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연락처를 정리하고 있다. 최근 십 년 가까이 한 번도 통화나 문자를 주고받지 않은 전화번호부터 과감히 지운다. 생각해 보면, 그들 대부분은 지금도 안부를 묻지 않을 사람들이고, 나 역시 그랬다. 앞으로도 별일 없으면 아마 계속 그럴 것이다.
이런 연락처 정리는 마음 한구석에서 은근한 결단력을 요구한다. 매번 그 번호들을 지울 때마다 묘하게 떨리는 손가락, 조금은 미련을 남긴 나와의 눈 맞춤이 있었다.
단체톡방의 존재도 그리 다르지 않다. 무려 스무 개쯤 되는 단톡방이 눈앞에 펼쳐진다. 일종의 사회적 잔상처럼 각 방의 소리와 이미지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수없이 쌓여 있는 대화 창 사이에서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각 방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본다.
가족 톡방은 다르다. 매일 몇 번이고 오가는 사진과 이야기들 속에서 느끼는 웃음과 안도감. 어쩌면 이런 무해한 정서는 이 톡방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들과의 채팅방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어느 날은 친밀하고 소소한 얘기들로 가득 채워진다. 또 어느 날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담소가 될 때가 많다.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위치일까? 생각해 보니 내가 먼저 톡을 보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흥미로운 사진이나 짧은 글귀를 올리며, 친구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나름 의욕적으로 던진 이야기가 하루가 지나도 읽음 표시만 남아 있다면… 그럴 때 느껴지는 미묘한 서운함이 있다. 어쩌면 그들은 내 말에 큰 흥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바쁜 일상 속에 묻힌 이야기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메시지에 반응이 빠른 편이다. 가족과 친구들, 심지어 학생들의 질문에도 빛의 속도로 답을 한다. 예전에는 내가 이렇게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 단순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나 자신도 이 빠른 반응에 중독된 건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내가 정말 관계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이렇게나 큰 사람이었나? 아니면 단순히 이 관심에 대한 갈망을 넘어서 관계 속에서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걸까?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드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그동안 쌓아온 단톡방을 하나씩 닫는다. 차단하지 않더라도 과감히 톡방에서 나와본다. 요즘은 조용히 나가기 기능도 있어서 티 나지 않게 사라질 수 있다.
어떨 땐 금방 눈치챈 듯 쪽지나 재초대 요청이 날아오곤 한다. 그리고는 나간 이유를 물으며 은근한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쩌면 나는 관계에 대한 단순한 결단을 내리기조차 힘든 사람으로 여겨진다. 속 좁고 복잡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 커진다.
살면서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나와 맞는 사람만 곁에 두는 것이 꼭 이기적인 일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SNS와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연결된 세상에서는 특히 그렇다.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단순히 연락처나 단체톡방을 비우는 걸 넘는다. 나 자신을 존중하고 내 시간과 마음의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이다.
SNS의 매력은 즉각적인 반응에 있다. 짧은 시간 안에 관심과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그로 인해 일종의 소속감도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누구나 그러하듯 톡을 올리고 친구들의 반응을 기대하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타인의 반응에 민감해질수록 내가 보내는 톡과 그들이 보내는 반응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걸 자주 느낀다. 내가 정말 그 반응들을 필요로 하는 걸까? 아니면 단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반응을 갈망하는 걸까?
SNS와 단톡방에서 벗어나려면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동안 꽤 오랜 시간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연락처부터 정리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하루에도 수차례 확인하게 되는 단톡방 목록을 줄였다. 이러한 단순한 정리가 자극을 줄여 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의 큰 결단으로 다 해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이건 분명한 첫걸음이다. SNS 속에서 주고받는 겉치레 같은 반응을 줄이자는 것이다. 진짜 필요한 관계만 유지하고 더 깊고 진실한 소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고, 관계중독의 굴레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결단과 실천을 통해 꾸준히 이어 나간다면 SNS 과몰입에서 비롯된 피로감과 관계에 대한 부담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더 건강한 연결을 제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SNS 과몰입과 관계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내 실천은 과연 제대로 효과가 있을까? 시간만 나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때론 별다른 이유 없이 톡을 보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한다. 그러다 보면 반응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상대방의 무반응에 서운함을 느끼고, 관계에서 늘 무언가를 주고받는 데에 얽매이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어느새 그동안 내가 자주 못마땅해하던 ‘톡질러’가 되어 있진 않을까 하는 자기반성이 밀려온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사람들 속에 내가 스스로 들어가 있다. 그들이 나를 피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러니다. 가만히 있는 시간을 못 견뎌 톡방을 기웃대는 버릇. 그게 싫어서 톡의 굴을 스스로 탈출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암튼 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고 있다. 휴대폰을 멀리하고 물리적인 공간에서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려 애쓴다. 읽어야 할 책과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취미 활동에도 시간을 쏟아본다. 그 덕에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서가 아닌, 진정한 소통과 활동을 통해 얻는 만족감을 찾는 중이다. 내면에 집중하고 정리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