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근길에 라디오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웃음이 풉-하고 터졌다.
(라디오 진행자) "123*번님이 보내신 문자입니다. '오늘 학부모 공개수업 날인데 가기 싫네요!' "
'학부모가 학교에 가는 것이 부담일 수 있지.'라고 생각한 순간 진행자의 뒤에 따라오는 말이 방심한 청취자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렸다.
"제가 교사인데 학교에 가기 싫어요!"
인터넷 유머에서 본 듯한 내용이지만 어쩐지 공감이 많이 가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학부모공개수업이라고 해서 왜 학부모라고만 생각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편협한 사고를 또한번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교사도 학교 가기 싫은 날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런 날이 학부모공개수업과 같은 행사가 있는 날이라는 것을, 라디오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그 선생님의 유쾌함에 아침 출근길이 보다 가벼워졌다.
지난주 화요일에 나 또한 우리 5학년 1반 친구들과 함께 학부모공개수업을 하였다. '학부모참관수업'도 맞는 말이다.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부모참여수업'과는 달리 학부모가 교실 뒤에 서서 자녀들의 학습을 참관만 하니 참여수업과는 많이 다르다. 20년 차가 되고 보니 초임시절과 달리 긴장은 많이 하지 않지만 공개수업을 끝내고 나면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내 모습을 거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루 전 복도에 참관록과 등록부를 준비해 두고 '우리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칭찬과 격려의 말'을 쓸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하였다. 학부모 공개수업에 관한 주의 사항도 잘 보이도록 배치하고 촬영금지도 강조해두었다. 지난 4월 '핑크셔츠데이(학교폭력예방을 위한 날)'에 찍은 아이들 사진 액자도 갖다 두니 훨씬 분위기가 좋아진 느낌이다. 복도에 있는 학생들 작품도 바람에 날리지 않게 재정비하였고 문틀에 쌓여있는 먼지도 이번참에 쓸어내었다.
공개수업 당일, 수업공개는 3교시인 10시 50분부터 시작인데 10시 30분부터 일찍 오신 분들이 계신다. 한분 한분 반갑게 인사하며 "누구 어머님이세요? 누구 아버님이세요?" "**이 어머님, 아버님을 아주 많이 닮았네요!"와 같은 성격 좋아 보이는 멘트를 날린다. 내향인인 내가 이때만큼은 '확장된 선택적 사회성'을 장착한 후 잠시 동안 외향인으로 바뀐다. 학부모 상담 시 면담은 많이 없어 처음 얼굴을 뵙는 분들이 대다수였는데 자녀들과 느낌이 비슷해 매년 신기하고 재미있다. 특히나 우리 반은 아버님들도 많이 오셔서 교실로 다 못 들어오시고 복도 창문을 통해 보시는 분들도 많았다. 나중에 등록부를 보니 20명이나 사인을 하셔서 놀랐다. 초등학교 고학년은 저학년에 비해 많이 안 오는 분위기인데 아버님들도 참석을 많이 하여 높은 관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등록부를 걷어가신 옆 반 선생님으로부터 5학년 중에 우리 반이 제일 많이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공개 수업 때도 평소 수업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항상 깔려 있어 이번에도 부담 없이 준비를 하였다. 다만 학부모가 공개수업에 오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가 발표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 반 모든 친구가 발표를 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학습 주제로 발표 기회가 많이 있는 5학년 1학기 [국어 4단원 글쓰기의 과정] 6차시인 '호응 관계가 알맞은 문장 쓰기'를 선택하였다.
동기유발 단계에서는 4단원 1차시에 공부했던 문장성분을 활용하여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문장을 만들어 보는 활동을 하였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특정 행동을 보고 '주어, 서술어, 목적어'가 들어간 문장을 만들어 복습을 할 수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도 엄마, 아빠들이 교실 뒤편을 가득 채워 긴장을 했는지 평소보다 손을 많이 안 들었지만 대답은 곧잘 하였다.
이러한 문장 성분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짝을 이루었을 때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도록 선을 이어보도록 하였고 이를 통해 호응의 개념도 살펴보았다. 문장에서 앞에 어떤 말이 오고 짝인 말이 뒤따라오는 것을 호응이라는 것을 배웠고, 호응이 되지 않으면 문장이 어색해지거나 전달하려는 뜻이 잘못 전해질 수 있음을 예시를 통해 살펴보았다.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는지 한두 명씩 손을 들기 시작했고, 골고루 발표를 시키기 위해 '로또'를 이용해 번호를 뽑기도 하였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번호가 적힌 공을 뽑기를 뒤편에 서계신 부모님께 부탁드렸더니 분위기가 밝아졌다. 어떤 어머님은 실제로 본인의 자녀 번호를 뽑아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사기도 하였다.
