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생명탄생 아래 주어받은
기분좋게 취한 나를 바레다 주는 길, “와 밤이 되니까 도로가에 꽃이 진짜 이쁘다” 한 마디에 그가 옅은 미소로 꽃구경 하는 나를 바라봐준다.
귀가 길에 기분 좋게 취해서인지 달보다 노랗게 핀 꽃이 마치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것처럼 반짝반짝 피어났다.
술김에 눈이 돌아버렸나 싶었지만, 이름 모를 꽃이 정말 예뻐 보였고, 기분이 좋았다. 육교 아래 피어난 민들레와 아파트 화단에서 제비꽃을 찾는 날에는 '마루 밑 아리에티'를 찾은 것처럼 묘한 설렘이 솟아나곤 했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에 치이고 지쳐 돌아오는 날에 '내가 뭘 하는 거지' 하고 얼마나 많이 생각했던지. 자기 개발이니 뭐니 해도 결국 사회는 능력 있는 자를 선택한다. 재능 있는 자가 노력까지 해버리면, 나 같은 사람은 길가에 치이는 돌멩이, 껌봉투 그뿐.
어릴 때는 재능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나도 되는 것 같은데?'라는 애매한 재주에 빠져 질투와 열등감, 그리고 상실을 경험하기도 했다. 나만 성장하지 못한 것 같고, 나만 낮은 수준에 머무른 그 기분은 참담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비교와 욕심에서 비롯됨을 안다.
나조차 모르던 나의 사랑스러운 능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를 사랑의 눈으로 관찰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 또한 능력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감사로 남겨두자.
어쨌거나 내 욕심은 타인의 재능이나 능력이 아니니까. 그래서 글을 쓰면서 나는 내 능력을 사랑해본다. 사소한 것을 발견하고 사랑할 줄 아는 능력에 대해, 그리고 엉망진창 와르르 글로 쏟아내는 실행력에 대해, 이것도 내 능력일거라고, 그걸 보고 누군가가 좋아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반년 전, 집에서 먹고 남아 화분에 뿌린 레몬 씨앗은 지금 내 턱을 칠 만큼 성장한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
처음엔 무턱대고 나오는 씨앗마다 심어대서, 무슨 나무인지는 허리만큼 자랐을 때 눈치챘다. 탁 쏘는 레몬향과 가시들이 이파리를 만질 때마다 손에 베어 나는 걸, 그 순간들이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언젠가 꽃이 피면 많이 이뻐해줘야지. 창문 넘어 하늘이 가을 맞이로 옷 갈아입기를 한다. 이렇게 적절한 단어를 골라 적을 수 있음이,
이 모든 게 너무 행복한 9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