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꼬맨틀'이라고 검색하면 단어 찾기 사이트가 나온다.
어떤 단어나 입력해가면서 유사도가 높은 단어들 위주로 입력하여 정답을 맞추는 방식인데, 시간 떼우기 정말 좋다. 정답을 맞췄을 때의 쾌감은 기분을 좋게 한다. 이렇게 정답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문제의 답을 찾을 때는, 명확한 답이 있다는 확신으로 인해 비교적 안정적인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명확하지 않은 질문에 정답을 찾아낼 때는 혼란이 만연하다. 내가 답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 이런 경우인데, 혼란과 불안감에 사로잡히기 쉽다. 내가 찾아낸 답이 정답에 가까울지, 이 정답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그리고 정답이라 생각한 답으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답이 정해지지 않는 문제들은 때로 어떤 답을 내놓아도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떤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떠올렸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에 가까워지지 않을 때가 바로 그러한 경우다.
이해하기 쉬운 예로, 어릴 때 부모님께 여러 번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장난치다가 사고를 쳤을 때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경우 어떤 방법을 떠올려도 혼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어렵다. 아이들은 혼나지 않아야 하는 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러한 상황에서의 정답이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고 혼나며, 다음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임을 안다.
어릴 때는 그 상황을 빠르게 벗어나는 것, 즉 혼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금만 경험이 쌓이면 부모님이 원하는 정답에 최대한 가깝게 행동하는 것이 상황을 빠르게 벗어나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혼나지 않는다는 답은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찾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답이 될 수 없다. 정답은 '다음에도 이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어릴 때는 그것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답을 내 뜻대로 정의하고 방향을 정해도 그것은 정답이 아닐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정해진 답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정답이 아닌 답에서도 더 좋은 결과나 의외의 장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사는 것은 '맞다'와 '아니다'로만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정답이라는 것은 답을 정답과 아닌 것으로 나누지 않고 여러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정답을 정의하지 말아야 하는 것. 그것이 정답이 아닐까 싶다. 무지개의 7개 빛깔중에 좋고 나쁨을 선택할 수 없는 것 처럼 정답은 개울가에 널려있는 수 많은 돌맹이중에서 내 눈에 뛴 가장 적절한 돌맹이를 집어 드는 것과 다름 없다고 본다.
삶의 터널은 미로나 사막 같아서 이미 지나온 길을 뒤돌아가려 해도 정처없이 다시 헤메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옛날 하늘에 빛나는 별 하나를 따라 사막을 건너던 먼 곳의 그들처럼 내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에서 정답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다. 막힌 길 앞에서 되돌아가도, 절벽 끝에서 다리를 만들어도 다 답을 내놓은 것이고, 그것을 정답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미로를 뛰어다니고 사막을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며, 절벽 앞에서 튼튼한 다리를 위해 손이 부르트게 노력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늘 선택과 해결에서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어떤 답을 찾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정답이 아닐까 싶은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