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옷을 잘 사지 않는다. 친언니나 주변에서 주는 옷을 나눔 받아 입는 것을 좋아하고 중3 아들 옷도 가끔씩 입는다. 코로나19 전에는 옷이 싸다고 사고, 예쁘다고 사고, 스트레스 풀려고 사고, 출근복이 없다고 사는 등의 갖가지 이유로 옷장에 옷이 넘쳐났다. 새 옷을 입었을 때 기분전환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는 얼마가지 못했다. 그즈음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많은 옷을 버리고 나눔 하거나 당근에 팔기도 하였다. 중간에 새로운 취미인 골프를 만나게 되면서 한동안 골프 옷을 사기도 하고, 줌바와 무에타이를 접한 후 운동복을 많이 샀지만 지금은 옷에 대한 욕심이 많이 줄어 새 옷을 가급적 사지 않는다.
이런 내가 한걸음 가게에서 진행하는 의류교환파티 '바꿔 입장'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말 그대도 옷을 바꿔 입는 행사이다. 가져온 아이템 수만큼 교환권을 받아 원하는 옷으로 교환하는 것인데 이번에는 가을 의류(모자, 가방 포함) 3점 이내가 조건이었다. 지난번 여름 의류 교환 파티에 이어 나의 두 번째 한걸음 가게 발걸음이 되었다.
즐거운 옷 교환 파티를 위해 오염 없이 잘 관리된 옷으로 가져와 주세요.
안내된 문구처럼 남이 입기에 괜찮은 옷 3벌을 옷장에서 골라내었다. 몇 년 전에 샀지만 그동안 잘 입지 않아 옷장에만 있었던 아이보리색 니트, 날씬한 핏이 돋보이지만 이제는 나에게 조금 작아진 청자켓, 따뜻한 가을 검은색 아우터 3점을 가방에 넣고 한걸음 가게로 갔다.
사전 신청한 시간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옷 교환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 저번과 달리 초등학생들과 2-30대의 젊은 사람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많이 있었던 것이 눈에 띄었다. 예전에는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 보았는데 탈의실이 새롭게 생긴 것도 매우 반가웠다. 한쪽에서는 다양한 워크숍이 열렸고 옷을 수선하거나 티셔츠를 잘라서 티매트나 방석을 만드는 활동도 꽤 인상적이었다.
입장 후 이름을 확인하고 옷 3벌을 봉사자분들께 드리니 옷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셨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교환권 3장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번의 경험자답게 지정된 곳에서 스토리 태그에 옷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좋은 새 주인을 만날 수 있도록 옷걸이에 잘 걸어두었다. 영역별로 옷들이 잘 나뉘어 있고 매우 깔끔하게 걸려있어서 옷가게에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요즘 자제는 하고 있지만 쇼핑은 즉각적인 기분 전환에 매우 효과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본격적인 무료 쇼핑 타임이 시작되었다. 여성들의 옷이 많아 옷을 구경하고 고르는데 재미가 있었다. 먼저 하늘색 트위드 재킷이 눈에 띄었다. 깔끔하고 예뻤다. 무엇보다 입어보니 찰떡같이 나의 체형에 잘 맞았다. 봄철에 청바지나 정장 바지에 입으면 예쁠 것 같았다. 그다음은 주황색 반팔 니트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퍼스널 컬러와는 맞지 않지만 입으면 왠지 생기가 돌 것 같아 이것도 하나 집어 들었다. 마지막으로 회색 맨투맨티를 보니 가운데 스팽글 사슴 캐릭터인 밤비가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옷에 쓰여있는 설명(스토리태그)도 웃겼다.
회색 맨투맨 티가 좋으나 30대에게 밤비란 좀..
30대에게도 버거운 밤비 스팽글 티를 40대인 내가 선택을 했다. 40대도 밤비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다. 야무지게 3벌을 고른 후 교환권과 바꿔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걸음 가게를 나왔다. 나오기 전 나의 환경 영수증을 확인하니 그 뿌듯함이 배가 되었다.
옷 세벌의 생명을 이어나가는 당신! 새 옷보다 중고 옷 세 벌을 다시 입어 물과 탄소를 이만큼 절약, 저감 하였습니다.
물 1,009L( 한 사람이 145일 동안 마시는 물의 양) x 탄소 11,444g(10년생 신갈나무 9그루가 1년간 흡수하는 CO2 양)
새 옷을 사지 않고 옷을 교환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이 이렇게 컸다니 새삼 놀라웠다. 옷이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생각보다 길어서 한걸음 가게의 '바꿔 입장' 파티에 참여한 내가 자랑스러웠다. 옷을 바꿔 입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한 여기 온 사람들이 대단히 멋졌다. 이 외에도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추천템이 소개되어 있어서 많은 공부도 하고 왔다. 집에 오자마자 내가 고른 옷들을 깨끗이 세탁하고 다음날 입어 보았다. '밤비' 녀석이 눈에 띄긴 했지만 교환한 옷을 입는 것이 즐거웠다.
30대가 소화하기 힘든 옷을 40대가 입어보다!!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뭐든 지 빠르게 바뀌고 그 변화의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다. 패스트 패션을 따라가지 못하고 유행에 뒤처져 있더라도 옷을 교환해서 입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위해 조금이라도 눈을 뜨고 노력하고 있는 나 자신이 오늘만큼은 밤비의 반짝이만큼 빛이 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