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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과장 Sep 15. 2024

내 푸르른 날의 악동같은 동반자

내가 파도속의 매미가 된 이유

이윽고 매미소리가 그쳐가는 여름의 진짜 끝이 찾아왔다.

밤에는 여치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고요하고

낮에도 귀를 찌르는 매미소리가 많이 잦아들었다.

내년 여름까지 또 다시 헤메이겠구나. 맴맴 소리를 그리워 하겠구나


매미의 시체가 강가에 떠올라 흘러가는게 보였고,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걸까 한참을 그 작은 몸집에 눈을 고정시켜본다. 

'잘가 매미야 더 넓고 깊은 곳을 향해 잘가 매미야'


다 울어 생에 여한 없는 너의 껍데기, 푸른 바다 향해 거대한 물길에 몸을 맞기고

다 울어 생에 여한 없는 너의 영혼은, 푸른 하늘 향해 거대한 바람에 몸을 맞겼겠지

정처없이 떠돌다가 니가 원하는 자리를 찾으면 

니가 원하는 것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빌어볼게


거기서 우리 또 만나도록 하자. 

언젠가 그렇게 서로 마주치는 순간이 있을것이다.


매미는 큰 강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

그렇게 거대한 바다로 끝끝내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그 파도속에서 정처없이 떠돌다가 

어느순간, 사라질 것이다.


-


내 나이 20대 초반 무렵,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울증과 불안증으로 고생하며 다니던 신경정신과에 뜬금없이 ADHD 검사를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자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느끼고 있었다. 내가 ADHD를 앓고 있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껴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난과 꾸짖음 때문이었다. 


항상 튀고 과격한 행동은 물론이거니와, 집중을 하지 못하고 눈길이 가는 것이라면 사람이든 무엇이든 빤히 쳐다보고, 에너지가 매우 넘치기도 했다. 또한 말이 빠르고 끼어들기를 좋아하며, 선생님이 발표할 사람이나 대답해 볼 사람을 고를 때 한 타이밍 앞서 손을 들곤 했다.


연습에선 꽤 잘했지만, 실전에서는 대부분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고, 남들은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부담스러워 했다.


나는 어른들에겐 악동 같은 존재였다. 컨트롤이 도저히 되지 않는 아이,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긴 잔소리를 참기 어려워 하고, 여자애 같지 않게 웬만한 남자애들보다 과격하고, 충동성을 동반한 꽤나 대담하고 도전적인 성격이라서, 어지간히 사고도 많이 치고 다쳤다. 


충동적으로 행동해서 친구들을 과격하게 대했고,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 친구 어머니께서 우리 아이를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말하셔서 충격받은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 과격한 행동이 그 유난히 소극적인 아이에게는 버거웠을 것이다.


학창 시절 내내 크고 작은 따돌림과 배척을 종종 당했다. 나는 놀림과 비난에도 때로 나를 향한 화살이 웃기다며 웃어대는 터라, 그런 특이했었던 것이 다른 이들을 집단으로 묶었던 것 같다.

괴롭힘을 괴롭힘으로 잘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 당시에는 참 다행이었다.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단체 토론을 하면서 느꼈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반응과, 말하면서 나도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목적지와 결론을 찾지 못했다. 


남들에게 이해시키려고 구구절절 말하다 보니 내가 내 생각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중학교까지만 다니던 영어학원 선생님이 "너는 그릇이 남보다 좀 작게 태어났으니, 당연히 많이 안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계속 담아서 그릇을 넓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 것 같다. 나를 5년간 보셨으니, 다르다고 느끼실 수밖에.


학업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알았다.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은 전교 상위와 하위권 학생의 점수보다 편차가 극적이었다. 

잘하고 좋아하는 과목은 전교 1등이 필기를 베끼러 올 정도로 열심히, 잘 했고, 어느 좋아하는 과목은 수업 시간에 졸아도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러나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과목은 아무래도 풀 수 있는 문제가 1개도 없었다. 특히 수학은 몇 개 맞추기도 어려웠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 선생님께 질문하러 교무실로 내려가 질문을 이어가고 있는데, 수학 선생님께서 화들짝 놀라시며 질문을 다 하러 오냐며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 선생님은 그 모습에 "얘 공부 잘하는 애 아니에요?"라고 하셨는데, 그 상반된 분위기와 서로 황당해하는 모습이 너무나 웃겼다.


수학은 도통 늘지를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수학학원을 잠시 다녔는데, 선생님이 나만 잡고 1:1로 알려줘도 나는 응용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 태어나서 그렇게까지 억울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억울하고 분통했다. 난 정말 모르겠고, 안 되는데 같은 강의실에 있는 동급생 애들은, 나와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온 아이들은 너무나 잘했다.