문장에 쓰인 호응관계의 종류(시간을 나타내는 말과 서술의 호응, 높임의 대상을 나타내는 말과 서술어의 호응, 동작을 당하는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를 알아본 후 그 종류를 생각하며 연결하는 활동도 하였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 관계를 생각하며 '숲 속에서 다람쥐와 새가 지저귑니다.'를 '숲 속에서 다람쥐가 뛰어놀고, 새가 지저귑니다.'로 바르게 고쳐보았다. 이 부분에서 교과서에 적는 내용이 많았는데 수업을 보러 오신 부모님께 "앞으로 나오셔서 우리 아이가 글씨 바르게 쓰는 지도 한번 살펴보시고, 교과서도 한번 둘러보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처음에는 쑥스러웠는지 한두 분만 자녀의 자리로 와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글씨도 살펴보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보다 많은 분들이 자녀 책상 옆으로 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후 정답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발표를 안 한 친구들에게 우선권을 주어 모든 아이가 목소리를 내어볼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오늘 배운 활동을 정리하기 위해 인기 수업놀이인 '히든밤' 게임을 하였다. 오답과 정답이 쓰여 있는 여러 장의 카드를 뒤집어 놓고 주사위의 개수대로 정답을 뒤집으면 카드를 가져가는 게임이다. 가져간 카드는 나중에 점수가 된다. 아무리 주사위 숫자가 커도 중간에 오답을 뒤집으면 다음 사람에게 기회가 넘어가므로 친구들이 뒤집는 카드를 유심히 잘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수업놀이지만 학부모를 위해 설명을 간단하게 하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모둠별로 자리를 일사불란하게 만들고 각 모둠의 도우미가 나와서 카드와 주사위를 가져갔다.
"자유롭게 돌아다니시면서 활동하는 거 보셔도 됩니다!" 모둠별 활동을 하는 동안 자녀들이 잘 참여하는지,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는 지를 관찰할 수 있으므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모둠 활동은 교사의 개입이 다른 활동보다 적어서 부모님들과 잠깐의 수다도 떨 수 있었다. 우리 반에 있는 공기정화식물, 뽑기에 관한 내용 등 궁금한 게 있는 부모님도 편안하게 질문을 하셨다.
무난하게 공개 수업을 마칠 것 같았는데 한 분이 사진을 찍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공개 수업 며칠 전부터 지속적으로 알림장에 '사진 및 영상 촬영 금지'를 써주었고, 당일에도 여기저기 '촬영금지'라는 안내를 붙여놓아서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 그분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갔다. 더욱이 학교 자체에서 이-알리미로 학부모 공개수업 안내장을 보낼 때도 이에 관한 내용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이를 잘 지켜주셔서 너무 감사하였지만 한 명의 학부모가 수업 중에 사진을 찍어 마음이 불편하였다.
"어머님, 사진 찍지 말아 주세요."
"제 아이 찍은 건데요?"
내 상식으로는 '죄송합니다 또는 알겠습니다'라는 반응이 먼저 나오는 건데 당황하여 말문이 막혔다. 수업시간이라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무력감이 내 몸을 감쌌다. '내가 본인 자녀만 찍은 지 어떻게 알 수 있지? 뭐가 이렇게 당당하지? 그렇게 안내가 되었는데도 이걸 참지 못하고 굳이 수업 시간에 사진을 찍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른 분들도 얼마나 자기 자녀의 학교 모습을 찍고 싶겠는가? 교사와 아이들의 초상권을 위해 찍지 않고 참는 것임을 알기에 씁쓸한 기분은 하루 종일 지속되었다.
마무리 시간이 다가오자 다 함께 오답카드를 찾고 정답문장으로 바꾸어 보았다. 발표를 할 때 자석으로 좌석표에 체크를 잘해서 부모님이 오시진 않은 친구까지도 다 발표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바쁘신 와중에 학부모 공개수업에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에어컨이 너무 약해 많이 더워서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들 집에서도 칭찬과 격려 많이 해주세요!"
약간의 헤프닝은 있었지만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시는 학부모님들이 너무 감사했다.
나 또한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아이가 초등학생 시절 학부모 공개수업은 될 수 있으면 꼭 갔다. 고등학생인 된 아이는 학부모 공개수업 일정을 보여주긴 하나 "엄마 보러 갈까?" 하는 물음에 손사래를 친다. 부모에게 자녀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유일한 존재일 것 같다. 이런 자녀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발표도 잘하고, 신체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잘 참여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관심과 흥미가 다르고 잘하는 것도 천차만별이다. 교사로서 연차가 쌓일수록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꽃을 피우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부모와 교사 같은 어른이 우리 아이가 남들과 다르면 불안한 나머지 준비가 아직 안된 아이들에게 재촉하고 잔소리를 많이 한다. 너무 일방적인 잣대만 들이대고 있지는 않는지 '다양성'이라는 말만 외치며 속으로는 정작 인정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어느 캘리그래피 문구처럼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말고,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