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년 만에 초등학교 담임교사를 맡게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교과전담을 주로 한터라 담임교사에 비해 짐이 적어 일 년에 한 번씩 선생님들이 대대적인 교실 이사를 할 때도 여유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그 대대적인 교실 이사가 곧 나에게 닥칠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19년 동안 담임과 교담을 하면서 모은 짐을 포함해 일 년 동안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과 지내면서 시나브로 교실에 물건이 많아졌다. 가득 찬 선반의 물건들이 본인들을 열심히 사용해 달라고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지만 현실은 이를 유지하기가 꽤나 힘들다. 코로나 시절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집에 있는 물건을 많이 나누고 버리면서 비움을 한창 실천했었다. 환해진 집이 좋았고 마음까지 상쾌해져 비움의 즐거움을 많이 느꼈으며, 인간이 살면서 생각보다 많은 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이어트의 요요처럼 방심하는 사이 많은 물건은 우리 집의 한 부분을 차지하였고 옛날의 잡동사니가 많은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번씩 유튜브의 정리 및 미니멀라이프에 관한 영상을 보고 각성하여 집의 물건을 점검하고 비우고 또 사는 행동을 몇 년간 반복하였다. 다양한 취미 활동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취미활동에 관련된 장비를 마련하는 것과 미니멀라이프의 균형을 잡는 것은 아직도 어렵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지속 가능한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서 정기적으로 정리 정돈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젠가 사용하겠지라는 마음보다 지금 현재의 삶에 충실하며 소유보다 더 중요한 경험을 하자는 것이 어느 순간 내 삶의 모토가 되었다.
하지만 교실의 상황은 집과 좀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교실에 있는 물건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꼭 쓰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초등학교 담임의 특성상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년을 아우르고 음악, 미술, 체육을 포함한 전 교과에 창의적 체험학습까지 수업을 해야 한다. 물론 학년 연구실이 있어 공통으로 쓰는 물건들을 거기에 보관하고 함께 사용하고 있지만 반마다 수업에 관한 물건부터 교사의 개인짐까지 그 양이 엄청나다. 미니멀한 교실을 꾸꾸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물건 때문에 맥시멀리스트 교사가 되어가고 있다.
1. 보드게임
교담을 할 때는 보드게임이 크게 필요 없었지만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은 이후 보드게임이 우리 교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아이들의 놀권리를 위해 수요일은 중간놀이 시간이 30분이고 그 외의 요일은 20분이다. 이 시간 동안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 뒤편에 옹기종기 모여서 보드게임을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지만 남녀 구분하지 않고 잘 노는 게 보기가 참 좋다. 펭귄얼음깨기, 젠가(원목블록쌓기), 스피드컵쌓기, 스틱스택 등 집중력을 요하는 보드게임부터 젬블로, 아발론 클래식, 다이아몬드, 다빈치, 스플랜더, 루미큐브, 게스후 등 전략게임도 많다. 학기 초 학급운영비로 산 보드게임도 많지만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 집에서 했던 보드게임도 우리 교실에 많이 가져다 놓아 해마다 보드게임이 점점 불어 가고 있다.
수업시간에 활용하는 독서보드게임도 있다. 국어시간 온책 읽기를 한 후 그에 관한 내용을 보드게임을 통해 친구들과 공유한다. 사회시간과 역사 동아리 시간을 위한 부루마블 대한독립이라는 보드게임도 모둠 개수대로 있기에 보드게임이 교실에 많은 편이다. 교사 보드게임 동아리나 보드게임 연수도 있듯이 우리 초등학교 교사들은 보드게임과 인연이 끈끈하다. 보드게임은 연령에 맞게 구비 해야 하기에 담임을 할수록 늘어가는 것 같다. 담임을 하다가 운이 좋게 교담을 하더라도 언젠가 또 담임을 할 때 써야 하므로 함부로 비울 수도 없다.
2. 도서
학년 초 도서실에서 학년에 맞는 책을 40권 정도 대여해 준다. 학년이 끝나면 반납을 해야 하는 도서들로 1년 내내 우리 반 친구들과 함께 한다. 이 외에도 온책 읽기를 위한 같은 책 25권 정도를 빌려준다. 반 별로 다르므로 돌려 읽으면 자연스럽게 반 수대로 온책 읽기가 된다. 이 책들은 도서관에 반납을 하면 되지만 내가 집에서 개인적으로 가져온 책들이나 생태독서 신청을 해서 교육지원청에서 받은 책들은 비우지 않고 계속 가지고 가게 된다. 이사할 때 제일 무거운 짐이 책들이어서 비우고 싶지만 없으면 아쉽기에 늘 나의 교직 생활과 함께 할 운명이다.
