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하나, 숨 하나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우리 집은, 도로에서 골목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골목길은 시멘트로 대충 쓱쓱 발라졌고, 미끄러지지 말라고 선이 몇 개 그어져 있었다.
집에 올라가는 길은 나무 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각 골목 끝에는 집이 한두 채 있기도 했고, 단차가 있어 골목에서 지붕만 보이는 집도 있었으며, 계단을 올라야 닿는 집도 있었다. 차가 겨우 한 대 다닐 수 있는 좁은 길 양옆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어떤 계단을 내려가면 또 다른 골목이 나오기도 했다.
그 계단 중 몇 개는 누군가의 무덤이기도 했다. 한자가 적힌 계단이 무서워, 나는 어린 마음에 그 계단을 뛰어내려 가다 종종 다치곤 했다.
어떤 골목의 끝에는 집 한 채만 덩그러니 있었는데, 그곳엔 길고양이가 잔뜩 살았다. 지금은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이 많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고양이는 ‘요물’이라 불리며 대체로 꺼리는 존재였다. 게다가 고양이 울음소리는 밤마다 아기 울음처럼 들렸고, 골목 어귀에 다다르면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에, 나무와 풀이 울창하게 자란 그 집은 아이들 사이에서 ‘귀신의 집’으로 불렸다.
나중에는 그 집에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살던 아줌마마저 돌아가셨다. 이후 고양이들은 더 많아졌고, 동네에서는 그 집을 골칫거리로 여겼다.
집 근처에서 군것질을 살 수 있는 곳은, 이 동네 하나뿐인 ‘진이슈퍼’였다. 낡을 대로 낡은 간판에는 원래 남색이었을 ‘슈퍼’라는 글자가 하얗게 바래 이름도 잘 보이지 않았다. 슈퍼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작은 점방이었다.
점방의 구조는 꽤 독특했다. 1층에는 두 평 남짓한 공간에 물건들이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고, 한 사람이 겨우 오갈 수 있는 미끄럼틀 같은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작은 방이 하나 나왔다. 그 방에서는 점방 아줌마와 아저씨가 앉아 있거나 누운 채 자리를 지키곤 했다.
잔돈을 받을 때면 내가 그 방 위로 올라가서 직접 받기도 했고, 엄마가 심부름을 시켜 물건을 찾지 못할 때면 아줌마가 내려오기도 했다. 바닥이 돌처럼 딱딱하고 아팠기에, 방 안에는 담요나 방석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미끄럼틀 양 옆에도 먼지가 소복이 쌓인 물건들이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겨울이면 점방 앞 계단에는 호빵 기계가 돌아갔다. 그 안에는 세모난 비닐 팩에 담긴 우유도 함께 돌고 있었는데, 나는 추운 날이면 그 계단에 앉아 따뜻한 호빵 기계에 손을 대곤 했다.
우리 집은 그 점방 가까이에 있었다. 집 하나에 네댓 가구가 함께 모여 사는 곳이었다.
가운데 기다랗고 좁은 마당을 두고 방들이 삥 둘러져 있었고, 대문을 기준으로 디귿(ㄷ)자 형태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푸세식 화장실 하나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 옆에는 나와 동갑내기인 영은이네가 살았다.
그 집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방 두 개를 쓰고 있었고, 햇살이 가장 잘 드는 집이라 내가 살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총각’이라 부르던 사람이 살던 방이 하나 있었고, 그 옆이 우리 네 식구가 살던 방이었다.
다시, 한 사람이 들어가기도 비좁은 사잇길을 두고 또 다른 가족이 사는 방이 있었다.
우리 방은 가장 안쪽에 있었고 햇빛이 들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부엌이 있었고, 그 너머로 길쭉한 방 하나가 전부였다.
아버지와 엄마, 나와 동생이 그 방 하나에 살아야 했기에 방 한가운데에 장롱을 두었다.
천장이 반듯하지 않아 장롱 한쪽이 벽에 딱 붙지 않았고, 그 사이로 틈이 생겼다.
우리는 그렇게 방을 두 개처럼 나누어 썼다.
하지만 형광등이 하나뿐이어서 나와 동생이 지내던 쪽은 낮에도 어두컴컴했고, 밤에는 촛불을 켜야 했다.
우리가 살던 곳의 유일한 장점은 옆집 담장 사이에 있던 작은 뒷마당이었다.
거기에 작은 평상을 놓고, 옆집 담장과 우리 집 처마를 끈으로 잇고 비닐을 씌워 하늘을 가렸다.
방 안에 둘 수 없던 짐들도 그곳에 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그 비닐 아래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워 있곤 했다.
어린 나이인 나조차 제대로 눕기도 어려운 곳이었지만, 그곳은 나만의 아지트였다.
우리 집은 참 가난했다.
엄마는 새벽같이 나가 일을 하고, 밤늦게서야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집에 먹을 것이라곤, 한 솥 끓여놓고 간 시래깃국이 전부였다.
지금은 시래기를 말려서 팔기도 하지만, 그때는 엄마가 새벽시장에 가서 트럭으로 배추를 실어다 파는 아저씨를 도와주며 삯을 받았다.
일손이 필요 없다고 하면, 떨어진 배춧잎이나 벌레 먹은 무청을 주워 오기도 했다.
나는 밥을 참 좋아했는데, 그 국에 찬밥을 잔뜩 말아 배불리 먹곤 했다.
김치조차 없던 식사였지만, 배가 부르면 골목으로 나가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집에서 한참 내려가면, 우리 동네에 유일하게 있던 아파트가 나왔다.
엘리베이터는 없었지만 5층 높이였고, 그 안에는 놀이터가 두 군데나 있었다.
나는 그 놀이터에 몰래 들어가 그네 한 번 타보려고 한참 줄을 서서 기다렸다.
앉는 부분이 나무로 된 그네에 올라 모래 바닥 뒤로 엉덩이를 쭉 내밀고 디디면, 그네는 ‘쑤욱’ 하고 앞으로 날아갔다.
좀 더 높이 날아보려고 두 팔을 더 세차게 휘저을 때면, 어느새 경비아저씨가 나타났다.
“아파트 애도 아닌 게 왜 여기서 놀고 있냐!”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이미지 출처 ChatGT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