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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l 19. 2024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순직교사 1주기 - 순직하신 수많은 선생님들을 함께 기리며

 아이의 저녁을 차려주고 서둘러 택시를 탄다. 목적지는 순직교사 추모제가 열리고 있는 지역교육청의 주차장이다. 조금 늦어 발길을 서두르지만 역시 추모제는 벌써 진행이 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하얀색 국화꽃을 한송이 집어 들어 조심히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니 까만 작은 점들이 모여 좀 더 큰 점을 만들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추모사를 들으니 마음이 더 아려온다. 곧이어 어떤 선생님의 추모공연이 이어진다. 다른 어떤 말보다 노랫말이 나를 울린다.


하림 -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
내가 일하다 다치면 엄마 가슴 무너지고요.
집에 못 돌아가면은 가족은 어떡합니까.
우리는 모두 다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
저녁엔 집에서 쉬고 휴일에는 여행도 가는
그런 평범한 일들이 왜 나는 어려운가요.
우리는 모두 다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

 

 순직하신 선생님들도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테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셨을 것이다. 서이초 선생님의 아이들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교실 한편에 꾸며놓은 사진만 보아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꽃다운 나이에, 그 아까운 나이에 스스로 생을 저버리기까지 얼마나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온다. 같은 교사로서 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학생의 인권은 매우 중요하다. 아동학대 당연히 하면 안 된다. 하지만 그만큼 교권도 중요하고 아동학대 법이 악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교권을 위해 많은 노력과 제도를 마련했다고는 하지만 현장에 있는 교사가 느끼기에는 아주 미약하다. 오히려 교사를 더 괴롭히고 불편하게 만드는 방법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느낌이다.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와 함께하는 교육공동체로서 서로 신뢰하고 소통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소수의 금쪽이들과 그 학부모들이 교사들을 너무나 힘들게 한다. 교사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임을 그 사람들은 과연 알고 있는 걸까? 자기 자식만 소중하고 남의 집 자식이나 가족인 교사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20년에 가까운 교직 생활 동안 운이 좋게도 큰 민원이나 사고는 없었지만 앞으로 남은 나의 교직 생활이 안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는 내가 결코 잘해서가 아니다. 순직하신 선생님들이 만났던 민원이나 갑질도 나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점점 나의 교육활동이 움츠러든다. 내가 한 말에 자기 검열이 심해진다. 동학년 선생님들끼리 '이러면 정서상해 아동학대, 철컹철컹'이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농담 아닌 농담도 자주 한다.


 '나는 민원이 아예 없는 완벽한 교사다'라는 초등 커뮤니티의 어떤 선생님 이야기가 앞으로 우리 초등교육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그 선생님은 학부모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1년 동안 피구 보드게임 패드활동만 하며 아이들이 싫어하는 활동은 전혀 안 한다고 글을 올렸다. 수업은 항상 빨리 끝내고 쉬는 시간을 많이 준다고도 했다. 아이들이 싸우거나 위험한 행동을 했을 때는 엄하게 지도하지만 나머지는 웃으면서 기분 안 나쁘게 말로 지도하고 끝낸다고 한다. 덕분에 완벽한 학급경영과 일을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고도 했다. 최고로 문제있는 학년을 맡아도 전혀 민원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글을 썼다.


 이 선생님도 초임시절, 아이에게 윽박질렀다는 학부모 주장만으로 이루어진 아동학대 고소를 당한 후 아이들에게 절대 목소리도 높이지 않고, 수업 시간에 요리를 해 먹다가 식중독에 걸리면 어쩔 거냐는 민원을 받은 후 교실에서 그 어떤 간식도 제공하지 않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숙제, 일기, 나머지 공부도 시키지 않는다.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힘들게 하면 바로 아동학대가 되는 세상이다. 나 또한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어도 민원이 들어오고 아동학대 신고를 당할까 봐 시도조차 안 하고 싶다. 신규 때는 아이들을 우리 집에 불러 요리도 해주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순수했었다. 지금은 세상의 때가 너무 많이 묻어 나를 먼저 보호하기 위해 뭔가를 하고 싶지가 않다. 점점 아이들의 입맛에 맞춘 적당한 활동만 찾게 된다. 내가 교실에서 할 수 있는 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순수했던 서이초 선생님을 포함한 순직하신 선생님들도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들보다 교사 본인과 가족들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 교사로서의 사명감보다 직업으로서의 사무적인 것을 먼저 택했어야 했다.


 추모제 마지막 순서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아주 작고 까만 점'들인 선생님들과 함께 불렀다. 먹먹함 때문에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지만 소리를 키워 노래를 끝까지 불러본다. 매년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 꼭 알려주는 노래이다.

 

꿈꾸지 않으면(간디학교 교가) 작사: 양희창, 작곡: 장혜선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아름다운 꿈 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 건(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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