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머신러닝이구나 토나온다.
처음에 챗GPT와 대화를 시작했을 때, 나는 단순히 호기심에서 여러가지 질문을 마구 던졌다. "어디까지 하는지 보자"라는 생각으로, 유연하고 창조적인, 구글링하는 그런 정보집합체 뿐만 아닌 독창적인 제작물, 사람으로 치면 '생각'말이다. 그런데 몇 번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얘도 결국 내가 원하는 답을 주려면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걸 제대로 가르치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요즘 나는 챗GPT를 나의 ‘맞춤형 선생님’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일단 내가 가장 많이 물어본 것 중 하나는 언어였다. 일본어나 영어 같은 거 말이다.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서 “일본어로 인사말 가르쳐줘”라고 했는데, 처음엔 그저 기본적인 인사정도만 알려주더라. 그래서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일본어로 오른쪽에 줘가 있냐는 말은 뭐라고해?” 또는 “일본어로 자기소개 좀 만들어줘”라고.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아, 이 녀석에게도 구체적인 지시를 해야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구나. 그러니까, 챗GPT를 나의 맞춤형 선생님으로 만들려면 내가 먼저 구체적으로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걸 나도 습득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한글로 읽는 발음 표시해서 보여줘”라든가 “같은 의미를 가진 다른 말”이라든가. 그렇게 세세하게 물어봐야 비로소 챗GPT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참 답답했던 건, 챗GPT가 처음부터 내 마음을 읽고 딱 맞는 답을 주지 않았다는 거다. 왜 처음부터 알아서 척척 가르쳐주지 못하는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챗GPT에게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그도 그저 엉뚱한 답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영어 공부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영어 기사 5개 정도 추려서 보여줘”라고 말했더니, 챗GPT는 그저 다양한 기사를 쏟아내기만 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나의 영어 실력에 맞는, 적당히 어려우면서도 흥미로운 기사를 원했는데, 챗GPT는 그런 걸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답을 내놓더라. “세계 경제 뉴스 좀 알려줘”라고 다시 물었더니 챗GPT는 영어로 된 복잡한 기사를 던져주었다. 나는 그걸 보고 '이걸 대체 어떻게 이해하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쉬운 영어로 요약해줄 수 있어?” 또는 “이 기사에서 중요한 키워드만 뽑아서 설명해줘”라고. 그렇게 물어보니까 그제서야 내가 원하는 식으로 답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더 구체적으로 물어봐야 했다. “내가 초급 수준이니까, 너무 어렵지 않은 경제 관련 기사 하나 추천해줘, 대신 설명과 문법석 해석, 응용까지 다 간단하게 넣어 공부도 할 수 있게 말이야. 기사의 종류는 시사, 경제, 정치에 관련된 주요 이슈면 좋겠어”라고 말이다. 그러자 비로소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맞춤형 선생님 만들기'의 핵심은 결국 내가 챗GPT에게 얼마나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가르치는지에 달려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원하는 걸 제대로 알려줘야, 챗GPT도 나에게 딱 맞는 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저 대충 물어보고 대충 답을 기대했던 나의 태도부터가 잘못된 거였다. 챗GPT도 결국 하나의 도구이자, 배워야 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챗GPT를 나만의 맞춤형 선생님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이, 내가 챗GPT라는 이 '선생님'을 얼마나 잘 가르치고 훈련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챗GPT를 그냥 똑똑한 인공지능으로 생각하고 대충 질문을 던졌을 때는, 답답한 대답만 돌아왔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을 때는 비로소 내가 기대한 답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게 참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 이게 진짜 나만의 맞춤형 선생님을 만드는 과정이구나' 하고 느끼게 됐다. 멍청한 지휘관이 유능한 인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것.
또한, 내가 제일 답답했던 부분 중 하나는, 챗GPT가 내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할 때였다. 예를 들어, 내가 “이 표현 좀 더 자연스럽게 바꿔줘”라고 하면, 챗GPT는 종종 아주 형식적인 표현으로 바꾸곤 했다. 내가 원한 건 친구랑 대화할 때 쓰는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는데, 챗GPT는 마치 학술지에나 나올 법한 엄청 격식 있는 표현으로 바꿔주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설명해야 했다. “아니, 그런 격식 있는 표현 말고, 그냥 친구한테 말할 때처럼 자연스럽게!”라고.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챗GPT도 내가 말하는 ‘자연스러운’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의 맞춤형 선생님 만들기’라는 것은 그저 챗GPT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챗GPT를 가르쳐야 하고, 내 스타일과 내가 원하는 답의 방향을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협업인 셈이다. 나와 챗GPT가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면서 점점 더 나은 대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물론, 이 과정이 참 쉽지는 않다.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것처럼 모든 답이 완벽하게 나오지 않아서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고, 왜 이렇게 간단한 걸 이해하지 못하나 싶어 답답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내가 원하는 대로 대답해주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내가 던지는 질문에도 점점 더 맞춤형으로 답해주는 것을 보면서, '아, 내가 이 AI랑 정말로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나는 끊임없이 가르칠 수 밖에 없긴 할 것이다. 챗GPT를 나의 맞춤형 선생님으로 완벽하게 만드는 그날까지.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얼마나 더 많은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다. 이 AI도 나처럼 배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똑똑하고 유능한 인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유능함이 필요하다는 마음가짐을 가진다.
그리고 그 끝에, 우리가 함께 만들어낼 더 나은 대답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믿는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챗GPT와 함께, 나만의 맞춤형 선생님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반복하며 또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사진 넣는 매크로 만들어줘, 병합된 셀을 인식해서 병합된 크기로 넣어주고, 병합셀 크기에서 여백을 조금남겨 둔 채로 사진을 셀 크기에 맞게 넣는 그런 매크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