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살을 델 듯이 뜨거운 물도 알고 보면 40도를 넘지 않는다. 살을 에일 듯이 차가운 물도 겨우 30도를 밑돌 정도다.
피부가 체감하는 온도의 상대성 현상이라고나 할까? 체온을 기준으로 5~6도만 차이가 나도 실제 이상으로 과장된 온도차를 느끼게 된다.
전철에서, 버스에서, 편의점에서, 카페에서, 영화관에서, 식당에서, 병원에서 유통되는 언어들이 바로 그렇다.
거칠다거나 뜨겁다는 표현은 언어의 상대적 온도를 묘사하는 범위에는 들지 않는 것 같다.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도로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막말들과 분노의 충동, 작업장에서 교실에서 온라인 공간에서 시위현장에서 들려오는 품위 없는 쌍욕들, 막장 드라마나 B급 액션 누아르 영화에서 터져 나오는 표독한 언어들, 몸과 몸이 부딪히는 경기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숨소리와 고함소리.
이런 언어들은 오히려 둔탁하고 단순한 폭언으로 느껴진다.
예리한 면도날이 스쳐갈 때는 순간적으로 동통을 느끼기 쉽지 않다. 하지만 칼날의 자국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말과 글이 바로 그렇다. 통증 없이 사람의 마음을 베지만 평생 치유되지 않는 생채기를 남기기도 한다.
언어의 폭력은 둔기로 얻어맞는 느낌이나 뜨거운 불에 덴 아픔과는 질감과 통각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는 7년 전에 발간된 책이지만 갈피 갈피에서 느껴지는 문장의 온기는 여전하다. 글을 쓸 당시에 작가가 느낀 우리말의 상대적 온도차이는 시간이 흐른 지금의 세태에서도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용광로처럼 뜨거운 이야기도 드라이아이스처럼 서늘한 이야기도 아니다. 현실에서 구사되는 언어와 문장의 미묘한 변화를 예민한 감수성으로 포착해 냈을 뿐이다. 이 책은 일상의 언어를 구성하는 재료들을 작가 특유의 분쇄기에 넣고 갈아내어 발효와 숙성을 거쳐 전혀 다른 이야깃거리를 선사해 내고 있었다.
독서하는 내내 일상에서 매일 주고받는 평범한 언어들이 이렇게 다른 온도차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구나라는 감탄의 연속이었다.
그러고 보면 글이 주는 공감은 매력적인 문장을 만들 줄 아는 재능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사건이나 사물 하나하나를 특별한 애정과 관심으로 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아닐까? 스티브 잡스도 마이클 저커 버그도 나영석 피디도 왕년의 코미디언 전유성도 알고 보면 메모광이라고 한다. 그들이 화수분처럼 아이디어를 분출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항상 손에 넣고 있었던 메모지였다.
사소한 얘깃거리도 놓치지 않고 그 안에 담겨있는 언어의 풍경을 정확하게 묘사할 준비가 되어있는 감성과 태도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를 대하는 예의와 글쓰기의 진정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 책이었다.
시시각각 떠오르는 글감과 생각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기억의 상자 안에 담아두려고 노력하는 것. 좋은 글을 생산하는 비결일 것이다.또한 언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