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안에 기관총과 폭탄이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떨어지는 아이
피곤한 아침, 고등학생 때 초등학교, 중학교 때와 달리 조금 먼 학교로 가게 되어 7시에 텅 빈 버스를 타고 하복은 단추를 다 잠그지도 않은 채 시원한 유리창에 머리를 대고 밖을 보면서 등교했었다.
학교 방송부를 하면서, 또 버스 노선이 많이 없어서 오래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선부도가 등교하기도 전에 등교하는 게 일상이었다. 아직 해도 졸린 듯, 그럼에도 여름이라 밝은 7시나 그전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서 큰 도로에서 무단횡단 하는 게 그렇게 일탈하는 것 같이 기분 좋았다. 그 큰 도로를 나 혼자 누비는 기분이란, 혹은 내 친구와 점령한 것 같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버스에 타서 학교까지 가는 등굣길의 모습에서, 나는 하루의 시작부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다리를 건널 때면, 다리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라던가, 강은 얼마나 깊고 얕을지, 저런 환경에서는 어떤 생물이 자랄지, 버스를 몇 대 세워야 다리 높이랑 같아질지 등등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저절로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생각이 많아지면서, 그 쯤에서부터 교복을 정비해서 입곤 했다. 허겁지겁했다가는 넘어지고, 불편하고, 민폐 주기 일수였으니까.
등교해서 아침방송을 하고, 수업을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수학시간은 특히 어려웠다. 그 쉽다는 집합과 분할을 할 때도 나는 혼자 교실에서 붕 떠있는 사람처럼 수업에 잘 집중하지도, 진도를 따라가지도 못했다. 귀여운 동그라미를 보고 코브라 같이 생긴 수학 기호들을 결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데, 뭐라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짝지에게 나를 가르쳐주라고 했지만, 나는 아직도 솔직히 심화 있게 알지 못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수학의 공식을 잘 이해하지도, 사용하지도 못했으니까.
수학 기호를 보면 다양한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β(베타)는 생일케이크에 꽂는 HAPPY BIRTHDAY의 B 양초나 역사 시간에 배우는 고대 문명의 여자 석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석상이 떠오른다.
Σ(시그마)는 오리 입술처럼 보이기도 하고, 두 갈래 모자를 쓴 광대가 누운 모양이 떠오르기도 한다.
π(파이)는 중학교 교감선생님의 머메이드 핏 롱스커트가 하늘거리는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기호들을 보면서 각기 다른 연상작용을 하는 나에게 수학을 하라고 하면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3.14라는 숫자는 매력적이지 않은가? 미트파이의 크기라는 둥 엉뚱한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수학에 소질이 없었다. 아직도 사칙연산이 복잡해지면 버퍼링이 걸리고, 이상하게 문제를 풀어내기도 했으며, 수학자들이 정리한 공식들을 이해하지 못해 엉망으로 문제를 푸는 일도 많았다. 수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면, '과시욕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그 친구들은 정말 수학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맛보지 못한 성취감을 맛보는 것 같았다. 수학은 성취감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맛볼 수 있는 것, 예를 들어 수박의 달달함과 시원함이 더 중요했다.
생각이 많고, 그것 때문에 힘들다고 의식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고, 대학교에 진학해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때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밖에 나가지 않았고, 잠도 잘 수 없었다. 3일을 피곤해서 누워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은 극도로 힘들어하는데, 뇌가 극도로 각성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힘들다는 생각마저 하는 게 괴로울 지경이었고,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잠식되어 있었다.
우울하니 당연히 많이 울고 이상한 생각도 많이 했다. 진짜 죽고 싶어지면 주변 사물부터 보인다. 당장 목을 맬 것이 없는데, 그걸 만들 여건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럴 용기도 없었고, 눈에 밟히는 게 많았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약국에 가서 비타민을 사고, 수면유도제도 먹었다. 친구들이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병원이 내 마지막 수단이 될 것 같아서, 그래도 소용없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가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코로나가 터지고, 그에 따라 증가하는 진상들, 특히 엄마들 때문에 폭발하게 되었다.
카페에서 아이들이 날뛰고, 뜨겁고 날카로운 머신과 칼이 있는 주방까지 들쑤시려 할 때도 신경 쓰지 않는 엄마들. 육아 스트레스를 나에게 푸는 것인가? 갑질로 해소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정신과를 찾았다. 아이들만 보면 혐오스러운 감정이 들고 주먹을 쥐고 있는 것도 모자라 도로를 지나가는 유모차를 밀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이건 정상이 아니야, 심각해!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이제 우울증을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신과에 방문했을 때, 내 삶의 아픔을 털어놓고, 우울증과 불안증 판정을 받았다. 정확히는 불안증이 더 심하다고 했다. 그래서 불면증이 심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1년 뒤, ADHD 검사를 받고 싶다고 요청했고, 역시나 맞았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남들과 다른 생각의 흐름을 가진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생각은 하지 마"라든가, "다른 생각을 해버려, 떠올리지 마"라고 쉽게 말하지만, 나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러니 자기 직전까지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것이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특히 더 자주 더러운 생각이 떠오른다. 하수구 생각, 변기통 생각, 거미와 지네, 꼽등이 등등 내 몸을 기어오르는 생각들. 잠에 들기도 힘들고, 잠에 들 때도 스트레스를 여실히 받는다.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생각이 많다는 것은.
마치 내 생각은 기관총과 비슷하다. 어쩌면 나무뿌리 같기도 하고, 수없이 쏟아지는 화살 같기도 하다. 마인드맵이 폭발하듯이 증식하는 세포처럼 늘어나는 것이 바로 내 머릿속이다. 나의 생각은 아주 짧은 사이에 수많은 관계성과 그 밖에 주제를 뿌리내리며 생성되고, 남들은 1에서 2로, 2에서 3을 출력하기 시작할 때, 이미 나는 50까지 출력되어 있다. 생각이 폭발하듯이 증식한다는 게 그나마 비슷한 것 같다.
내 지인들이 내가 말이 빠르고,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고, 자꾸 말이 바뀌고, 뜬금없다고 느끼곤 하는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이다. 떠오르는 것을 제어하지도 못하는데, 너무 많이 떠오른다. 정리가 늘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
다른 ADHD인들도 나 같을까? 세상과 나는 좀 이질적인 존재라고 느낄 때가 많다. 지금 내가 속한 집단에서야 내가 이질적일 수 있지만, 지구촌에서는 꽤 흔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파도 속의 매미처럼, 뜬금없고 이질적이고 그 의미를 전혀 모르겠다. '파도 속의 매미처럼' 이라는 비유가 떠오른다.
결국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타인이 나를 납득하고 받아들여주는 것인가? 하지만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을, 내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남들에게 이해받기 위한 발악이 아니라는 것만은 안다. 앞으로 계속 생각해야 한다. 내가 맞는 것인지,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정말 답을 구하려는 수학자처럼, 계속 검토하고 노력해보아야 한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이 글쓰기 실력도, 폭발하는 생각을 주어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겹치는 내용으로 여러 번 다르게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수정하지 못해도 기록해두어야지. 언젠가는 더 나은 글을 쓰고 읽을 그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