재능의 차이일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노력도 재능이라는 걸 느꼈다. 진짜 재능은 노력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나는 그런 게 없다는 것을... 그때 남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느낌 자체를 선택지에 넣지 않으니, 남들은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다.


12년 초, 중, 고 생활에서 나만큼 대단한 점수 편차를 가진 사람은 찾기 힘드리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건 참 잘했다. 재능이 있어 보이는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늘상 좋아하는 걸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싫어하고 못하는 것도 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내내 우울증이 심했다. 남들은 조금 이상한 애로 봤을 것이다. 학교도 잘 안 나왔지만 노는 건 또 좋아하는 얘. 2학기부터 등록금 때문에 정신 차렸지만, 여전히 감정적으로 불안정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잠을 자는 게 어려웠다. 엄마가 늘 자기 전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한참을 그 이야기 대한 상상에 빠져 벽도 만지고 뒤척이다 자곤 했다. 

가끔은 하고 싶지 않은 생각들도 많이 났는데, 멈출 수 없었다. 소똥더미에 묻힌다든지, 푸세식 화장실에 빠진다든가, 지네들이나 거미가 몸을 타는 그런 생각들 때문에 괴로웠고 지금도 똑같다.


그렇다.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사람이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우울증이 한창 심할 때는 며칠간 잠을 못 잤고, 하혈을 해서 산부인과에 가니, 날 앉혀놓고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잠을 못 주무시냐고, 그게 원인이라고 했다. 호르몬 불균형 생긴거라고.


그래서 신경정신과에 갔고, 우울증보다 불안 장애가 심하다는 결과와 수면제 등 여러 가지 약물을 처방받았다. 그렇게 1년 정도 뒤에 나는 뜬금없이 ADHD 검사를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던 것이다. 병원에서 어린이들이 그런 치료와 검사를 한다는 것을 보아서, 물어봤더니, 우선 설문지를 주길래 받았다.


소지품의 잃어버림에 관한 질문, 다치거나 멍이 드는데 왜 그런지 모를 때가 있냐는 질문 등,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해당하는 게 많았던 질문지다.

 대부분 해당되었다. 그리고 예약을 잡아서 검사를 했다. 


컴퓨터에 나오는 것들을 클릭하는 등 검사였던 것 같다. 한참을 하고 결과를 바로 들었는지 며칠 뒤에 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특히 충동성이 강하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많은 책과 논문을 뒤졌다. 하다 보니 통계를 보는 과제의 주제도 관련된 주제로 제출했다. 그리고 이 말이 기억이 난다. 

'이 병은 손이 똥에 다가가는 것을 알지만, 똥에 다가가는 손을 멈추지 못하는 것과 같다.' 뭐 대충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관련 에세이? 그 서적에서 나는 '특히 충동성이 강하다'라는 말을 겹쳐 보았다.


안 하려던 행동을 어쩌다 해버리고, 생각 전에 몸이 움직이는, 특히 마우스 클릭을 잘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서 아... 그런 거구나 하고 납득되는 상황들에 위안과 속상함을 복합적으로 느꼈다.


내가 이 병으로 감정이 요동친 것은 제대로 판정을 받았을 때도, 성인은 완치가 힘들다는 논문을 보았을 때도, 우울증과 불안증을 동반하여 그 원인이 이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아니다.


처음 콘서타를 먹고 제대로 효과를 보았을 때, 남들은 다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남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몸소 느낄 때였다. 

복잡하고 엉킨 실같이 생각을 무한대로 폭발하듯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부하고 누워서 책을 보고 정리를 했다. 고요한 내 내부는 그 약효가 떨어질 때쯤 요동쳤다.


억울하고 위안되었다. 기쁘고 슬펐다. 내 탓이 아니라는 다행, 그러나 나는 정상이 아니라는 억울함. 그간 받아왔던 질책과 겪어왔던 어려움에 무언가가 벗겨져 나가는 동시에 새로운 무언가가 나를 감싸는 기분을 느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약을 먹고 용량도 올렸지만, 이제는 처음과 같은 마치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효과를 느끼지는 못한다. 약을 먹고 있을 때는 효과가 있긴 한 건가... 싶다. 그러나 먹지 않으면 이 악동은 깨어난다.


평생 함께할 이 악동과 나는 오늘도 투닥거리고 있다.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키우는 것 같다. 남들보다 스스로를 많이 컨트롤해야 하니까, 악동 같은 거다.


납득이 되지 않고 이상했던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 나의 악동. 내 푸른 청춘에 네가 끼여 있다는 사실이 퍽 짜증나지만, 내 여린 어린 시절에 네가 끼여 있어서 내가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악동은 내가 아니라 ADHD 너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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