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 해도 반 아이들의 일기를 검사하고 답글을 달아주는 게 교사로서 하나의 큰 업무였다. 요즘은 고학년일수록 일기를 쓰지 않고 나 또한 학생인권에 침해되거나 아동학대의 소지가 있는 일기 검사를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기회가 줄어 글쓰기 자체를 많이 어색해하고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 매우 크다. 일기 검사를 하면 아이의 생활환경도 짐작할 수 있어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고, 맞춤법 지도나 교사의 답글을 통해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경우처럼 좋은 점이 많으나 시대에 맞춰가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날의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면서 몸도 편하고 논란의 소지를 애초에 키우지 않으니 일기 검사를 했던 옛날로 다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다. 5학년 국어과 교육과정에 한 번씩 글쓰기가 나오면 더욱 정성스럽게 지도하고 싶은 이유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초등 5학년 국어 1학기 4단원의 제목은 '글쓰기의 과정'이다. '글 쓰는 과정을 알고 자신의 생각을 바르게 표현할 수 있다'가 이 단원의 학습 목표이다. 1차시에는 문장을 구성하는 성분을 살펴봄으로써 어색한 문장과 그렇지 않은 문장을 관찰해 문장의 뜻을 완성하는 데 필수요소가 있음을 이해하였다. 이 단원의 마지막 즈음에는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활동이 있으므로 이 과정은 고쳐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주어, 서술어, 목적어가 잘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2-3차시에는 주제에 알맞게 쓸 내용을 떠올려보는 활동을 하였다. 다른 사람이 글을 쓰는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글로 쓸 내용을 어떻게 떠올리는지(쓸 내용을 몇 가지로 나누어 떠올림/ 쓰고 싶은 내용을 자유롭게 떠올림) 살펴보았다. 이때 글을 쓰는 목적, 글을 읽을 사람, 글이 실릴 매체 따위를 생각해야 한다.
글을 쓰기 위한 생각을 흐름에 따라 묶고 완성된 글로 나타내기 위해 어떻게 조직해야 할지 익힐 수 있는 4-5차시에서는 예시글을 읽은 후 일어난 일과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해 보았다. 시간 흐름과 장소 변화에 따라 일어난 일을 정리하는 '다발 짓기'를 공부하였다. 처음, 가운데, 끝으로 구분하여 일어난 일에 따른 생각이나 느낌을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6-7차시에는 1차시에서 익힌 문장 성분의 개념을 이해하고 문장의 호응 관계를 살펴보았다. 자신이 쓴 글을 고쳐쓰기 할 때도 이 점을 유의해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다양한 예시 문장을 바르게 고쳐 써 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 8-9차시는 드디어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나타내는 시간이다. 우선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재미있는 경험을 써서 학급 누리집(홈페이지)에 올린다는 설정을 한 후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 보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그전에 배웠던 글로 쓸 내용을 다발 짓기를 간략하게 나타나게 하였다. 글에 알맞은 제목을 붙이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개인별로 태블릿 pc를 나누어 주고 자신의 글을 완성해 볼 수 있었다.
브런치 스토리 활동을 하며 글쓰기에 나름 관심이 있는 담임교사로서 우리 아이들이 완성된 한 편의 글을 써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싶어 교과서에 있는 내용뿐 아니라 다른 내용도 덧붙었다.
"학급 누리집에 올린다는 가정이 있으므로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나타내 보세요."
"글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독자가 글을 읽고 싶게 만들 수 있는 제목도 아주 중요합니다."
"글 중간중간 대화문을 알맞게 넣으면 글이 더 생동감이 있으니 큰 따옴표를 넣어서 사용해 주세요."
"글의 분량도 중요하니 A4 용지 절반이상에서 2/3 정도까지는 쓰면 좋겠습니다."
손글씨가 아닌 태블릿을 사용하여 타이핑을 하게 한 의도는 제대로 된 '첨삭'을 해주고 싶어서였다. 첨삭하면 '빨간펜'이 생각나지만 이게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으니 깔끔하게 바로 수정된 것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23명이나 되는 우리 반 아이들의 글을 하나하나 첨삭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번에는 좀 제대로 해주고 싶었다. 담임교사가 브런치 스토리에 1년 넘게 글을 올리는 사람인데 우리 반 친구들에게도 '글쓰기의 완성은 고쳐쓰기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했다.
평소 글쓰기 수업은 우리 반 전체가 돌려 읽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책상을 뒤로 다 밀고 동그랗게 의자만 교실 가운데에 두고 조용한 가운데 오른쪽으로 계속 넘기면 된다. 글을 쓴 후 고쳐쓰기를 자기 나름대로 한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첨삭을 해주고 싶은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걸리더라고 틀린 부분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매우 컸다. 교과서에도 글쓰기 후 호응 관계를 생각하며 고쳐 써 보고, 그 글을 친구들과 바꾸어 읽고 잘한 점을 칭찬해 보는 활동이 나와있었다.
글쓰기 경험이 많이 없는 아이들이기에 칭찬만을 통한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덜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첨삭을 위해 보다 나은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그 뒤로 국어 시간 몇 시간을 더 투자하였다. 한 시간에 5-6명을 첨삭하였고 꽤 많은 시간이 걸린 만만치 않은 활동이었다.
