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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14. 2023

아름다운 삶을 사는데 필요한 것들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버스를 타고 오면서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크로아티아, 같은 나라의 두 도시를 가는데, 가는 길 중간에 보스니아의 네움이라는 땅이 버젓이 나타나 버렸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크로아티아 국경을 벗어나 보스니아 국경에서 버스를 세우고 여권을 보여줘야 했고 보스니아의 땅을 잠깐 밟았다가 20분쯤 뒤에 다시 크로아티아 국경으로 진입하면서 여권을 두 번째로 보여줘야만 했다. 크로아티아에서 보스니아로 갈라진 네움이라는 지역은 원래는 오랫동안 한 제국에 속해있었고 그 이름만 여러 번 바뀌었다. 같은 땅에 같은 나라 사람들이 5000년 이상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에게 매우 낯선 일이지만 많은 나라들이 이런 일들을 겪었다. 한마디로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 일본이 되었다가, 중국이 되었다가, 러시아가 되었다가를 반복한 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이곳의 주민의 97%가 크로아티아인이고 보스니아인은 1% 임에도 불구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지역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속한다. 

 원래 이곳은 크로아티아의 땅이었다고 한다. 1718년 파사로비츠 조약에 따라 아드리아해 북동부 달마티아의 대부분 지역이 베네치아 공화국이 되었다. 그런데 베네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의 보호국이었던 라구사 공화국(현재 두브로브니크) 사이의 분쟁을 막기 위해 네움은 오스만제국의 땅으로 남아 양자 간 완충지대가 되었다. 이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되었다가 유고연방이 되었다가 지금의 보스니아의 영토가 되었다. 덕분에 내륙지방인 보스니아는 해안도시 하나를 갖게 되었다. 이 마을에서 배를 타고 나간 들 크로아티아의 섬으로 막혀있어서 해군을 배치하긴 불편하겠지만. 나는 두브로브니크 가는 길에 잠시 밟고 지나간 보스니아의 땅이 좀 신기했다.


네움을 떠난 후 승객들을 가득 싫은 버스가 절벽 해안가의 좁은 도로를 속도의 줄임도 없이 내달리며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 버스가 차체도 높았고 절벽 위의 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 내려다본 창밖은 그냥 낭떠러지였다. 멋진 해안가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전혀 없이 그냥 얼른 도착해서 안전하게 지상에 발을 붙이고 싶었다. 다행히 해안가를 벗어난 버스는 우리나라 시외버스터미널처럼 작고 아담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자 지역 버스가 다니는 정류장이 코앞에 있었다. 구글 맵을 다운로드 하여 위치를 찾아보고 얼추 우리 숙소가 있을 법한 곳에서 내렸는데 좁은 도로 하나만 있고 주거 지역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GPS는 분명히 이 근처라고 말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우리 숙소는 버스정류장 건너편에 하염없이 언덕 위로 나 있던 130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했던 것. 집들이 높은 곳에 있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컴퓨터와 아이패드가 들어있는 윌과 나의 책가방 두 개를 어깨의 앞뒤로 둘러매고 23kg 정도 캐리어를 지키고 계단 아래 서 있었고 우선 윌이 본인의 15kg 정도 되는 여행 배낭을 130 계단 위쪽에 내려놓고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나는 23kg 가방의 바퀴 부분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윌은 손잡이 쪽의 케리어를 양손으로 들고 나서 우린 130 계단을 올라갔다. 한발 한발 신중하게 뒤뚱거리며 내걸었다. 땀이 줄줄 흘렀다. 중간중간에 신음소리를 내며 가방을 내려놓고 30초 정도 멈춰 쉬기를 세 차례 정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고역스러운 가방 옮기기는 130 계단을 다 오를 때 깨지 계속되어야 했다. 



내가 지고있는 이 짐은 딱 지금 내 삶의 무게이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이라기보다 물리적으로 내 살림살이 모든 것이 이 23kg 가방에 다 들어있다. 나는 이것을 130개의 계단에서 혼자 들고 오르지 못했다. 내 딴에는 사십 평생 내 삶을 압축해서 최대한 줄인다고 줄인 무게인데도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차마 짊어지고 다니기 힘들 만큼 무거웠다. 내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주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하고 여행 내내 짐을 들어주는 윌에게 미안했다. 


숙소에 힘들게 올라와 체크인하니 작고 아늑한 숙소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나는 여행을 하루나 이틀 정도 묶을 때는 프런트 데스크에서 짐을 맡아주는 장점 때문에 호텔을 예약했고 3일 이상 머무르는 숙소는 집에서 쉬는 것처럼 머무르고 싶었기 때문에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호텔의 새하얀 침구들을 보면 ‘빨리 자고 나가.’라고 말하는 것 같은 차가운 느낌을 받아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에어비엔비에 들어오면 주인장의 손때 뭍은 낡은 인테리어들부터 시작해서 아기자기한 가구들이 ‘우리 집에 잘 왔어, 편하게 쉬다가 가.’라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했다. 이곳도 정말 작은 숙소였는데,  있을 건 다 있었다. 무엇보다 코딱지만 한 테라스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높은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어마하게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가 힘들게 올라온 그 130 계단의 노동을 보상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3일 내내 산새들이 지저귀는 상쾌한 아침 소리에 깨어 테라스에서 이 풍경을 마주하며  매일 커피를 한잔씩 마실 수 있었다.


다음날 향긋한 모닝커피를 한잔 마시며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들게 올라온 그 계단을 생각해 보았다. 내 삶에 있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쓸데없는 물건을 엄청 많이 사서 집에다 쟁여놓는다. 뭐가 그렇게 필요했는지, 아니면 뭐가 그렇게 버리기 아까웠는지.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그런 물건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특히 나는 패션을 좋아해서 옷이 많다. ‘두브로브니크 130 계단 케리어 들고 오르기’와 같은 여행의 경험 때문에 난 한국에 오자마자 잘 입지 않는 옷을 싹 정리해서 굿윌스토어에 기부했고 벼룩시장을 신청해서 내다 팔았다. 


아름다운 삶을 사는데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 없을 수 도 있겠다.

또 살다 보면 원래대로 돌아가겠지만 지금 이 마음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야겠다.

가벼워지자. 미니멀하게 살려고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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