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파이어 호텔에서의 힐링 추억담
일상의 고단함에 치이는 당신께는 염장 지르는 얘기겠지만 반년 전으로 되돌아가 본다.
아니! 어쩌면 자존감이 점점 떨어지는 나를 위안하는 힐링 추억담일 수 있겠다. 찌질한 백수생활의 현실도피일 수도 있겠다.
브루나이의 엠파이어 호텔. 별 기대 없이 관광지 중의 한 곳을 생각하고 가족과 동행했다. 딸의 통 큰 배포가 서려있는 야심 찬 투어플랜에 무임승차한 것이다. 두바이의 버즈알아랍 호텔과 더불어 세계에서 단 두 곳밖에 없는 칠성급 호텔이란 것도 가서야 알았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공간이었고 진정한 럭셔리의 정수를 보여 주었다.
브루나이는 보르네오 섬 북쪽에 자리 잡은 작은 왕국이다. 울창한 숲과 평화로운 풍경, 그리고 따뜻하고 낙천적인 사람들이 아직도 떠오른다. 절대왕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술탄의 현명한 통치 덕분에 국민들은 높은 삶의 질을 누리며 안락하게 살아간다. 세금은 낮고,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풍부한 자원과 광활한 삼림 덕분에 경제적으로도 번영하고 있다. 사람들의 미소 속에서 이 평화와 번영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왕국의 중심에는 부드러운 힘과 품위로 국민을 이끄는 왕실이 있다. 왕궁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나라의 상징이다. 왕실의 장엄함과 절제된 우아함이 나라 전체에 스며들어 있고, 그 영향은 국민의 일상 속에도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술탄이라 불리는 왕은 단지 통치자가 아니라, 국민들의 평온한 삶을 보장하는 존재다. 그래서 국민들은 술탄에 대한 깊은 존경과 신뢰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왕실을 존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존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황금빛 대리석과 빛나는 샹들리에로 가득한 로비는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웅장함 속에서도 묘하게 친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느릿하게 걸어 다니는 투숙객들은 마치 에덴동산에 들어온 듯 천천히 주변을 음미했다. 직원들은 한결같은 미소로 맞아주었다. 하나같이 깔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에서 왕실 전용으로 탄생했던 이 호텔이 지향하는 높은 품격이 배어 나왔다.
엠파이어 호텔에서의 시간은 그야말로 꿈결 같았다. 창밖으로 코발트색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객실에서 아침을 맞이하며, 나시 레막 같은 현지 요리부터 유럽식 미식까지 아우르는 풍성한 조식을 즐겼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 호출만 하면 제시간에 맞춰 찾아오는 버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친절한 기사들은 늘 여유로운 미소로 맞이했고 손님을 편안하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호텔 곳곳에서 만나는 직원들의 서비스는 단순한 응대가 아니었다. 마치 오랜 친구가 내 집에 초대해 주는 듯한 따뜻함이 묻어났다. 풀사이드에서 시원한 칵테일을 건네주는 웨이터부터, 도시에서 숨겨진 명소를 추천해 주는 컨시어지까지, 모든 상호작용이 진정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녁이 되면 호텔의 잘 가꿔진 잔디밭을 천천히 산책했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지점에서 발길을 멈추고 하루가 저무는 시간에 심신을 맡겼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저녁 하늘은 점점 연보랏빛과 분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브로나이의 매력은 화려한 부나 재물이 아니라, 평화롭고 고요한 자연 속에서 오는 지극한 평온에 있었다.
건물에 딸린 수영장마다 다른 풍경이 보이고 눈길 닿는 곳에는 늘 새로운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저녁 무렵 호텔 야외 정원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서서히 넘어가면 남중국해가 핑크빛 하늘을 반사하며 끝없는 평화를 안겨주었다. 그 순간, 가족들과 나눈 아무 말 잔치는 일상에서의 그것과는 뭔지 모르지만 결이 달랐다.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미슐랭급 식사를 하면서 브루나이 전통 음식과 이국적인 향신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영화 <음식남녀>의 한 장면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요리가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삶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다가왔다. 특히 예상치 못한 호텔 셰프의 환대는 감동을 주었다. 투숙객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이벤트 메뉴를 서빙하면서 "이건 브루나이에서만 맛볼 수 있어요"라고 미소 지을 때 느낀 따뜻함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마치 <화양연화>처럼 특별한 사건 없이도 서서히 마음에 스며드는 감정들이 쌓여갔다. 호텔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작은 대화, 가족과 해변을 걷던 중 나눈 소소한 이야기...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져 브루나이에서의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호텔의 화려함에 압도되기보다는 그 속에서 느낀 따뜻함과 사람들의 진심이 이 여행을 더욱 기억에 남도록 해주었다.
5일 동안의 편안함과 안락함에 빠져들면서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브루나이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엠파이어 호텔은 단순한 숙소 그 이상이었다. 시간과 장소가 마치 맞춤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매 끼니, 매 대화, 그리고 고요히 흐르는 그 순간들이 모여 인생에서 잊지 못할 여행의 조각조각들이었다.
