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본 여자, 해를 본 여자
어린이날을 며칠 앞두고 나와 동생은 엄마에게 놀러 가고 싶다고 매달렸다. 옆에서 듣던 아버지는 그런 우리들이 귀찮았는지 처음으로 어린이날 놀러 가자고 하였다. 동생과 나는 하룻밤씩 날짜를 새며 어린이날만 기다렸다.
어린이날이 밝았고, 엄마는 그날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예쁜 옷을 고르고 화장도 했다. 평소에는 질끈 묶었던 머리도 드라이를 해 앞머리를 풍성하게 세웠다. 엄마가 화장대 앞에 앉아 립스틱을 천천히 바르고 있을 때, 나는 엄마가 꼭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동생과 나는 신이 나서 엄마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왔다.
영은이에게 자랑을 하려고 했는데, 영은이는 이미 아저씨와 아줌마의 손을 잡고 대문을 나서고 있었다. 어린이날이라고 새 옷을 사 입었는지 노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다른 날 같으면 조금은 부러워했겠지만, 오늘은 아버지도 함께 놀러 가는 날이라 그런지 전혀 부럽지 않았다.
마당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는 엄마랑 먼저 바닷가에 가 있으면, 동생을 데리고 뒤따라가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와 엄마는 버스를 타고 바닷가로 향했다.
집에서 두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간 곳은 절벽 아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란 조용한 공터였다. 흙바닥은 바삭하게 말라 있었고, 군데군데는 소나무 뿌리가 울퉁불퉁하게 솟아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었지만, 어린이날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였고, 이따금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소나무 아래를 누비고 있었다. 풍선 장수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선을 잡고 있었고, 노점에서는 번데기와 고둥을 팔고 있었다.
엄마를 졸라 고민 끝에 고둥을 사 먹었다. 신문지를 고깔 모양으로 접어 만든 삼각형 봉투 안에 고둥을 넣어 주었고, 나는 봉투를 손에 들고 고둥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짭짤한 국물이 입안에 퍼지고, 조그만 살점을 쪽쪽 빨아먹은 뒤 껍데기를 바닥에 툭 버렸다. 흙바닥 여기저기에 이미 고둥껍데기들이 한가득 흩어져 있었다. 소나무 잎 사이로 햇살이 반쯤 비껴 들었고, 절벽 아래로는 바다가 잔잔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동생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엄마가 ‘화냥년’이라고 불렀던 그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세 사람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가족사진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버지는 그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여자는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동생은 그들 사이에 끼어 있었지만,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런 엄마가 언제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를지 몰라 무서웠고, 여자를 보며 웃고 있는 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나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동생의 손을 낚아채 끌고 왔다. 동생은 아버지가 여자와 함께 밥을 먹고, 어디서 났는지 모를 자동차를 타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아버지와 함께 먹으려고 엄마가 새벽부터 싸놓은 도시락은, 결국 먹지 못한 채 그대로 식어 쉬어 버렸다. 엄마는 도시락 가방을 옆에 둔 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고둥 껍데기가 흙 위에서 바람에 굴러다녔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풍선 파는 아저씨의 외침이 멀리서 들릴 뿐이었다.
그날은 잊히지 않는다. 나중에 사진으로 다시 봤을 때, 마음속 그 기억은 더 깊어졌다. 사진 속에는 소나무 사이 좁은 길을 혼자 걷는 엄마의 옆모습이 담겨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굽은 어깨로 천천히 흙길을 걷고 있는 엄마. 누구도 곁에 없었고, 엄마는 그저 조용히 땅만 보고 있었다. 나는 훗날에서야 그 장면이 얼마나 쓸쓸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찍은 사람은, 아버지였다.
(이미지 출처 ChatGT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