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닥터》 최종화
폭로 이후 세상은 생각보다 빨리 조용해졌다.
처음 며칠 동안은 뉴스가 쏟아졌다.
건강기능식품 임상 데이터 조작 의혹.
병원과 제약사의 유착 가능성.
익명 내부자의 폭로.
저녁 뉴스에서는 전문가들이 나와 토론을 했다.
“의료 윤리의 심각한 붕괴입니다.”
“임상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합니다.”
“일부 전문가의 과장된 해석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말했고 각자의 논리를 펼쳤다.
일주일쯤 지나자 새로운 뉴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선거 이야기.
주식 시장.
연예인 스캔들.
세상은 늘 그렇게 움직였다.
성준은 아침에 휴대폰으로 뉴스를 넘기다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이름이 더 이상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웃었다.
지워지는 것은 생각보다 빠르다.
병원의 징계는 그대로 유지됐다. 그는 진료실에 들어갈 수 없었고 연구소에도 출입할 수 없었다.
공식적인 직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방송은 이미 다른 의사가 맡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무심코 TV를 켰다가 그 장면을 보게 됐다.
밝은 조명.
화사한 스튜디오.
그리고 젊은 의사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요즘 이런 증상, 그냥 넘기시면 안 됩니다.”
성준은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그 문장은 한때 그의 문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의 문장도 아니었다. 그저 방송에서 반복되는 말일 뿐이었다. 그는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세린은 연구소를 떠났다. 직무 정지는 결국 사직으로 이어졌다. 공식적인 이유는 간단했다.
“연구 윤리 위반 조사 진행 중.”
그녀는 해명하지 않았다. 누군가 기자에게 설명을 하자고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설명은 언제나 가장 약한 사람이 하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짐을 정리했다.
책 몇 권.
노트북.
그리고 몇 개의 외장 하드.
연구소를 나오며 그녀는 마지막으로 건물을 바라봤다. 7년 동안 숫자를 믿으며 살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알고 있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숫자를 거짓말하게 만든다.
윤태진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 전화를 했고 그 뒤로는 연락이 끊겼다.
마지막 통화에서 그는 말했다.
“자료는 다 공개됐습니다.”
세린이 물었다.
“그럼 끝난 건가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윤태진이 말했다.
“아니요.”
그리고 덧붙였다.
“이제 시작입니다.”
몇 주 뒤 성준은 작은 강의실에 서 있었다. 의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었다. 정식 강의는 아니었다. 어떤 교수가 조심스럽게 부탁한 자리였다.
“학생들이 한 번은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강의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아마 뉴스에서 그의 이름을 본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성준은 잠시 학생들을 바라봤다. 젊은 얼굴들이었다. 아직 의사가 되기 전의 얼굴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의학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의사가 되면 아마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겁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
“이 약이 정말 효과가 있습니까?”
학생들 중 몇 명이 고개를 들었다. 성준은 칠판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분필을 들었다. 천천히 한 문장을 적었다.
'누구를 위해 말하는가?'
그는 분필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의학은 사실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실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는 잠시 웃었다.
“돈이라든지 명성이라든지 혹은 두려움 같은 것들.”
학생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성준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늦은 오후 햇빛이 강의실 바닥에 길게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이 질문이 남습니다.”
그는 칠판을 가볍게 두드렸다.
누구를 위해 말하는가?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이 하나둘 강의실을 나갔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학생 한 명이 물었다.
“교수님.”
성준이 돌아봤다. 학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교수님은… 그때 왜 말하지 않으셨어요?”
성준은 잠시 생각했다. 그 질문이 언젠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캠퍼스 길 위로 학생들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거든요.”
학생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성준은 미소를 지었다.
“아마 여러분이 이어서 하게 될 겁니다.”
그날 밤 성준은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TV에서는 건강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화면을 바라봤다.
밝은 스튜디오.
그리고 의사가 말했다.
“요즘 이런 증상, 그냥 넘기시면 안 됩니다.”
성준은 잠시 웃었다. 이번에는 리모컨을 들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잠시 멈췄다.
그리고 덧붙였다.
“넘기면 안 되지.”
그 시각 세린은 작은 원룸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새로운 문서가 열려 있었다. 제목은 아직 없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키보드를 눌렀다. 문장이 하나 적혔다.
“어떤 데이터는 삭제될 수 있다.”
그녀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더 적었다.
“하지만 질문은 삭제되지 않는다.”
도시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병원도 방송도
제약회사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질문들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누구를 위해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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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마음으로 다시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