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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공개수업 중 그 아이가 한 말

by 느긋

교사에게 큰 행사 중 하나는 공개수업이다. 얼마 전 학부모 공개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외공개수업을 준비하였다. 교외공개수업은 '수업성장인증제'를 신청한 교사들만 자발적으로 하면 된다. 작년에 이어 수업성장인증제를 신청하여 다양한 영역에서 문자 그대로 나의 수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업참관, 수업성찰, 수업공개를 통하여 수업을 보다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피드백도 받으며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교외공개수업은 우리 학교 선생님뿐만 아니라 관내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공개를 한다. 많은 분들이 오시지는 않지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학부모공개수업은 아이들이 발표하고 활동하는 것을 위주로 계획을 한다. 이에 비해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수업은 보통의 교실 상황을 기반으로 하여 보다 체계적인 배움이 일어나는 것이 보일 수 있도록 준비한다.


올해 우리 학년 '전문적 학습공동체(전학공)'의 주제인 '함께 놀고, 더불어 배우는 교실 만들기'를 접목하여 다양한 수업 놀이를 할 수 있는 단원과 차시를 정했다. '낱말의 짜임 알기'가 학습 주제인 5학년 1학기 국어과 8단원 1차시로 선택하였다. 하나의 낱말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분석해 보는 활동을 통해 낱말의 확장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낱말을 만드는 방법과 배경지식을 활용해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이 단원의 학습 목표이므로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동기유발 단계에서는 영어과에서 흔히 사용되는 놀이인 'pass the ball'을 하였다. 공을 서로 주고받다가 교사가 종을 쳤을 때 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화면에 있는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낱말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산 그림'과' 딸기 그림'을 보고 '산딸기'라는 낱말을 만들어 내는 활동으로 낱말의 짜임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한 놀이 같지만 주의 사항은 매우 많다.

1. 소외되는 학생이 없이 공을 골고루 만질 수 있도록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에게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에게만 공을 줄 수 있도록 한다. 당황하면 이 규칙을 깨는 친구들도 있는데 이것 또한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이다.

2. 서로 계속 주고받지 않는다. 이 또한 놀이를 하면서 소외당하는 친구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3. 절대 교실에서 뛰지 않는다. 공을 넘겨줄 때 급하게 움직이면 책상 모서리에 부딪힐 수 있으므로 걸어 다니며 공을 전달하도록 한다.

4. 공을 절대 던지지 않도록 한다. 손에서 손으로 건네줄 수 있도록 한다. 인형 같은 부드러운 소재의 공이지만 던지다가 다칠 수 있고 받는 사람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 점을 강조한다.

5. 교사는 의도적으로 평소 발표를 잘하지 않은 친구가 공을 가졌을 때를 포착하여 종을 친다. 작은 성취감을 경험하면 발표할 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동기유발을 할 때 우리 학교의 수석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수업 장면을 찍어주셨다. 확실히 나의 수업을 누군가가 본다는 것은 20년 차 교사에게도 긴장되는 일이다. 뒤 이어 교장, 교감선생님께서도 오셔서 아이들이 활동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교실환경도 눈에 담으셨다. 이를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학습문제와 학습활동을 살핀 후 첫 번째 활동으로 넘어갔다.


그림을 살펴보고 낱말의 뜻을 자세히 아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활동이었다. 그림은 친구 두 명이 나와 '바늘방석'이나 '맨주먹'처럼 모르는 낱말이 나왔을 때 뜻을 짐작해 보는 예시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바늘'과 '방석'을 나누어 뜻을 짐작하니 '앉아 있기에 몹시 불안스러운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맨주먹'을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을 가진 '맨'과 뜻이 있는 낱말인 '주먹'으로 쪼개어 살펴봄으로써 '아무것도 없는 빈주먹'이라는 뜻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낱말의 짜임을 살펴보며 단일어와 복합어에 대한 용어도 공부할 수 있었다.

