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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에누 Dec 06. 2024

[길과 길 사이]             타력의 알고리즘

때론 외부의 힘이 인생을 만든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계획대로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자신의 노력과 열정으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할 때가 많습니다. 또한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끝없는 도전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이츠키 히로유키의 책 <타력>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재고하게 만듭니다. 그가 말하는 타력(他力)은 한 마디로 인생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과 경험, 그리고 우연한 기회와 사건이 성공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단순히 철학적 명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어떤 때보다도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세계, 그중에서도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고, 학습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츠키 히로유키의 타력은 바로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이츠키 히로유키 <타력>                         한강 <소년이 온다>

​어떤 문장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겁니다. 그 문장의 감동을 글에 녹여내서 응모한 단편소설이 신춘문예 당선작이 될 수도 있고요. 요 며칠 사이 노벨문학상 수상이 엄청난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 같은 소설을 읽고 느낀 인간의 고통과 회복에 대한 사색은  또 다른 문학이나 영화 등의 모티브로 틀림없이 진화할 것 같습니다.

​한강 작가도 실제로 타력의 경험을 고백하고 있네요. <소년이 온다>를 쓸 때, 그 시작은 우연히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의 5월 광주 사진첩을 보게 된 순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진첩 속에는 당시의 끔찍한 상황과 광주의 거리에 쏟아진 피와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한강은 그것을 통해 깊은 충격과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순간, 그녀는 그 아픔을 어떻게든 글로 풀어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 결과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지요.

이 소설은 광주에서의 비극적 사건을 담담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그려내면서, 결국 그녀를 노벨문학상의 영예로 이끌었지요. 작가가 광주 사진첩을 통해 얻은 영감은 단순한 개인의 감동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그 회복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리는 작품으로 거듭났다고 전해집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처음부터 정확히 어떤 영상을 볼지 정하지 않고 들어갑니다. 우연히 추천되는 영상을 클릭해 가며 새로운 정보를 얻고, 예상치 못한 관심사에 몰입하게 되죠. 이것이야말로 타력의 사례가 아닐까요?

​유튜브가 아니더라도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나서, 고급 주택가와 서민들이 살아가는 공간의 간극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영화에서처럼 도시생활의 이중적인 면모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가야금 곡조를 들으면서, 그 음악이 전하는 고요한 울림 속에서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 깊은 역사적 배경이 내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새삼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북촌동 골목을 거닐다 보면, 마치 <응답하라 1988>의 등장인물들이 살아가는 동네의 분위기처럼, 따뜻하고 친근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곳의 작은 가게들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스쳐 지나치기 쉬운 일상 속의 소중함을 일깨우지요. "드라마 속에서 느꼈던 그 작은 행복이, 실제 서울의 골목에서 다시 살아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정도로 마무리되는 에세이로 거듭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강연에서 얻은 '행복'에 대한 통찰도 일상의 기록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어떤 TED 강연에서 들었던 '행복은 순간의 선택'이라는 말이 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서울의 분주한 거리에서 잠시 멈추고 나면, 그 강연이 말한 대로, 우리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순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 순간이 바로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나의 발걸음과 그 속에 스며 있는 모든 것들이었음을 알게 된다”처럼요.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인생을 자신의 계획대로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스트레스를 겪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내가 계획한 것이 늘 옳지 않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죠. 반대로,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우리의 기존 계획에 맞추기보다는 우리의 행동 패턴, 관심사, 그리고 심지어 순간의 기분까지 반영해 관련 콘텐츠를 추천해 줍니다. 이것이 바로 타력적인 삶의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마치 인생에서 만나는 우연한 조언이나 사건처럼, 우리는 때때로 나의 의도와 상관없는 영상에 깊이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을 얻고, 삶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얻게 되죠.

물론, 인생에서 계획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기반으로만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삶에도 스스로 세운 방향성과 목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언제나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인생의 여러 사건과 타인의 조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계획은 수정되고 보완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먹자골목에 간다고 치면 처음에는 단순히 마라탕을 먹으러 갔다가, 옆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아저씨의 추천으로 떡볶이집에 들르거나, 낙원상가에서 악기를 보려다가 예상치 못하게 고풍스러운 인사동 골목길을 걷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얻게 됩니다.

똑 부러지기보다는 유연하게!​

유튜브에서 내가 설정한 관심사만 고집한다면, 그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예상치 못한 영상, 추천 콘텐츠를 수용하면서 우리는 더 넓은 세계를 만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계획하고자 하기보다는, 주위의 소리와 경험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속에서 얻은 통찰력과 지혜가 때로는 스스로의 노력보다 더 큰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이츠키 히로유키가 말하는 타력은 우리가 한 걸음 물러서서 인생을 바라보게 합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때로는 외부의 영향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우연이 가져다주는 기회가 나의 예상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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