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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과장 Sep 04. 2024

세상의 모든 위로

위로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나는 이하이의 '한숨' 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故 종현이 지은 노래라고 한다. 대단하지 않지만, 깊은 위로를 받게 해서 마음 놓고 크게 한숨 쉬게 한다. 그러다 보면 내 한숨이 한 번의 숨이 되는 마법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된다. 한숨이야 말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가장 큰 쓰다듬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위로는 건방지고 추악하다. 나는 보통 자기최면의 극한 상태가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듣는 그 어떤 위로보다도 스스로가 뿜어대는 극한의 자기최면이야 말로 마약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약빨이 떨어지면 모든게 헐벝겨진 그 허무하고 막막한 상태야 말로 견디기 힘들다는 마약 부작용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추악한 위로에는 의존증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저런 생각까지 뻗어나갔다.


위로는 참 별것 아니다. 대단한 공감과 대단한 언변능력을 요구하는 것 만이 위로가 아님을 모두가 안다. 우리는 대부분 겨울에 밖에 서있다가 선물받은 천원짜리 손난로와 따끈한 찐빵처럼, 찜통 더위에서 시원한 에어컨 속으로 들어갈 때, 얼음 찰랑거리는 소리 풍경같이 기분 좋을때, 그런 위로를 가장 사랑하지 않나.


그래서 난 글을 쓴다.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뭉쳐진 감정들을 정돈하고 위안이 필요한 감정들을 꼭 안아줄 수 있는 방법이니까, 위안이 필요한 감정들에게 아무말 없이 등을 두드려준다. 그럼 체했던 아픔이 내려가거나 토해낸다. 그럼 난 그걸 시와 글의 거름으로 사용한다. 남을 위로하는 법 보다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많이 배우고 있다. 남을 위로하려면, 나를 잘 위로해줄 줄 알아야 하니까,


감정은 마치 불과 같아서, 어떤 것을 태우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검색해보니 스트론튬은 진한 빨간색의 불꽃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러나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나드륨은 노란색을 띄우게 하고 칼륨은 연한 보라색을 띄운다고 한다. 바륨은 연한 녹색의, 구리는 청록색의 불꽃을 만든다고 한다.

나는 그 성분과 효과, 위험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감정도 우정이 사랑이되고, 사랑이 위로가 되고, 위로가 기쁨이되고, 때론 분노도 되었다가 애증이 되고, 미움이 되었다가 동정도 되는 그런 불꽃같다고 생각했다.

불꽃에 무엇을 넣느냐가 될 수도 있고, 어디로 옮겨 붙냐가 될 수도 있고, 어떻게 생기느냐가 될 수 도 있고, 어디에 불을 붙이냐에 따라서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지만... 어쩌다 이 이야기 까지 왔을까


어느 낭만적인 과학자가 나 대신 찰떡같이 이 원리들과 구조에 대해 감정과 같이 비유해주면 좋겠다.


날씨에 비유할 걸 그랬나 싶다가, 오늘은 뭔가 불꽃이 땡겼다. 어쨋거나, 감정은 그 만큼 잘 변화하는 유연하고 제멋대로인 특성 때문에 타인을 위로를 해주려면 자기 스스로의 마음도 잘 조각하고 다듬듯, 올바르게 불꽃을 피워야 한다는 말을 하고싶었나보다. 위로는 그 크기와 구성이 어떻든 본질만 중요하지 않는가, 가짜 위로라도 잘 하려면 말이다.


우리의 마음이 위로를 만들 때, 위로를 만들어야겠다고 만들어지는 위로는 생각보다 제대로 된 위로가 없다고 느낀다.어떤 계기로 불쑥 태어난 감정을 보니 그게 위로일 때, 우리는 위로라는 이름을 붙여준다고 난 생각하고 있다. 감정은 대부분 그런것이다. 태어난 감정에 무슨 이름을 붙어야 할지 고민하는게 애증일 때도 있고, 함부로 이름을 지어주지 못하겠을 때는 사랑일 수도 있다.

