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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에누 Dec 19. 2024

홈쇼핑 매직쇼

노화를 습격하는 광고와 미디어들

  케이블 TV나 모바일 디바이스로 이른 아침 시간대에 홈쇼핑 방송을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흔하게 경험하는 광경이 있다. 비타민, 폴리코사놀, 토코페롤, 흑염소진액, 콘드로이친, 유산균, 오메가 3, 크릴오일, 단백질 보충제, 콜라겐, 루테인... 종류와 효능을 구분하기도 힘들 정도로 넘쳐나는 각종 건강보조 식품이나 약품들이  쇼호스트와 쇼닥터들의 능란한 말솜씨로 홍보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간대에 지상파나 종편 방송으로 채널을 돌리면 쇼핑방송에서 소개되고 있는 상품들과 연관된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을 때가 많다. 때로는 홈쇼핑 방송에서 다루어지는 그 제품들을 출연진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장면들도 눈에 띈다. 우연이라고 보아 넘기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방송에서 다루고 있는 이슈들을 연계해서 쇼핑의 아이템으로 잡은 걸까? 아니면 쇼핑되고 있는 물건들의 마케팅을 도와주기 위한 기획 프로그램일까? 알고는 있지만 대놓고 까발리기에는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때로는 한술 더 떠 두 방송 간의 타이밍을 정밀하게 맞추기 위한 교활한 테크닉을 눈치채고서 씁쓰레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물 흐르듯이 유창한 진행과 게스트의 진지한 설명, 흥미진진한 퍼포먼스 사이사이에 어김없이 뜨는 사회자의 익살스러운 멘트, “60초 후에 공개됩니다”가 그것이다.




 ‘악마의 편집’이라 불릴 만큼 방청객과 시청자의 집중력을 최고도로 끌어올리는 묘미가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건강과 노화 관련 상품들의 간접광고를 위한 배려이다. 이러한 형태의 간접적인 제품홍보는 드라마, 인터넷 공간, 영화에서도 자주 경험된다. PPL이라 불리는 간접광고는 영화나 드라마의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고 작품의 외적 규모를 키우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간접광고와 방송 사이사이에 맥락 없이 끼어드는 중간광고 때문에 작품에 집중하기 힘들고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비난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반적인 지상파 프로그램에서는 간접광고나 중간광고가 비교적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그러나 종편 방송에서는 맥을 뚝뚝 끊는 중간광고가 시청자들을 자주 김 빠지게 만들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특정상품을 사용하는 장면을 노출시켜 작품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노화에 맞짱 뜨는 안티에이징 이슈들

 누구도 노화를 피할 수는 없지만 노화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노력은 인류의 과제이고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노화의 원인을 밝혀내려는 의과학적 진단과 처방도 다양하다. 노화의 주범은 활성산소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강하다. 활성산소는 우리가 산소를 마시고 사는 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생로병사의 악성인자라는 것이다. 지구상에 알려진 질병의 90% 이상이 활성산소로부터 야기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활성산소의 일등공신인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인체의 대사활동에 없어서는 안 되는 효소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화를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징표는 피부이다. 피부는 신체와 생체활동의 중요한 대변인 역할을 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영양의 문제나 염증, 알레르기, 매연, 공해, 스트레스가 피부에 미치는 영향은 누구나 인지하고 신경을 쓰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음식에 들어가는 인공첨가물, 인스턴트 음식, 오염된 물, 고열량 인스턴트식품, 항생제, 알코올, 담배 등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다.

 급격한 일교차와 스트레스로 인한 심혈관계의 급수축, 이완 등도 면역체계의 교란을 가져와 각종 질병을 유발하고 노화를 촉진한다. 따라서 면역력을 강화하는 각종 건강보조제와 피부미용에 도움을 주는 항산화 성분 화장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anti-aging과 스킨케어, 보디케어 프로그램을 통한 노화예방 노력은 이와 관련된 헬스 비즈니스를 번성하게 하고 있다. 성형수술, 헬스케어, 의수와 의안, 인공관절, 체외수정, 장기 이식, 줄기세포 등등 인체의 재생산 기술도 가히 혁명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테크놀로지는 원래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지만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회적 통제도 포함된다. 사회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이를 ‘사회적 테크놀로지’라 명명하고 있다. 몸은 단순히 자연이 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회적 테크놀로지는 몸의 상태나 형태를 생래적이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게 한다. 건강하고 늙지 않기 위해 행하는 단식, 숙변제거, 유기농 식품, 초음파 MRI, 약물치료, 수술과 침, 유전자 치료 같은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 몸에 규칙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현대생활 자체가 기술과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몸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일상화한다.
  
