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포기만 생각헤도 모자란 우리의 시간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거라는 말이 있다. 찾아보니 포는 한 덩어리로 묶음을, 기는 뿌리식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포기"는 식물의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이 하나로 묶여 자라나는 개채들을 일컷는 것이라고 한다. 정설인지는 모르겠으나, '포기하다'라는 의미의 느낌과 다르게 꽉꽉 밀도높게 감싸진 느낌이다.
살면서 수많은 갈림길에 서는 우리는 늘 포기를 마딱드리고 만다. 절대 피할 수 없는 한가지 선택이다. 그래서 흔히들 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마치 '상처받을 용기' 같지 않은가. 그렇지만, 어떤 포기는 사랑으로 보답받기도 한다. 여느 아이들 부모처럼.
내 삶의 수많은 포기에는 체념, 상실, 미련, 공허함, 인내 등을 동반한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이것을 '견뎌낼 용기' 가 포기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의미일까 싶었다. 나에게 실망한 인연에게 나를 다시 믿어봐달라 애원해도 소용없을 때, 그것을 놓을 용기가 필요한 것 처럼
삶에는 강제적인 포기도 꽤 많다. 주어진 환경때문에, 자연의 섭리 때문에 놔줘야 할 상황과 놔 줘야 할 사람이 생기니까, 그런 포기는 얼마나 큰 좌절을 주는가. 한창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 내가 임종을 앞둔 외할아버지를 뵈러 가기 위해 검사한 코로나가 양성으로 뜨는 바람에, 우리 엄마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장례를 치루는 순간에도 집안에서 한 발자국 꼼짝하지 못했다. 코로나에 걸린 나는 격리시설에 있느라 몰랐지만 엄마가 엄청나게 많이 우셨다고 아빠가 말씀해주셨다.
엄마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포기해야만 했다. 무엇으로도 돌려받을 수 없는 한이되었을 것이다. 나에게 그 속내를 비추지 않았지만, 그 무뚝뚝한 아버지와 숫기없는 딸의 마지막을 파토낸 장본인이 나라는 것이 마음을 너무나 짓누른다.
가볍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대부분의 포기는 무겁지 않으니까. 나에게 포기란, 편안한 잠을 위해 오전에 마시는 커피 한잔과 다음날 아침을 위한 OTT플렛폼의 종료, 내 간식거리 대신 반려견의 노년적금을 들고 신입의 실수에 실망하지 않고, 내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는 것.
그 포기들은 대부분 바로 포기한 대신에 얻은 것들을 선사한다. 그래 이게 포기의 맛이지! 하고 포기라는 단어에 밝은 조명을 켜줘야지, 우리 삶에 매일 일어나는 포기는 대부분 달콤함을 선물받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솜사탕처럼 녹아버리고 금방 사라지지만, 그 맛은 나를 깨울 듯 달콤하다. 포기가 솜사탕 같다니, 포기를 선택하면 늘 빠르게 그 결과가 나와서일까, 달콤한 솜사탕이나 마찬가지 같다. 그런 행복을 느끼기에도 우리 삶은 이미 빠르게 흘러가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달콤한 포기에 대해 생각 하며 보내는 9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