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막이 따가워지는 매미소리가 문뜩 건물 밖으로 들리면 참 설레었다.
매미가 태어나 우는 계절이 오면 내가 태어난 계절이 온다는 것이니까
매미가 불러주는 생일축하노래는 어느 외로운 여름밤을 꽉 채워줬다.
아픔이 마음을 가득 채우는 날이면 매미소리가 그 자리를 비집고 파고든다.
겨울이 그립지만, 매미야 난 여름이 참 좋다.
적막한 여름밤은 상상할 수 없으니 나 대신 질리도록 울어주는 매미소리가
아무도 위로하지 못한 내 아픔을 대신한다.
뜨거운 태양아래 메말라가는 나의 처절한 외침소리가
매미울음에 더 묻히는 줄 알았지만 나 대신 매미가 울어주고 있었던 것 같다.
널 싫어할 이유가 없어 매미야
난 매년 기다리는 이 여름이 너로 인해 시작하고 끝나는 걸 아니까
너의 울음 없이 어떻게 이 여름을 시작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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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리는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퇴근길은 유난히 고되었고, 기분은 지하까지 내려앉았다. 운전대를 잡은 손과 발은 내려앉은 기분의 추를 찬 것처럼 무거웠고, 아무리 액셀을 밟아도 차가 느리게 느껴졌다. 과속하고 싶었고, 이 기분의 이유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듯 퇴근했다.
일하기 싫었고, 일이 많아 짜증이 났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진 것도 너무 싫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일하기가 너무 싫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깊은 고찰에 빠져 수다를 떨었다. 그 와중에,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한 나와 달리, 그것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는 그가 부러웠다. 하고 싶은 게 명확하고 심지어 많은 나를 그도 부러워했다.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하며, 그 부러움이 서로에게 위안이 되길 바랐다.
나는 원래 뮤지컬을 하고 싶었다. 진로를 결정할 시기에 접어버렸지만 말이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해도, 직업과 꿈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가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그것으로 인해 지하 단칸방에 살며 밥을 굶고, 무시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할 때 그 일을 싫어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고, 계속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15살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꿈과 일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렸다. 장래희망과 버킷리스트로 종목을 나눠 분리해 버렸다.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던 15살의 나는, 이미 현실을 간이라도 본 사람처럼 명확히 느껴버렸다. 반박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고, 내가 그 정도로 뮤지컬을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어지러워졌다.
지금은 그때 반박하지 못하고, 수긍해 버린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늘 좋고 행복하기만 할 수 없을뿐더러, 그 일로 인해 싫어했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고등학교 때 심리학과에 가고 싶었다. 과에 대해 알아보며 가장 놀란 것은, 심리학과는 수학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역사와 심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학을 극도로 싫어하고 어려워했던 나로서는 좋아하는 것을 위해 수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 큰 벽처럼 느껴졌다.
나는 수학을 잘하지 못하는 재능을 타고났고, 수학과 관련해서 잘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노력의 여부를 따질 수준이 아닐 정도로 수학을 못했다. 특별한 법칙이 있을 때,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응용조차 하지 못했다. 나의 요란하고 엉뚱한 창의성은 수학 문제를 푸는 데서도 발휘되었는데, 수학의 공식을 정해진 대로 외워서 계산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중학교 시험 서술형 문제에서, 풀이 과정은 정말 이상했지만 답은 맞아서 선생님을 당황하게 했던 일이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도형 문제였는데, 풀이 방식은 이상했지만 답은 맞았다. 그래서 답만 점수를 받았다.
선생님은 나를 두고 진짜 웃긴 애라고 했다. 풀이 과정이 이상하니 답도 정답으로 인정할지 말지 고민을 많이 하셨지만, 오래 고민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나랑 비슷한 케이스도 없었고, 그 점수를 받아도 꼴지에 가까웠기 때문에 문제삼을 사람도 없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느낌이다. 예를 들어 3 x 3 x 3 = ?라는 문제가 나왔고 내가 이 문제 해결방법을 모른다면, 나는 3이라는 숫자를 9번 더하는 식으로 풀어내는 발상을 하는 것이다. 물론, 예시로 드는 말이다. 그 정도의 발상이란 소리다
왜 그런 식으로 풀었을까? 3 x 3은 9이지만, 여기에 또 3을 곱하라고 하니 3을 9번 더한 것이다. 곱셈은 같은 수를 반복해서 더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곱하기를 이용해서 풀어보라는 문제에 엉뚱한 풀이 방식을 쓴 것.