일단 TV 화면에 아이들이 쓴 글을 크게 띄워놓고 한 명씩 본인들의 글을 읽으면 첨삭을 해주었다. 아무리 본인들이 고쳐쓰기를 하였다 하더라도 첨삭할 부분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기본으로 첨삭을 하였고 반복되는 말은 없는지, 필요 없는 접속사를 쓰지는 않았는지 다 함께 확인하였다. 본인도 인지하지 못했던 잘못된 습관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른 친구의 글을 통해서 배움도 일어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단을 나누는 법, 알맞은 문장기호 쓰기, 주어와 목적어가 빠지지는 않았는지 등도 더불어 고쳐주었다. 완성된 글을 복도에 하나씩 전시하니 제법 뿌듯한지 다시 한번 읽어보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문제는 첨삭 글이 5개 정도 남아 '오늘 드디어 마무리를 할 수 있겠군!'라고 생각을 한 월요일 아침시간이었다. 출근을 하고 업무포탈에서 공문을 확인한 후 공람을 '0'으로 만들어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하이톡에서 한 어머님이 보내신 장문의 톡을 보았다. 아주 정중하고 예의 바른 형식의 문자였지만 내용을 확인한 나는 매우 당황하였다.
대략적인 문자 내용은 '00이 지난주 금요일부터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 한다. 엄마 입장에서는 무조건 가라고 했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수업 시간에 제출한 글을 첨삭하는 과정이 너무 부담된다고 했다. 선생님께서 다 생각이 있어서 잘 판단하고 하신 거라고 이야기를 아이에게 하였다. 하지만 사춘기로 예민해서 그런지 공개적으로 화면을 띄어 진행하는 수업에 대해 매우 부담스러웠나 보다. 선생님이 첨삭을 공개적으로 하는 게 인신공격이 아닌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고 수업을 진행했을 때 이로운 점에 대해 혹시 시간이 되면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시면 아이도 이해하고 인정을 할 것 같다.'라는 내용이었다.
첨삭을 하면서 기본적인 것만 고쳐주고, 잘한 점은 잘했다고 칭찬을 하며 나의 글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경험도 하면 좋을 것 같은 의도로 진행을 하였는데 교사로서 편치 않은 문자 내용이긴 하였다. 평소 말이 없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은 00이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며 학교 생활을 무난하게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을지 생각도 못했다. 예전에도 음악 리코더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면 '아이가 울면서 연습을 하다가도 수행평가 보는 날에는 학교에 안 가고 싶어 한다. 그래도 학교에는 보내야 할 것 같아 보내지만 아이가 보여주는 만큼 칭찬 부탁드린다'라는 톡도 받아 '걱정 마시라'는 소통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밖에도 다양하며 소소하게 톡을 보내셨고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므로 그때마다 엄마의 마음도 읽어드리고 아이와 대화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잖이 불편한 마음을 감추며 답장을 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다.
아직 00이의 글은 첨삭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불편하다고 하니 이 아이의 것은 내가 따로 수정하여 전시를 하였다. 혹시나 이것도 마음이 불편할까 봐 미리 아이를 불러 대화를 하였다.
"글을 첨삭하는 게 많이 부담스러웠어? 그럼 선생님이 00이 것만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따로 첨삭해서 전시해도 될까?"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00이를 보며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사춘기의 예민한 시기를 고려하면 부끄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정서를 챙기긴 어려울 거라 생각이 들지만 선생님께서 충분히 신중하게 판단하셔서 결정하신 수업방식이 아이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바쁘실 줄 알지만 톡 남겨봅니다. 몇 교시에 해당 수업을 하는지 잘 모르지만 꼭 수업 전에 소통이 안되셔도 시간이 혹여 되실 때 한번 부탁드려요"
00어머님의 뒤에 따라오는 문자 내용을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나의 감정을 최대한 누르고 답변을 하였다.
"우리 00이 스트레스가 컸나 보네요. 아직 00이 글은 첨삭하지 않았는데 00이에게 물어보고 하기 싫다고 하면 하지 않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의 첨삭이 아이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는 것인가?'
'첨삭지도가 쉽지 않은 건데 괜히 열심히 한다고 욕심을 부렸나?'
'아이가 싫다고 하면 무조건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이 아이가 앞으로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계속 엄마가 이렇게 해결해 줄 건가?'
'평소 부끄러움이 많고 내성적이니 부모로서 걱정이 많겠다!'
'오죽하면 문자를 보내셨을까? 이렇게 긴 문자를 보내기 전까지 고민을 많이 하셨겠다!'
'부모의 마음으로서 그럴 수 있겠다!'
이런 민원을 받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뒤따라왔고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모로서 아이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에 결국에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했더니 조금은 편해졌다. 덩달아 열심히 가르치려고 하는 나의 열정이 한 풀 꺾인 건 사실이었다. 적당히 하면 이런 민원도 받지 않았을 텐데 괜히 해서 불편한 문자를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자책도 하였다.
아무리 교사 나름의 교육 철학이 있다고 해도 이런 피드백을 받으면 '그냥 적당히 하자'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방과 후에 부족한 아이를 남겨서 지도해도 아동학대라는 말이 들리는 세상이니 활동이나 말에 자기 검열이 자연스럽게 생기고 위축이 되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하기도 한다.
최근에도 선생님들의 안 좋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남일 같지 않고 얼마나 힘들지 감정이 이입이 된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한해 한해 넘길 때마다 새로운 케이스가 생겨 당황스럽다. 아직 나에게 들어오는 민원은 내가 충분히 감당하고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언제 교통사고가 일어날지 모르고 내가 운전을 잘한다고 해서 교통사고에서 안전할 수 없는 것처럼 민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00이만 첨삭을 하지 않아 또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많은 고민을 하였다. 자연스럽게 넘어가긴 했지만 신경이 엄청 쓰였다. 글쓰기를 마무리하고 복도에 전시를 해두니 꽤나 멋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첨삭지도를 하지 않을 것 같다. 이해가 가면서도 조금은 씁쓸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