”
잠시 침묵.
성준이 웃었다.
“왜 했어.”
세린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처음엔 그냥 확인하려고 했어.”
“뭘?”
“우리가 진짜 연구를 하고 있는지.”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근데 아니더라.”
성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린이 다시 말했다.
“미안해.”
“뭐가.”
“너까지 끌어들여서.”
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는 잠시 생각하다 덧붙였다.
“어차피 누군가는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어.”
세린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영웅 놀이 하지 마.”
성준도 웃었다.
“영웅 아니야.”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증인이지.”
그때 세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전화를 받았다. 잠시 정적.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윤태진.
“뉴스 봤습니다.”
세린은 짧게 말했다.
“덕분에요.”
윤태진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성준이 고개를 들었다.
세린이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윤태진이 말했다.
“지금 공개된 자료는 일부입니다.”
세린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일부요?”
“네.”
잠시 정적.
그리고 윤태진이 말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성준이 물었다.
“뭐죠.”
윤태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임상 데이터 조작은 시작입니다.”
잠시 멈춘 뒤 그는 한 문장을 덧붙였다.
“환자 데이터가 바뀌었습니다.”
세린의 손이 멈췄다.
“뭐라고요?”
“기록이 바뀌었습니다.”
윤태진은 조용히 말했다.
“부작용 환자 몇 명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처리됐습니다.”
카페 안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성준이 천천히 말했다.
“그럼…”
윤태진이 대답했다.
“네.”
잠시 침묵. 그리고 그가 말했다.
“누군가 실제 환자를 데이터에서 지웠습니다.”
세린은 창밖을 바라봤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이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그럼…”
성준이 이어 말했다.
“이건 연구 문제가 아니네.”
윤태진이 말했다.
“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덧붙였다.
“이건 사건입니다.”
전화가 끊겼다. 세린과 성준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준이 천천히 말했다.
“이거…”
잠시 멈췄다.
그리고 웃었다.
“… 생각보다 커지겠는데.”
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녀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제…”
잠시 멈춘 뒤 조용히 덧붙였다.
“누군가는 진짜 책임을 져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