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학년 담임교사로서 기본적으로 국어, 도덕, 사회, 수학, 과학, 체육, 음악, 미술, 실과, 영어 교과를 가르쳐야 한다. 이 중 과학과 영어는 교과전담 선생님들이 맡아주어 나머지 여덟 과목과 창의적 체험활동(창체)만 수업하면 된다. 나 또한 예전에 과학전담, 영어전담을 한 적이 있는데 한 과목만 수업 연구를 하면 되므로 수업전문성이 올라가고, 교구나 자료를 여러 반에 거쳐 사용하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이었다. 물론 여러 반을 수업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담임에 비하면 그런 부담감은 개인적으로 거의 제로에 가깝다. 교과전담을 했을 때 학부모의 민원이 거의 없고 수업과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부장을 맡는다고 하더라도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담임일 때와는 달리 매우 가볍다. 담임으로서 잡다한 업무가 교과전담보다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에 교과전담을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만 교담을 맡는 게 초임시절과 달리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물론 교사의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그 선호도가 다르지만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담임수당을 받지 않더라도 조금의 망설임이 없이 교과전담교사를 선택하고 싶다.
올해 5년 만에 담임을 맡았다. 그동안 운이 좋게도 부장을 맡으며 영어교담을 꽤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 학교를 옮기면서 5학년 담임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담임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 학기 초에 꽤나 적응하느라 힘이 들었다. 생활지도와 학부모 민원은 말할 것도 없고 자잘한 담임업무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여러 과목과 창체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이 많아 고학년 담임으로서 초반에 체력적으로 힘이 들었다.
창체는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으로 구분한다. 자율활동은 자치적응활동, 창의주제활동으로 나뉜다. 학급임원선거나 학급회의 등이 이에 포함되고 다른 다양한 범교과학습을 자율활동과 연계하기도 한다. 5학년 2학기 사회의 교육과정은 역사내용을 다루므로 올해 '역사동아리'를 각 반별로 운영하였고 진로검사 및 직업체험과 봉사활동도 운영해야 한다.
오랜만에 5학년을 맡으면서 제일 놀랐던 점은 내가 담임을 맡지 않은 동안 범교과 학습 주제가 매우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범교과 학습은 교과 및 창체와 연계해서 꼭 지도를 해야 하는 내용들이다. 학교안전 7대 표준안 영역(생활안전교육, 교통안전교육, 폭력예방 및 신변보호교육, 약물중독 예방교육, 사이버 중독 예방교육, 재난안전교육, 직업안전교육, 응급처치교육)이 있는 안전교육은 연간 51차시씩 꼭 해야 하는 교육이다. 학생인권교육, 참정권교육, 생명존중교육 및 자살예방교육, 생존수영교육, 심폐소생술교육 등도 교사가 잘 알고 지도를 해야 한다. 다문화 이해교육, 아동학대 예방교육, 자원재활용교육 등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지도해야 할 범교과의 영역과 주제도 조금씩 매해 달라진다. 감염병 및 약물의 오남용 예방 등 보건위생 관리 교육(금연, 마약류 포함)이나 환경지속가능발전교육(생태전환교육)도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범교과 내용으로 각각 연 10차시, 2차시 이상을 의무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딥페이크를 이용한 사이버 범죄도 늘어나는 추세여서 지능정보화서비스 과의존 관련 교육을 해야 하고, 장애인식개선교육, 독서교육과 정보이용교육, 5.18 민주화 운동 교육도 빼놓으면 안 된다. 지역과 학교마다 범교과의 주제가 다르고 학년 재량이긴 하지만 미세먼지교육도 들어있으며, 인성교육, 독도교육, 통일교육, 건강한 식생활 및 영양교육, 장애인식개선교육, 양성평등 교육도 각 학년에 맞게 범교과를 운영해야 한다. 그 밖에 때가 되면 각종 계기교육도 해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들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거의 다 다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목은 과목대로 잘 가르쳐야 하며 창체 및 교과와 연계하여 범교과 주제도 하나도 빼먹으면 안 된다. 사회적인 이슈가 생기면 바로 공문으로 와서 안전지도를 비롯한 예방교육을 잘해야 한다. 초등교사는 팔방미인이 되기 위해 여러 가지 연수도 잘 받아야 하고, 법정의무연수도 잘 이수를 한다. 내년부터 3, 4학년에 도입될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AIDT) 연수도 들어가며 곧 다가올 변화에도 미리 준비를 한다.
