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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과장 Sep 25. 2024

달달한 약 바르기

약이 늘 쓰다는 말은 거짓말

마음이 너무 가난하고 바스라질 것 같은 날이면, 나는 사진첩을 꺼내 빛나던 기억과 소중했던 추억들을 스스로에게 처방한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사진과 편지, 일기와 영상으로 남겨진 수많은 추억들은 세상 그 어떤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숨이 붙어있다는 이유로 연명하는 것 같은 날에도, 내가 지금 이 모습으로 존재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때는 왜 행복했는지,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준다.


어른들은 늘 몸에 좋은 건 쓰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 얼어버린 손에 내미는 따뜻하고 달달한 자판기 코코아 한 잔, 아침에 매어주는 목도리와 현관에서부터 맡을 수 있는 맛있는 된장찌개 냄새, 그리고 옆에 있어준다는 한마디 같은 것들. 이 달고 따뜻하고 기분 좋은 것들이 약이 된다고 생각한다.


정말 찢어지는 슬픔에 주저앉아 목놓고 절규하는 상황에 놓여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웃어보일 수 있는 것은 내가 다시 행복하길 바라는 타인의 사랑스러운 바람이 찢어진 마음에 연고가 되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수많은 약을 먹으며 살고 있지만, 작은 알약 하나에 기대며 살기에는 세상과 삶이 너무 각박하기 짝이 없다.

어른들은 늘 쓴 것이 몸에 좋다며 쓰고 따가운 말을 많이 해준다. 그러나 그 말들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되어 우리가 두통약과 진통제를 먹게 하고, 수면제와 진정제를 먹게 한다. 내가 필요한 약은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뿐인데, 이미 충분히 맛본 쓰고 따가운 말들로 인해 내가 진통제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

그저 따뜻했던 말 한마디를 다시 되뇌며 상처 입은 마음에 고루고루 바르고, 웃어보이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삼켜 쓰린 속을 내린다.


그리고 먼저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내밀어 본다. 쓴 독만 주는 사람들은 그것밖에 줄 것이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내 얼마 남지 않은 약과 연고를 내밀어 그들에게도 발라준다. 쓰고 따가운 말밖에 남지 않은 당신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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