소풍을 떠난 듯한 기분도 느꼈다. 모든 순간이 힐링이었다.
Q. 단순한 여행기는 아닌 듯한데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죠?
A. 사실 처음엔 이 여행을 글로 남길 생각이 없었어요. 단순히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온 추억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그곳에서 느낀 감정과 순간들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걸 깨달았어요. 단순히 럭셔리한 호텔에서의 경험이 아니라, 마음 한구석을 편안하게 해주었던 그 시간들을 기록해두고 싶었죠. 여행지에서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기 마련인데, 브루나이의 엠파이어 호텔에서의 기억은 오히려 더 선명해지더라고요.
게다가 요즘 현실이 꽤 삭막하잖아요. 치열한 경쟁, 바쁜 일상, 쉴 새 없는 SNS 속 정보 홍수. 이런 환경 속에서 ‘멍 때리는’ 순간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죠. 그런데 브루나이에서는 그런 강박이 저절로 사라졌어요. 자연 속에서, 혹은 호텔의 한적한 정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괜찮은 곳. 그 여유로움이 지금의 저에게 다시 위안이 될 것 같아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Q. 글을 쓰는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A. ‘단순한 여행 기록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신경 쓴 부분이었어요. 보통 여행 후기를 쓰다 보면, 어디를 갔고, 뭘 먹었고, 어떤 시설이 좋았는지 나열하기 쉬운데, 그런 정보는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잖아요. 저는 그보다는 이곳이 왜 특별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감정들을 느꼈는지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또 하나 신경 쓴 건, ‘힐링’이라는 키워드였어요. 엠파이어 호텔은 단순한 럭셔리 호텔이 아니라, 진정한 휴식과 평온함을 주는 공간이었어요. 그 분위기를 글 속에서도 최대한 살리고 싶었죠. 단순히 화려함을 나열하기보다는, 공간이 주는 따뜻함, 직원들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여유, 그리고 조용히 시간을 음미하는 순간들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Q. 왕실과 브루나이의 분위기를 자세히 묘사한 이유는?
A. 엠파이어 호텔을 이해하려면 브루나이라는 나라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곳은 단순히 부유한 나라가 아니라, ‘왕이 곧 나라의 품격을 결정하는 곳’이에요. 절대왕정이지만, 국민들은 왕을 존경하고, 왕 또한 국민을 아낀다는 느낌을 곳곳에서 받을 수 있었어요.
이 호텔 역시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브루나이 왕실과 깊은 연관이 있어요. 원래는 왕족과 귀빈을 위한 궁전으로 설계된 곳이니까요. 그래서인지 호텔의 서비스나 분위기도 단순히 ‘비싸고 좋은 호텔’이라는 느낌이 아니라, ‘왕실의 품격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브루나이를 처음 알게 된 분들도 이 글을 통해 이 나라의 매력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랐어요.
Q. 호텔에서의 기억 중 가장 특별했던 순간이 있다면?
A. 여러 순간들이 기억에 남지만, 특히 해 질 녘 가족들과 나눈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평소에는 각자 바쁘다 보니 가족끼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별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평온했어요. 바닷가에 앉아 해가 지는 걸 보면서, 그저 아무 말이나 던져도 괜찮았어요.
"그런데 말이야, 우리 가족 여행 중에 이곳이 최고 아니야?"
"인정. 솔직히 기대 안 했는데, 진짜 좋네."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너무 좋다."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삶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는 게 느껴졌어요.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호텔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일인데, 직원이 우리 테이블에 와서 특별한 요리를 가져다주며 "브루나이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예요"라고 말했어요. 그때의 미소와 환대가 너무 따뜻해서,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브루나이의 정성’을 맛보는 느낌이었어요. 여행지에서 맛본 음식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그 나라를 기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Q. 독자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A. ‘진정한 휴식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가짐에서 온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
엠파이어 호텔이 분명 아름답고 호화로운 곳이지만, 그곳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럭셔리해서가 아니라,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로움 때문이었어요.
우리 일상은 늘 뭔가를 해야 하고, 성과를 내야 하고, 시간을 알차게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잖아요. 하지만 브루나이에서는 그런 조급함이 사라졌어요. 그저 가만히 있어도 괜찮고,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봐도 충분했어요.
꼭 브루나이에 가지 않아도, 이런 여유로운 순간을 우리 일상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몰라요.
Q. 이런 여행기, 그 때마다 써두면 작품이 될 것 같군요?
A. 여행을 갈 때마다 그곳에서 느낀 감정을 글로 남기고 싶어요. 단순한 여행 정보나 후기보다는, ‘그곳에서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싶고요.
특히, 앞으로는 여행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더 담아보려 해요. 이번 브루나이 여행에서도 호텔 직원, 레스토랑 셰프, 버기 기사 등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의 태도나 작은 친절이 여행의 큰 부분을 차지했거든요. 그런 사람들과의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아요.
브루나이에서의 경험을 글로 정리하면서 다시 한 번 그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 글을 읽은 독자들에게도 잠시나마 ‘마음의 여행’이 되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