'바늘'처럼 '바'와 '늘'로 나누면 본디의 뜻이 없어져 더는 나눌 수 없는 낱말을 단일어라고 해요. 그리고 '사과나무', '검붉다'처럼 뜻이 있는 두 낱말을 합한 낱말과 '맨주먹', '햇밤', '덧신'처럼 뜻을 더해 주는 말과 뜻이 있는 낱말을 합한 낱말을 복합어라고 해요. (국어, 5-1, 교육부 237쪽)

단일어와 복합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언뜻 어려워 보이는 듯하였으나 평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낱말을 적용하니 아이들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 '덧'은 '겹쳐 신거나 입는'이라는 뜻을 더해주는 말입니다. 우리 얼마 전 학부모 공개수업 때 부모님께서 파란색 덧신을 신고 오신 거 보았나요? 신 위에 신을 또 신으니 '덧신'이라고 합니다. 혹시 이 위에 또 이가 난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나요?"

"덧니요!"

"'햇'은 '그 해에 새로 난'이라는 뜻을 가져서 햇밤, 햇감자처럼 쓸 수 있어요. 우리가 전통 시장에 가면 자주 볼 수 있어요. 햇양파, 햇곡식처럼 '햇밤'은 '올해 새로 난 밤'을 말합니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이 최근에 햇감자를 쪄서 먹었는데 고실고실한 게 정말 맛있었답니다. 이 밖에 햇-으로 시작하는 낱말에는 뭐가 있을까요?"

여기저기서 본인들이 알고 있는 말을 쏟아낸다.

"햇고구마요."

"햇과일이요."

"햇병아리요."


"오, 맞아요. 햇병아리도 있네요. 새로 부화된 병아리를 햇병아리라고 하죠."


어디선가 예상했던 답변이 들려온다.

"햇반이요"

"햇반은 상표 이름이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의 긴장을 완화해 준다.

"햇살이요."

"햇살은 쪼개면 의미를 잃어버리는 단일어예요."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들려왔다. 평소에도 수업시간에 엉뚱한 말을 잘하는 00이었다. 얼굴도 동글동글, 몸도 동글동글해서 매우 귀여운 00이의 입에서 이런 단어가 나올 줄이야.


"햇바닥이요."


띠용! 소리가 내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였다. 너무나 자신 있는 목소리에 하마터면 나도 맞는 답인 줄 알았다. 이어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할머니랑 같이 산다더니 할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나 보다. 너무 웃겨서 나도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한 그 아이의 표현이 너무 재밌었다. 00이는 웃기려고 한 소리가 아니라 진짜 이렇게 알고 있었던 듯 보였다. 한바탕 웃고 나서 "혓바닥이요?"라고 되물었더니 우리 반 아이들이 한번 더 웃는다. 덩치는 크지만 귀여웠다. 정말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어서 단일어와 복합어의 예시를 보고 구분해 보고 '야구골든벨'이라는 수업놀이로 정리활동을 하였다. 개인적으로 여느 골든벨과 달리 탈락자가 없는 놀이라는 점이 가장 매력이 있다. 매 단계마다 정답을 맞힌 사람들이 1루씩 진루하고 정답을 못 맞히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된다. 홈으로 들어오면 칩을 하나씩 가져가고 나중에 이 칩에 최종 점수가 된다. 중간중간 재미있는 퀴즈도 내고, 선생님과 가위바위보도 하며 학습내용이 어려운 친구들에게도 진루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놀이가 진행되다 보면 누가 많이 맞췄는지 알아보기 쉽지 않아 소외되는 아이가 없어 자주 사용하고 애정하는 수업놀이이다.


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수업활동을 정리하였고 무난하게 교외공개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00이의 '햇바닥'이 자꾸 떠올라 오후에 빈 교실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 지어졌다. 올해 5학년 우리 반 아이들은 작년과 비교해서 더 어리고 순수한 면이 있어 덜 힘들다.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남녀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리는 모습에 엄마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대문사진 출처: 카카오톡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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