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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Feb 08. 2024

여행이 20대 후반을 살아가는 나에게 주는 의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여행을 뜻하는 영어 travel의 어원은 고대 프랑스 단어인 ‘travail’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며, ‘일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영어에서는 현재까지도 'travail'이라는 단어를 통해 '몸부림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한자로 여행은 ‘나그네려’와 ‘다닐 행’의 조합이다. 내 멋대로 나그네처럼 이곳저곳 다니는 행위라고 어림짐작해 본다.


즉, 여행을 하는 목적은 어찌 보면 현재 상태에서 ‘몸부림치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하나의 행위일 것이다.




뜬끔없이 위키피디아에서 여행의 어원까지 찾아본 이유는 책 ‘기록의 쓸모’에서 여행에 관련하여 저자가 묘사한 문장 때문이다.
 

“여행은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완성되지 않은 생각들을 더듬는 시간이다.”



하필 책을 읽고 있을 때, 나 또한 LA로 여행을 왔기에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이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자.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별다른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주말마다 가족들이랑 노는 시간일 뿐. 맛있는 거 먹고 이곳저곳 구경하고 끝. 그마저도 열심히 운전하는 부모님께 ‘차 안에서 핸드폰 보면 눈 나빠져’라는 잔소리가 패키지로 따라붙은 시간.



어렸을 때는 가족들과 함께 경주의 불국사, 석굴암과 같은 유적지도 많이 놀러 다니고 태국, 일본으로 짧게 식도락 여행도 갔다 왔었다. 그래서 대학교 입학 후 방학 때만 되면 다른 주(state)로 여행을 다니는 동기들을 볼 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 시간에 몇 시간이라도 더 알바를 해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게 제일 급선무였기에. 그리고 당시만 해도 여행은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간접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 데 가서 뭐 하나'라고 다소 냉소적인 태도로 여행 자체를 바라봤었다.



물론 그것 또한 여행의 이유가 맞을 것이다. 여행의 목적은 휴가뿐만 아니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20대 후반을 걸어가는 지금,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환기를 불어넣는 시간이 되었다. 마음이 케케묵고 곰팡이 나는 감정들이 들 때 여행은 나에게 묵은 때가 씻겨나가는 듯한 상쾌함을 경험시켜 줬다. 아마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때문인 걸까.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식당 있고 카페 있는 곳인데도, 내가 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는 순간 내 마음도 리셋되는 느낌이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오늘 어떻게 하루를 시작했을까’부터 ‘어떤 연유로 이곳에 정착하게 된 걸까’ 등등 괜히 그 사람들의 삶을 어림짐작 나에게 대입시켜본다.




다시 이런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된 책 속으로 돌아오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여행에서의 기록에 대해 말한다.



-

여행은 일상을 탈출해 낯선 감정을 느껴보러 떠나는 것인데, 막상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감흥을 다 까먹고 만다. 여행지에서 바로 적는 기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다. 여행하며 쓴 글은 다녀온 후에 후기 포스팅을 올리는 것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



그래서 나 또한 그 자리에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 주는 의미를 적어보았다. 생각나는 대로 적으면,


 • 얼룩덜룩해진 마음을 다시 깨끗이 만드는 시간


 • 이끌려가는 순간이 아니라 주도 있게 이끄는 순간


 • 세상에서 말하는 휘황찬란한 목표들로부터 멀어져 내가 무얼 할 때 제일 편안하고 나 다워지는 지 잠잠하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시간


• 이미 지금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일상 속 업무의 바쁨에서 벗어나, 나를 채찍질하는 여러 할 일 목록들에서 벗어나는 그때에, 여유를 가지고 그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게 된다. 그러면 더 이상 ‘오늘 뭐 했는데 벌써 밖이 어둑어둑해?’ 라며 시간에 이끌려가는 게 아니라,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부터 서서히 지는 노을까지 천천히 하루를 음미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시금 나에게 물어본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계속하며 살아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내가 처음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건  혼자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갔을 때다. 이후에는 주변이 황무지인 캘리포니아의 넓은 대륙을 운전하는 차 안에서였다.



나 혼자, 또는 동행인과 단 둘이 있을 때, 마치 이 세상에 우리밖에 없는 것만 같고 문명의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진 순간,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떠오른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던 대자연을 보며 마음속에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경이로움이라는 감정도 한몫한다. 아마 그만큼 또 나이가 먹었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최근에 읽고 있던 또 다른 책인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이라는 책에는 여행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

걷고 또 걸으며

내가 그려나가는 것은 ‘마침내의 얼굴’ 이리라.


하루하루는 암중모색에 불과하더라도

지나고 보면 점이 되고 선이 되어

마침내 하나의 얼굴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


이쯤 되면 여행의 이유를 인생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의 길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나그네처럼 계속 걸어가는 발자국 하나하나가, 그 자그마한 점들이 선을 이루고 하나의 도형으로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인생이 곧 여행이라고, 나도 모르게 되뇌게 된다.


그러니 때로는 여행이라는 시간 속에서 다시 한번 내 삶을 재정비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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