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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과장 Sep 06. 2024

규칙의 존재이유를 생각하며

나의 첫 기억은 4살 무렵, 나무집에서 조금 더 산과 붙은 주황색 네모벽돌집으로 이사 가는 날, 앞집 할머니네 토끼가 낳은 새끼가 밤새 구렁이에게 잡아먹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또랑가 앞에 구부정하게 쭈구려 앉아 땀을 식히시며 구렁이가 나를 잡아먹을 뻔 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100일 무렵에 엄마가 푸른 새벽에 일어났는데, 침대 아래로 무언가 들어가는 것 같아 아빠를 깨웠다고 한다. 그랬더니 젖냄새 맡은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와 있어 골프채로 앞 밭 너머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죽였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린 나이에 구렁이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박혔다.


'아 뱀은 무섭고 위험하니 도망가야 한다' 첫 번째 규칙이었다.


나는 바쁜 부모님과 자연 사이에서 자유롭게 자랐고, 동화책이 부모님의 교육을 대신하는 일이 많았다. 사회의 규칙과 통념 같은 것들 말이다. 유년기에는 모든 동화책을 좋아했지만, 특히 '늪의 괴물 보드니크'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무지개 물고기' 같은 것도 좋았지만, 나는 복잡하고 특이하며 예쁜 그림이 나오는 걸 좋아했다. 아마 그 시골집에 있던 책중에 내가 빠져드는 그림스타일은 대부분 문선사 세계걸작그림동화 시리즈였던 것 같다. 


정말 다 좋아했던 것 같다.


'수정의 상자', '마법사 노나 할머니', '로티와 자전거', '무지개의 전설', '크리스마스에는 역시 산타할아버지야' 등등 꼭 보았으면 좋겠다는 책이 너무 많다. 다 커서 읽어도 정말 재미있는 책들이다. 유명한 명작동화보다 이렇게 복잡한 그림이 있는 게 좋았다.


 많은 상상을 해볼 수 있으니까, 내가 읽던 동화책들은 요즘 나오는 책들보다 그림이 정교하고 복잡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더 좋아했나 보다. 때때로 도서관에서 유아도서 코너에 가봤다가 발견하면 참 반갑다.


그중에 아직도 신데렐라 책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가진 신데렐라 책은 그 그림이 너무 예뻐서 어른이 되어 봐도 황홀하다. 그러다가 '보거스'라던가 TV도 많이 보곤 했지. 보거스는 늘 말도 안 되고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했다. 그것은 규칙을 어기는 것이었을까? 그게 나쁜 행동들이었을까? 장난꾸러지기 짓이야 나빴지만, 늘 그랬던가? 하고 생각해 본다.


보거스가 유익하냐고 물어본다면, 오히려 그 자유로운 행동에서 느끼는 해방감과 실제로 저러면 안 된다는 개념도 잡을 수 있었던 수많은 애니메이션들이 외로운 산 아랫동네 어둠이 내리면,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굉장히 자유롭고 사고도 꽤 유연한 편이다. 탁월할 정도는 아니지만, 규칙적으로 생활하거나 풀어가는 건 정말 재능이 없는 편이다. 


타고난 성향 때문에 규칙대로 잘 못하는 경우들이 무조건 날 아프게 하진 않는 것 같다. 규칙을 어긴다기보다, 조금 비틀거나 틀리다고 말할 수 없는 애매한 느낌으로 마무리 짓는 것 같다. 가끔은 규칙을 깨는 것도 좋을 때처럼, 나는 규칙에 크게 구애받지는 않는 것 같다만, 그게 나의 깨지지 않는 규칙인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나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면접이나 자소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문항도 규칙에 관련된 게 많다. 곤란하지 않은가? 위에서 규칙을 어기거나 모두가 다르게 간다면 본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 


난 이 질문의 핵심은 규칙의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판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어떤 문제의 정답을 풀기 위해 굉장히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배운 과정에 따라 계산하게 된다. 이유는 제일 간단하고 편리한 방식이자, 구조적으로 배웠으니까, 그리고 출제자의 의도는 답을 맞히는 것보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해서 풀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학을 굉장히 못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답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은 조금 안다. 물론 모두 그런 게 아닐 수 있지만,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그런 구조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나도 아빠가 인도 수학을 가르쳐 주셨을 때 처음 수학에 흥미를 느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규칙이란, 지키고 안 지키고를 우선으로 하기보다 그 규칙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 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맞출 줄 아는 유연함과 현명함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규칙의 본질이니까, 생각난 김에, 비도 오니 오늘은 유난히 더 조심해서 운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는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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