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게 약
생각이 많다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다. 생각이라는 건 끈적하고 폭탄처럼 터지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단순할수록 깔끔해지고, 명확해지는 것 같다.
무언가를 경험할 때, 신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하며 두려울 때도 있다. 후회되는 경험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중에서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에 대해 매우 후회스러움을 느낀다.
우리의 경험은 늘 즐거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무심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말도 안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나비효과처럼,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처럼,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이다.
또 다른 경험들도 있다. 매운 것을 먹어보고 아픔을 느끼는 것처럼, 다쳐보고 나서야 아픔을 알게 되는 경험들도 후회를 부른다. 그중에서 조금 더 심도 깊게 말해보자면, 이별할 때의 마음이나, 인연을 끊어낼 때의 마음 같은 것, 혹은 잡지 말아야 할 손을 잡았던 후회 등이 있을 것이다.
어여쁜 학생 시절에 나는 어리석은 선택과 안일한 판단, 얕은 생각으로 쓰라린 경험을 한 바가 있다. 비밀이라는 것은 본래 나 이외에 한 사람만 알더라도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어여쁜 나의 친구와의 인연을 그렇게 잃었고, 그 아이의 마음도 같이 망가뜨려 버렸다. 그 과정에서 나도 함께 망가졌고, 우리는 서로를 알면서도 때로는 모르면서 스스로를 짓밟고 할퀴었다.
초등학교를 함께 다니고, 중학교를 따로 갔지만 우리는 잘 지냈다. 그래서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그것만큼 최악의 수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참 맑았던 아이였는데, 결론적으로 전부 주변에 사람을 잘못 둔 것이 문제였다. 그 문제의 화근인 잘못된 사람이 나일지라도 말이다.
내 친구는 남자친구로 인해 집착과 협박을 당했고, 그 와중에 절친했던 내가 그 상황에 끼어 있었다. 나는 그 비밀을 감춰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그릇으로는 그 상황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 힘든 내 마음을 토로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그래서 비밀로 하고 싶었을 아픔은 소문이 되어 퍼질수록 색칠되어 날아다녔다.
어떤 아픔은 처음에는 볼품없고 탁했는데, 날이 갈수록, 사람들을 거치고 손을 거치면서 뻗어나갈수록 형형색색으로 바뀌어 맑고 빛나게 되기도 한다. 너무 빛나서 사람들은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커지고 화려해져서, 이게 뭔지 모를 만큼 달라져버리기도 한다.
특히 재주가 좋은 사람이 손을 대면, 더욱 보기 좋게 바뀌기도 한다. 우리에게야 보기 좋고 구경할거리가 되는 게 흥미롭기만 하겠지만, 아픔의 당사자에게는 나의 아픔이 여러 사람에게 주물럭거려지고 변형되는 것만큼 수치스럽고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시절은 친구밖에 없는, 그래서 친구를 믿을 수밖에 없는 시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상처받았을 것이다. 고작 10대의 끝자락에 다다른 시기였는데, 나의 잘못으로 인해 그 나비효과를 다 감당해야 했을 그 아이가 너무 안쓰럽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안쓰러워할 자격조차 내게 없는 것 같아서, 이 감정마저도 죄책감이 든다.
예쁘고, 행복한 것들만 잔뜩 경험해도 부족했을 시절에, 우리는 왜 그렇게 상처받아야만 했을까. 너는 왜 그렇게 상처받아야 했을까. 너는 왜 치유받지 못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을까. 나는 왜 경험하고 나서야 비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나는 왜 상처 주고 나서야 너의 아픔을 두 눈으로 보고, 괴로워하고 그 괴로움을 맛보고 나서야 달라졌을까. 나는 달라진 게 맞을까? 나는 왜 상처 주지 않고, 그런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지낼 수 없었던 걸까?
그런 경험은 겪지 않았으면 했는데, 이 모든 말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왔다. 나에게 양분이자 독이 되어준 그 경험은 이중 칼날처럼 나를 베어 가면서 나를 막아내는 것들도 함께 베어버린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경험은 이런 아픔을 끊어내는 방법을 찾거나 실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차가운 물속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따뜻한 바깥을 늘 동경하면서도, 찬물에 익숙해진 내 피부가 따스함을 뜨거움으로 느끼는 것을 두려워하고 낯설어하여 결국 다시 그 찬물 속에서 불편한 동거를 이어간다. 익숙해진 우울만큼 빠져나오기 힘든 것은 없는 것이다.
우울에 적셔진 것에 오래 머문 나에게는 안락하고 평온한 마음이 마치 내가 아닌 것 같고, 문제가 생긴 것처럼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곤 한다. 문제가 반복되고 그 문제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그 문제에 잠식되는 것 같다.
이런 경험은 겪지 않으면 공감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공감을 받을 필요는 없다. 이런 공감대는 내가 별난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주는 동시에, 같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기대어 볼 사람이 존재함을 알게 한다. 그러나 그 축축하고 차가운 안락함을 즐기며 잘못된 판단 아래 빠져나오기를 거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