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열이 나던지
들리지도 않을 상대방에게
운전석에 앉은 채로
운전 똑바로 하라고 소리나 치고 있다.
난생 처음 핸들을 잡았을 때
심장이 두근거려서
첫 연애 하는 연인들 손잡듯
그렇게 핸들을 쥐었는데
지금은 운전석에 앉아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를 내며
미친놈이니 정신이 이상하다느니
소리나 지르고 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독실
열받으면 주차장 운전석에 앉아
화를 삭히는 아버지들이
이렇게 이해가 될 줄이야
열받아 핸들을 마구 쳐대다가
실수로 클락션이 눌리면
그렇게 내가 바보 같아 보일 때가 없지
잘못도 없는 나를 왜 때리냐고
핸들이 나한테 소리 지르는 것 같아서
사람들에게
내가 때리고 있다고 고자질 하는 것 같아서
언젠가 우리 아빠
아무도 없는 도로 한편에 주차해 놓고
혼자 핸들에 머리 박고
둥그런 핸들에 걸쳐 꼭 잡은 손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우셨다 했었지
그렇게 큰 도로 한복판
아무도 모르는 작은 운전석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셨다 했었지
나 주차하고, 핸들에 기대
한참을 한숨 쉬고 울적한 맘 달래 보니
아빠가 기댈 곳 없어
차 핸들에 기대셨나 보다 싶었다.
기댈 곳이 핸들뿐이라니
얼마나 처량한지
빠르게 달리는 도롯가에서
누군가의 어깨 대신 핸들에 기대
나이 먹은 아저씨 어린애마냥
펑펑 우는 심정
그 순간만큼 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도 나를 못 보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을 순간에
그 외로움 속에서 속 편하게 우는 심정
꽤 든든하니 기댈만해서
나보다 낫구나 싶었다.
화나서 때리기만 했었는데
불같은 성정과 우울한 공기를
이 핸들에 다 풀어내는 내가 나쁜 것 같다.
외로운 퇴근길, 석양 때문에 눈이 부시다
핸들밖에 믿을 게 없어서
손에 힘을 꽉 쥔다.
이 순간만큼 믿을게 너뿐이었나 보다.
핸들 앞에서 가장 외롭고
핸들 앞에서 가장 솔직할 수 있다
그런 마음에 핸들을 잡으니
처음의 설렘은 없다만서도
손바닥의 감각이 남다르다.
참 튼튼도 하지
얼굴을 대고 있어도, 주먹으로 패도
손을 꽉 지어도 늘 똑같으니
화가 나나, 불안하나, 슬프나
너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