3. 다양한 바구니
정리 수납 전문가가 늘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정리정돈을 할 때 수납바구니를 많이 사지 마라는 것이다. 하지만 노란색 바구니는 교실에 없어서는 안 될 다용도 용기이다. 바구니에 보관하면 모둠별 물건들을 사용할 때 바구니만 옮기면 되므로 아주 유용하다. 잘 사용하고 있지만 그만큼 자리 차지를 많이 하고 있다. 여기에 공, 다양한 간식, 탁구공, 색연필, 잡동사니 등이 들어간다.
4. 작품 전시 및 환경 정리 물품
미술 작품을 전시할 미니이젤이라는 것이 있다. 아이들 작품을 전시할 때 이젤을 사용하면 한눈에 보기 쉽고 폼이 난다. 이것도 학생들 개수대로 있어 부피가 커서 이사할 때 상자 하나를 차지한다. 신규 때부터 환경정리를 위해 모아둔 갖가지 물품들도 나의 정성스러운 손때가 묻어있어 그동안 이사를 할 때마다 계속 들고 다녔다. 폼블록으로 만든 '솜씨자랑', '시간표', '게시판' 등 이것들도 모아두면 한 상자가 나온다. 지금 당장은 쓰지 않더라도 언젠가 쓸 수 있어 비울 수 없다. 갖가지 색칠도구나 종이류, 색종이, 허니보드판, 자석, 종이자석, 라벨지, 손코팅지, 클립, 고리, 집게, 스템플러 등은 초등교사와 뗄 수 없는 친구들이다. 소모품도 많아 학년이 끝나면 많이 비어지기도 하지만 새 학년이 시작되면 또 준비를 해야 하는 물품 등이다.
5. 재활용품
실과 시간에 사용한다고 집에서 나온 우유통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수납함이나 서랍 등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1년 동안 모은 우유통이 선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또 신발상자 같은 괜찮은 상자들도 언젠가 수업에서 사용될 것 같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실제로 교실에 있는 물건이 집과는 달리 현재를 포함해 언젠가 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교실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우유팩, 건전지, 투명 페트병, 캔을 모을 수 있는 공간도 없애기 쉽지 않다. 모아서 재생휴지와 새 건전지로 바꾸는 것도 살아있는 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6. 교사의 개인물품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맥시멀리스트 교사의 개인물품은 굉장히 많다. 현재 우리 5학년 친구들이 통기타를 배우고 있어서 집에서 기타를 가지고 와 교실에 두었더니 존재감이 상당하다. "나를 연주해 주세요!"라고 계속 말하고 있다. 미니가습기, 커블체어, 따뜻한 물주머니(겨울에 사용), 라벨기, 빨대 있는 텀블러, 물 1리터가 들어가는 물통, 뚜껑 있는 컵, 비타민, 운동장 수업을 위한 모자, 운동화 등 교실에서 사용하는 물품이 많다.
7. 각종 교구
수업에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각종 교구들도 교실에 많다. 요즘에는 에듀테크로 컴퓨터 화면에 타이머를 띄워 놓는 경우도 많이 있으나 개인적으로 칠판에 타이머를 부착하여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하다. 탁구공에 번호를 적어 로또처럼 뽑을 때 사용하는 공주머니, 음악 시간에 활용하는 전자 피아노, 팀을 나눌 때나 벌칙 수를 셀 때 사용하는 색깔 칩, 점수를 확인하는 점수판, 교사용 단소 및 리코더, 리듬막대, 손으로 누르는 호루라기,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넘길 때 사용하는 포인터, 교사용 자 및 각도기 등 교구가 매우 다양하다.
정리수납 2급 자격증을 가진 사람으로서 깔끔한 공간을 위한 제1원칙은 '비우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교실에 있는 많은 물건은 다 사용되고 있고 지금은 아니더라도 학년이 바뀌면 언젠가 또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 1년에 한 번씩 교실이사를 할 때 많은 짐을 옮기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어떤 선생님들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미니멀하고 보다 깔끔한 교실을 만들고 싶지만 많은 물건들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며 더 열심히 모은다. 이 물건들이 나에게 계속 써달라는 신호를 보내기 전에 활용을 잘한다면 물건이 많더라도 별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지만 당분간 교실에서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