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좀 걸어본 여행러의 다이어리
대만이라는 나라를 알게된 것은 대략 15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학교 음악시간에 간간히 틀어줬던 영화들 중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현 대만의 슈퍼스타인 주걸륜과, 금마장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계륜미가 주연으로 출연한 판타지로맨스 영화였다. 그 당시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대만 내 역대 관객 수 1위를 달성하고, 특히 주걸륜의 피아노 연주로 유명한 영화였다. 대만 청춘영화의 막을 연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이 영화는 특유의 대만 청춘 로맨스라는 감성을 한 가득 품은 영화들 중 하나였다.
나 역시 그 기류에 편승하여 대만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가지고 다니던 아이리버 MP3에는 말할 수 없는 비밀 OST가 반복재생되었고, 많고 많은 피아노곡들과 함께 주걸륜이 부른 주제가 불능설적비밀(不能說的秘密)은 시시때때로 내 귓속에 울려 퍼졌다. 결국 학생 시절 용돈을 모아 OST앨범까지 구매한 나는, 그렇게 대만 음악이 궁금해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나는, 자연스럽게 첫 해외여행지를 대만으로 정했다. 그 당시 부산에서 대만으로 향하는 항공편은 중화항공, 대한항공, 에어부산 정도였다. E-GATE도 없이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고, 지금과 같이 트래블월렛이나 토스뱅크 같은 것도 없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도 못한 채 외환은행(당시 하나은행과 합병 전)에서 비싼 수수료를 내고 환전을 해야 했다. 가이드북은 여러 개였지만, 다들 통상적인 정보만 줄 뿐이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 타이베이에 한정된 여행이었지만 혼자 타이베이를 걸으면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중화항공 비행기편을 타고 활주로를 달려가면서, 나는 빠른 시일 내 대만에 다시 한 번 더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정확히 2개월 뒤에 나는 다시 타이베이를 찾았다.
가족들은 가끔 내게 물어보곤 한다.
대만에 그렇게 볼 곳이 많냐?
그러면 나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가족들을 쳐다본다. 대만에 구경할 곳이 많냐고? 당연한 소리다. 가도가도 또 걸어보고 싶고, 내가 모르는 곳이 없었으면 좋겠다. 대만의 역사가 궁금해서 따로 책을 찾아보고, 역사적인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찾아보고. 애정이 없다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나에 꽂히면 무언가만 파는 성격이긴 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하나에 꽂히기란 쉽지 않는 법.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내게 제일 최악이었던 것은 대만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2020년 2월. 친구와 함께 가오슝을 가기로 약속을 했었지만,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세계의 모든 문들이 닫혔다. 대만은 섬 나라라는 특성 때문인지 비교적 더 빠르게 하늘 길을 닫아버렸다. 결국 2019년 8월과 2023년 9월, 그 사이 4년이라는 시간동안 대만 여행에 공백이 생겨버린 것이다.
2023년 9월, 휴가를 통해 5박 6일동안 대만을 다시 다녀왔다. 많은 것이 변해 있었고, 또 변하지 않은 설렘 속에서, 나는 흘러가는 젤리피쉬마냥 이끌려다녔다. 하루는 왜 24시간뿐일까. 배가 불러 많은 것들을 왜 먹지 못하는 것일까. 내 몸은 왜 하나일까. 귀국하는 날에는 아쉬움에 울기까지 했던, 아주 이상한 순간들.
오랜 시간동안 혼자 대만을 걸어다니며, 기억 한 켠에 기록해놓은 것들을 풀어내려고 한다. 그저 인터넷에 떠다니는 맛집들, 쇼핑명소도 많지만, 대만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써보고 싶었다. 세 줄 요약 같은 단막의 정보가 아닌, 긴 실타래처럼 이어지는 기억의 편린들을 엮어내고 싶은 한 사람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