결과적으로 답은 27로 동일하다.
이해가 안간다면 '거침없이 하이킥' 에서 진지희 배우가 연기한 빵꾸똥꾸 해리가 뺄셈을 못하는 '10화' 장면을 시청하면 된다.
엄마가 직접 공부시키는 과정에서 11-3=3 이라는 답을 내놓는데, 그 이유가 11에서 3을 없애면 11만 남기 때문이라서, 귀여운 발상이지만 내가 딱 저런 느낌이다. 확 와닿길 바란다.
엄밀히 따지면 틀린 건 아닐 테지만, 출제자의 평가의도와 틀리다. 그 당시에 나는 어떻게든 풀어보겠다는 의지로 저런 발상을 했을 거라, 결과를 어떻게든 내보려는 발악이었겠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지만, 나는 수학의 굴레에서 결국 탈출하지 못했다.
결국 다른 과에 가서, 모든 학문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난제로 남겨둬도 될 것 같아서 그러려고 한다.
반대로 그는 원래 명확히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한 나를 부러워했고, 나는 차라리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그가 부러웠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느끼고, 20대임에도 조금 더 어렸을 때 취미로 시도라도 더 해보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미로 도전하기에도 나는 무엇인가 두려웠는지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좋아하는 것을 위해 일한다는 것, 그것을 의욕으로 만들자고 결론지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대로, 좋아하는 만큼, 좋아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우리의 경제활동과 성인으로서의 의무는 자신의 욕망을 위한 발판일 뿐이라고.
업무에 조금 덜 감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며 그렇게 스스로 위안했다.
그 전화 중에 상대방이 매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집 앞 소방서 벽에 매미가 붙어 울고 있다고, 왜 멀쩡한 나무를 두고 벽에서 저러고 있을까 하며. 매미는 왜 벽에 붙어 있냐고 질문하자, 알을 낳기 위함이 아니냐고 했다. 모든 생물의 생존 목적이 번식이라고. 그런데 콘크리트를 뚫고 알을 낳을 리는 없다. 거긴 소방서 콘크리트 벽이니까, 생존 이유와 맞지 않는 장소에 매미가 있어 우리는 웃었다. 매미가 멍청한 걸까, 아니면 그저 그곳이 최선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우리의 웃음은 비웃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 매미에게 그 콘크리트 벽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무가 아니더라도, 너는 10년의 기다림 끝에 이 짧은 여름을 위해 날개를 피웠으니, 종착지가 어디든, 어떤 곳에 머무르든 그것은 매미의 완벽한 선택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생존의 이유가 오로지 번식이라 한들, 올해 우리 눈과 귀와 머리에 각인된 매미는 그 매미 하나뿐이다. 우린 앞으로 올해 여름을 생각할 때마다 그 매미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번식에 성공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매미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지만, 매미가 있었기에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 누가 매미는 소방서 콘크리트 벽에 붙어있으면 안 된다고 법이라고 만든 게 아닌 이상 이질적이라 한들 그대로 바라봐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알맞지 않아 보인다 한들, 그게 매미의 삶의 정착지, 혹은 경유지일 테니 말이다.
목적에 연연하는 삶이겠지만,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해도 나에게는 가치 있는 기억이 되었으니 내 안에 오래오래 울어댈 것이다. 너의 최선을 기억하겠다. 그곳에서 네 목적이 이루어지든, 실패하든 너는 올여름 소방서 매미로 내 안에 오래오래 살아 있을 것이다. 땅 속에서 지내던 수년간을 보상받듯이, 이 짧은 여름은 곧 끝나겠지만, 내 안에서 그보다 수십 배는 오래 살며 울어댈 것이다. 너는 내 안에서만큼은 명확하게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나도 내 안에 사는 너를 위해, 계속 살아남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