 디지털 기술과 정보, 그리고 각종 미디어들은 질병과 노화의 문제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을까? 각종 방송 프로그램과 스마트폰, 앱, 인터넷과 사회연결망 서비스, 첨단 정보통신기술, 디지털 디스플레이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등의 ICT 융합기술을 활용하는 디지털 연계 프로그램들은 이들 문제들에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까? 아니면 건강과 질병의 이슈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해 먹고 있을까?

불로장생 욕망을 부추기는 광고들

  최근 노화를 예방하거나 치료한다는 식품, 의약품, 기기 관련 광고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동안’, ‘노화 방지’, ‘항산화’ 같은 단어들은 광고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며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는 주로 유명인을 기용하거나 과학적인 이미지를 강조하여 제품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A 브랜드의 한 피부 크림 광고는 유명 배우를 등장시켜 “10년 전의 피부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배우의 무결점 피부와 세련된 배경은 시청자에게 이상적인 이미지를 제공하며 제품에 대한 기대감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광고들은 일반적으로 과학적 증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10년 전의 피부"라는 표현은 단지 은유적 메시지일 뿐이며, 실제로 그러한 결과를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거는 불충분하다. 또한, 단기간 사용으로 즉각적인 변화를 약속하는 경우 소비자의 기대와 현실 사이에 큰 괴리를 초래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서는 ‘리얼 후기’를 강조하는 광고가 주를 이룬다. 한 인기 브랜드는 "이 기기 하나로 집에서 피부 관리를 끝낼 수 있다"며 LED 마스크 제품을 홍보했다. 광고에는 실제 사용자의 ‘전후 사진’을 활용하여 신뢰도를 더했다.

  리얼 후기를 활용한 광고는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효과가 있지만, 문제는 후기의 진위 여부다. 광고주가 선택적으로 긍정적인 후기만을 노출하거나 조작된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의료 기기에 해당하는 제품이라면 광고 심의 기준이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하지만, SNS는 여전히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하철 역이나 대형 빌보드에서도 이런 광고들이 짧고 강렬한 문구로 소비자를 사로잡는다. 한 헬스 기기 광고에서는 “10분 투자로 젊음을 되찾다”라는 문구와 함께 실제 제품 사용 중인 모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는 바쁜 현대인에게 간단한 해결책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광고 속 짧은 문구는 본질적으로 과장된 약속을 담고 있다. 노화는 다차원적인 과정으로, 단순한 기기 사용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광고는 소비자를 오도할 가능성이 크다.

  포털 사이트와 유튜브 광고에서는 "○○ 박사가 추천하는 노화 치료제" 또는 "전 세계가 주목한 신개념 항노화 기술" 같은 클릭베이트형 문구가 눈에 띈다. 이는 전문가 권위를 내세워 제품의 신뢰성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전문가의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더불어 ‘전 세계 주목’ 같은 표현은 과장일 가능성이 높으며, 과학적 근거 없이 판매를 유도하는 방식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노화를 공격하는 게릴라 홍보물들

  웹페이지를 접속할 때마다 함께 뜨는 팝업광고도 스트레스 유발요인이다. 팝업 광고는 강제적인 노출 때문에 효과도 뛰어나지만 광고기피 현상을 불러와 심지어 팝업퇴치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하루 또는 일정 기간 회피하는 노력을 하게도 한다. 달걀 껍데기와 비행기의 식탁 받침대 등에도 광고가 눈에 띄고 공중화장실의 소변기에도 광고가 등장하고 있다.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 계란을 깰 때도, 비행기 좌석에서 식사를 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광고의 습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셈이다.

  건강과 노화 관련 제품에 대한 팝업광고와 간접광고, 돌출광고 등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사의 브랜드를 주목시키고 차별화시키기 위한 기업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게릴라 식 마케팅은 전통매체에 의존하는 광고효과의 한계를 극복하고 크리에이티브의 지평을 넓히는 신선한 실험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수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옥외광고나 배너광고, 극장광고, 전단지 등에서 TV광고나 신문광고에서 보지 못한 파격적으로 창의적인 광고를 만나는 것은 지루한 일상에서 탈피하는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건강과 노화 관련 상품의 간접노출을 무조건 반대하기 어렵다면 광고와 콘텐츠, 기업과 수용자가 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노화 예방 및 치료와 관련된 제품은 소비자들의 민감한 욕망을 다룬다. 하지만 이러한 광고가 과장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 신뢰를 잃고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과학적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제품의 효과와 관련된 명확한 데이터와 인증을 제공해야 한다. 과대광고도 문제다. 실제 효과 이상의 결과를 암시하거나 허위 후기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규제와 법규도 지켜져야 한다. 특히 의료기기 및 의약품 광고는 관련 법규를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소비자에게도 물어야 할 책임이 있고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광고를 무조건 신뢰하기보다는 제품의 성분, 사용법, 후기를 꼼꼼히 살펴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광고는 소비자와 브랜드 간 신뢰의 다리를 놓는 중요한 도구다. 이 다리가 허술하지 않도록 균형과 책임을 갖춘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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