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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l 04. 2024

결국은 또 잔반 이야기

잔소리하는 꼰대가 되고 말래

 초등학교 5학년 수학 1학기 마지막 단원은 '다각형의 둘레와 넓이'이다. 여러 가지 넓이에 관한 단위도 함께 배운다. 이를 위해 예전에 배운 '1m=100cm'를 아이들에게 상기시킨다. 좀 더 쉽고 재밌게 가기 위해 우리 반 친구들의 키도 함께 물어보면서 나중에 얼마까지 크고 싶은 지 이야기를 나누며 옆길로 잠깐 샌다. 우리 반에서 제일 장난꾸러기인 남자아이가 3m까지 크고 싶다고 하니 아이들이 웃는다. 

  

 "선생님이 키 크는 법 알려줄까요?" 뭔가 특별한 비결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아이들의 눈빛이 더욱 반짝인다. 

 "부모님의 키가 크면 우리 친구들도 키 많이 클 수 있어요." 아이들의 눈빛에서 실망감을 읽는다.

 "그런데 유전보다 더 중요한 거 알려줄까요?" 이번에는 진짜인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밤에 잠 잘 자고, 밥 잘 먹고, 똥을 잘 싸면 돼요." 5학년인 우리 아이들은 아직까지 똥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좋아한다. 뻔한 내용에 아이들은 더 이상 나의 입에서 특별한 비법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밤에 진짜 잠을 잘 자야 해요. 성장호르몬이라고 들어봤죠? 밤에 규칙적으로 잠을 잘 자야 키가 쑥 커요."

 아이들도 다 아는 내용이다. 

 "그리고 우리 친구들 같은 성장기에는 고기를 잘 먹어야 해요." 의외의 답변이라는 듯 '오잉'하는 아이들의 반응이 귀엽다.  

 "고기만 많이 먹으라는 뜻이 아니라 고기도 많이 먹고 채소, 과일도 많이 먹으라는 뜻이에요" 몇몇 아이들이 웃는다.

 "특히, 돼지고기를 많이 먹어야 해요." 아이들의 입에서 삼겹살을 좋아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튀기고 굽는 방식 보다 물에 빠진 고기가 몸에는 더 좋아요. 수육 알아요? 보쌈이 몸에 굉장히 좋데요" 보쌈을 좋아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어쨌든 우리 친구들이 급식을 잘 먹고 잔반도 줄이면 키가 쑥쑥 커질 거예요" 왠 갑자기 잔반이야기? 

"우리 친구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잘 생활하는 것이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예요." 의식의 흐름대로 입에서 아무 말이 그냥 나온다.

"공부 잘하는 거? 물론 좋지만 그보다 1순위는 건강과 안전이에요" 아이들이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번 더 강조한다. 

"오늘은 잔반 없는 수요일이니까 잔반을 줄일 수 있도록 먹을 만큼만 받고, 받은 것은 다 맛볼 수 있도록 이따 급식 시간에 다 같이 노력해 봐요!" 결국에 잔반을 줄이라는 급식지도로 위장한 잔소리로 이어진다.


 수학시간에 갑자기 딴 이야기를 하니 아이들의 집중력이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오늘의 잔반량에 영향을 끼칠 것인지 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는다. 오늘의 메뉴는 카레라이스, 열무된장무침, 깍두기, 골드파인애플, 바게트빵피자, 감자된장국(자율)이다. 급식 시간에 내 앞에 앉은 남자아이가 한가닥 받은 열무된장무침을 먼저 맛을 본다. 나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건지 맛있게 잘도 먹는다. 평소에 잔반을 잘 남기는 아이였는데 적당량을 잘 받아 잔반 없이 잘 먹고 일어서는 모습이 기특하다. 나의 급식 지도 효과가 없는 것 같았는데 전혀 없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살짝 뿌듯했다. 

 

오늘도 맛있는 우리 학교의 급식, 저 나물이 열무라는 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오늘도 역시 10분 타이머가 울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이 우르르 빠져나간다. 그래도 확실히 타이머를 쓰지 않았을 때에 비해 급하게 막 먹는 친구들은 사라졌다. 받은 것을 맛보려는 시도도 여러 번 보았고, 나름의 맛있게 먹는 방법도 서로에게 공유를 한다. 얼마 전에는 내 옆에 앉은 여자 친구가 한 말에 살짝 감동도 먹었다. "선생님, 제가 원래 깻잎장아찌는 안 좋아하는데요. 오늘 먹어보니까 맛있어요." 얼굴도 이쁜 아이가 말도 참 이쁘게 한다.


 담임교사가 급식지도를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도 상관은 없다. 오히려 급식지도를 했다가 민원이 들어오면 더 피곤한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럽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음식의 소중함을 알고, 재료의 맛을 잘 느끼며 급식 시간을 나처럼 즐기면 좋겠다. 다채로운 음식을 날마다 맛볼 수 있는 급식시간이 정말 소중하다. 음식을 만드신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더더욱 잔반을 남길 수 없다. 


 올여름은 기후위기로 인한 폭우와 폭염이 심하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좀 걱정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가 언제나 푸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말 미약하지만 나만의 방법을 오늘도 묵묵히 실천한다. 


걱정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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