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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Jul 09. 2024

점점 어려워지는 글쓰기

좋은 글의 기준은 뭘까

현재 내 브런치를 구독해 주시는 분이 126명이 되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기록’이 주목적이었다. 손에서 속절없이 빠져나가는 시간들을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어떻게 해서라도 꼭꼭 붙잡아두고 싶었다. 그러나 미미하지만 꾸준히 늘어나는 구독자 수와 브런치 플랫폼을 통해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읽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글을 쓰는 게 어려워졌다.



그전에는 생각나는 것들을 술술 써 내려갔는데, 그저 마음에 오가는 내용과 그때의 진솔한 감정들을 어떤 거리낌 없이 풀어나갔는데, 왜인지 지금은 모니터 앞에서 글을 썼다 지웠다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래서 근 일주일 간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지 못했다.



메모장에 그때 그때 적어놓은 생각들은 많은데, 한데 묶는 게 잘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가 적은 글들이 이미 그전에 말한 내용을 되풀이하는 것 같거나, 일반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말을 앵무새처럼 다시 읊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신선할 게 없었다.



반대로, 브런치와 블로그라는 플랫폼을 통해 동경하는 글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에세이 형식의 이야기 줄글로 펼쳐진 그 글들은, 주로 일상 속에 있는 작은 순간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당차고 단단함, 또는 많은 애환이 어려있지만 꾹꾹 글자 속에 덤덤히 적어 내려 가는 마음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에도 목소리와 표정까지 생생히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분명 생면부지의 그 작가님의 감정에 나도 모르게 이입이 된다. 그 순간,  "어떻게 이런 글을 쓸까"라는 감탄과 함께 이런 글이 적어도 나에게는 좋은 글의 기준이 되곤 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쓰는 글들이 가끔 형편없게 느껴질 때는.

특히 '온실 속 화초' 같다는 느낌이 스스로에게 들 때면, 글로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든다.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최은영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몫> 에는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 속 화자의 대학동기였던 희영은 모두가 감탄하는 글 쓰기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중단하고 오히려 봉사로서 ‘행위’로 실천하는 내용이 나온다. 희영은 말한다.


"글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모르겠어. 정말 그런가.. 내가 여기서 언니들이랑 밥하고 청소하고 애들 보는 일보다 글 쓰는 게 더 숭고한 일인가,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누가 물으면 난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아.(..)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약 4달 전 이 글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단순히 '인상 깊다'라고 느꼈다. 희영의 마음이 쉽게 공감은 안 됐다.

누군가는 그런 특출 난 재능을 가지고 싶어서 부단히 애쓰는데 저렇게 쉽게 방향을 튼다고?


그러나 지금은 그 마음에 십분 공감한다. 물론 희영이 쓰는 글은 나의 글과 달리 사회 문제를 담론하고 목소리를 내는 글들이어서 글의 종류가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나는 희영처럼 글을 잘 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괜히 불쑥불쑥 이런 마음이 올라오곤 한다.



누군가는 계속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 실력도 점점 좋아질 거라고 한다. 다들 말한다. “꾸준함은 이길 수 없다”라고. 그 말을 믿고 싶다. 믿는다. 단지 몇 년 뒤에 내가 내 글을 볼 때 부끄럼 없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 글이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작가님들은 어떻게 글을 꾸준히 쓰시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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