기본적인 것들만 가르쳐도 시간이 꽉 차지만 교육청에서 나오는 공문을 살펴보며 다양한 사업에 도전을 하기도 한다. 기후위기비상행동실천단에 도전을 해 우리 반 아이들과 '지구별 지킴이'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고, 생태전환학급독서를 읽고 공모전에 참가하여 표창을 받는 등 다양한 활동도 하고 있다. '역사문화둘레길 프로그램'이 의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청하여 우리 고장에 있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지역을 해설사님과 함께 한 바퀴 둘러보기도 하였다. 꼭 해야 하는 필수 프로그램에 아니더라도 우리 5학년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보다 의미 있고 재밌게 할 수 있게 보탬이 되도록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있다.
이 밖에 각종 행사들도 많은데 하나씩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도 미션을 클리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담당 선생님이 계획을 세우고 담임선생님들은 운영만 하면 되지만 학교에 생각보다 정말 많은 행사들이 있다. 학년 체육대회, 수련활동, 체험학습, 교육과정 발표회 등 굵직한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안전교육까지 철저히 해가면서 진행이 잘 될 수 있도록 많은 회의를 거친다.
5학년의 수업은 보통 2시 40분에 끝나고, 수요일 하루만 5교시를 하여 1시 50분에 종료된다. 총 29 시수 중 6시간을 과학, 영어 선생님이 맡아주셔서 23시간을 수업하고 있다. 올해는 수업이 끝나도 월요일마다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에서 1 수준에 걸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학부모 동의하에 1차시씩 따로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 이것이 끝나고 업무나 회의를 좀 하다 보면 금방 4시 30분 퇴근 시간이 돌아온다. 이른 퇴근 시각 같지만 8시 30분에 출근하여 점심시간에 급식 지도까지 하므로 8시간 근무를 하는 것이다. 이 시간 안에 수업연구를 해야 하고 따로 맡은 학교업무를 하다 보면 퇴근 시각을 조금 넘길 때가 종종 있다.
곧 있으면 학생 생활 기록부를 작성해야 할 시즌이 돌아온다. 행동종합발달사항을 비롯하여 교과, 창체 평가 및 출결 상황 등을 기록하며 평소보다 바쁜 나날들을 보내야 한다. 담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지만 눈이 아프도록 컴퓨터만 들여다봐야 하므로 힘든 일 중에 하나이다.
20년이 다 되는 경력 중 1, 3학년 담임은 아직 경험이 없다. 몇 년 전 2학년 담임을 했을 때 수업은 빨리 끝나지만 교담 시수도 없고 무엇보다 짧은 시간 안에 에너지 소모가 매우 컸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거의 모든 것을 담임이 해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학년 담임을 많이 해봐서 그런지 1학년 담임은 아직도 엄두가 나질 않는다. 급식시간에 1학년 아이들을 멀리서 지켜보면 굉장히 귀여우나 내가 직접 1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인해 귀엽지만은 않을 것 같다.
5학년의 가장 좋은 점은 '교실자동화시스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학기 초에 정해진 자신의 역할을 모든 학생들이 잘 수행하면 교실이 자연스럽게 잘 굴러간다.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지만 많은 경험과 반복을 통해 80% 이상은 가능할 거라 본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나와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많이 겪지만 확실히 학생들의 자율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자면, 올해 우리 반에서는 우유팩, 폐건전지, 투명페트병, 캔 등을 모아 나중에 새 건전지나 재생휴지로 바꾸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집에서 재활용 물품을 가져오면 이것을 확인하고 칭찬머니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하는 친구가 있다. 나중에 칭찬머니를 모아 간식을 구매할 수 있고 다른 물건을 살 수도 있다. 교사가 20명 학생의 칭찬머니를 일일이 관리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담당자가 물건을 교환해 주고, 교사는 학생을 믿으며, 본인들이 각자 칭찬 머니를 잘 관리를 한다. 이런 식으로 분리수거, 우유 나누어 주기, 급식 부장, 지각 체크 등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 교사의 개입이 크게 없어도 교실 운영이 잘 된다. 교사가 수업 전 준비를 시키지 않아도 학습부장들이 나와 자리를 정돈시키고 교과서 쪽수를 알려주는 등 수업 분위기를 형성한다. 물론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자신의 일을 잘 수행하지 못할 때는 교사가 옆에서 도움을 준다. 역할 수행 시 크고 작은 갈등이 많이 생길 수 있는데 교사가 중심을 잡고 중재를 잘해주면 교실자동화시스템이 성공하는 한 해로 만들 수 있다.
올해 5학년 담임을 너무도 오랜만에 해서 나 또한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우리 반 학생들과 내가 더 성장했으리라 생각한다. 아직도 배워야 될 게 많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지만 나의 이러한 열정이 앞으로도 식지 않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지내준 우리 반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고, 2024학년도가 무사히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노력하는 OO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