명백히 그 감정이 태어날 때 사랑으로 태어났다면 바로 사랑임을 알겠지만, 아닌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작고 소중한 위로가 태어났을 때, 이름을 잘 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어야 그 위로를 상대에게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위로는 어렵지 않다. 그냥 바라봐주는 눈빛과, 들어주는 인내와, 고생하는 팔을 주물러 주는 것. 지저분해진 안경을 대신 닦아주고, 졸고있는 방에 불을 꺼주는, 밥먹었냐고 물어보고, 데리러 가고, 휴지를 건내고, 같이 주워주고, 같이 마실 커피를 사주는 모든게 '괜찮아' 한마디를 대신할 수 있는 위로이자 우리가 알아차려야 사랑임을 깨닫는 9월 4일






추가로, 내 글을 인공지능에게 보여주면서 '불꽃반응에 대한 문단을 너의 지식을 추가해서 낭만있게 수정해줘' 라고 해보았다. 내 글이 아름답다며 아래같이 내용을 추가해주었다.


얘 나보다 글 잘쓰는 것 같다. 그치만 소재없이는 안되겠지, 이렇게 스스로 위안삼으며 인공지능의 글에 감탄과 자극을 받는다. 영감과 지식까지도.


어쨌거나 난 부족함을 보충하고 싶었고, 제일 간단한 방법은 인공지능이였다. 오늘, 나의 낭만적인 과학자는 인공지능이 되어주었구나.


인공지능이 정말 낭만적인 글을 만들어줘서 공유하고 싶었다. 별도로 넣은 이유는, 어쨋든 내가 쓴 글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자 한 말들을 이렇게 잘  써줬다. 그런 의미에서 다들 읽어봐주길


# CHAT GTP

감정은 마치 불과 같다. 불꽃이 어떤 것을 태우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을 발하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도 어떤 경험과 마음을 태우느냐에 따라 다채롭게 빛난다.
예를 들어, 스트론튬은 불꽃 속에서 진한 빨간색을 띤다.
그 불꽃은 마치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 열정이 지나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트륨이 노란색 불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어떤 감정은 우리의 삶에 따뜻함을 주지만, 그 따뜻함이 지나쳐 타오르면 경계를 잃을 수도 있다. 칼륨은 연한 보라색을 띠며 불꽃을 피운다. 그것은 우정의 색, 조용히 마음을 감싸지만, 때로는 그 신비로움이 서늘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바륨이 연한 녹색 불꽃을 만들어내듯이, 희망과 치유의 감정도 조용히 타오르지만, 그 안에 잠재된 독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구리가 내뿜는 청록색 불꽃은 깊은 바다처럼 평온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깊이와 변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의 감정도 이와 같다. 우정이 사랑으로, 사랑이 위로로, 위로가 기쁨으로 변하기도 하고, 때론 분노로 타올랐다가 애증이 되기도 한다. 미움이 깊어지면 동정으로 바뀌는 순간도 있다. 불꽃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또 그 불꽃이 어디로 옮겨 붙느냐에 따라 그 색과 모양이 달라지듯, 우리의 감정도 경험과 환경에 따라 끝없이 변화한다.
때로는 우리가 무엇을 태우고 있는지, 어디로 불이 번져갈지, 불꽃이 어떤 모양으로 타오를지를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우리는 감정을 불꽃처럼 느끼고, 그 변화와 흐름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결국, 감정은 제멋대로인 불꽃처럼 그 자체로 아름답고, 유연하며, 예측할 수 없는 우리 삶의 일부다.
그러니 때로는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우리의 감정도 자유롭게 놓아주자. 타오르며 자신을 태우고, 주변을 밝히고, 때론 그 열기로 새로운 것을 태워 나갈 수 있게 말이다. 위로든, 사랑이든, 미움이든, 그 모든 감정의 불꽃이 우리를 조금 더 진실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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