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우체국 근로 이야기
지난겨울에는 기차역에서 이번 여름에는 우체국에서 근로를 하게 되었다. 공공기관에서 일한다는 경험은 평생 동안 디자이너를 꿈꾸는 나에게 있어서는 행운과 같았다. 앞으로 살아가며 디자인 외에도 여러 일들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공공기관에서는 아마 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여름 우체국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과 공부가 되었다.
사실 이번 여름에 근로에서 모두 불합격 연락을 받았었는데 운이 좋게 시골에 있는 우체국에 지원자가 없어서 나에게 근로 제안이 왔다. 비록 학교에서 버스를 두 번 환승하고 먼 거리에 있기는 하지만 나는 제안에 바로 승낙했다. 우체국은 학교에서 정말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시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더 좋았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사실 번화가는 아니지만 사람도 적고 공기도 좋았고 이유 모를 여유가 느껴지는 장소였다. 국장님과 사무장님도 매우 좋으신 분들이었다. 사실 내가 머리가 길기도 하고 문신도 있고 해서 첫인상이 그렇게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편견 없이 오히려 의류학과 같다, 멋있다고 이야기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아침에 출근하면 항상 국장님이 핸드드립으로 직접 원두를 갈아서 내려주셨다. 원두를 갈면서 나는 향과 국장님이 직접 내려주신 커피는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편안함이 느껴졌다. 시골이라 사실 그렇게 일이 많거나 바쁘지는 않았다. 물론 가끔 바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같이 근로하는 형도 엄청 좋으신 분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착한 사람은 정말 처음 봤다. 물론 착한 사람들은 많지만 처음 본 날부터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친절하셨고 착하셨다. 착함을 배우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었는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야 하고 친절한 말투로 다가가야 하는지를 옆에서 몰래 배워나갔다. 하지만 역시 착함은 몸에 배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지금도 착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너무 어렵다. 그래서 항상 착했던 형이 멋있게 느껴졌고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우체국에서 물건을 접수받는 일을 했다. 시골이라 별로 없을 것 같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체국에 택배를 접수했다. 매일 오시는 분들도 있었고 가끔 오시거나 처음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가끔 성격이 강하신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들 학생인 나를 배려해 주셨다. 처음이기도 했고 가끔 실수도 여러 했는데 다들 서툴렀던 나를 이해해 주시며 오히려 괜찮다고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이번 여름에는 비가 많이 와서 우체국 앞에 도로가 다 잠긴 적도 있고 그 영향으로 정정이 된 적도 있고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런 사건들도 힘들지 않고 나에게 재미와 경험으로 느껴졌다. 지금까지 여러 일들을 했었지만 마음이 이렇게까지 편했고 행복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비록 출퇴근 시간이 길고 힘들었지만 그 역시도 좋았다.
나는 우체국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다양한 일부터 시작해서 국장님이나 사무장님과 여러 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었고 금융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주셨다. 하지만 내가 우체국에서 배운 것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여유이다.
나는 어떤 일이든 최대한 효율적으로 빠르게 작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아마 내가 성격이 급해서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체국에서는 항상 여유로움을 강조하셨다. 일이 바쁘고 손님들이 많이 오셔도 항상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일 할 수 있게 도와주셨고 강조하셨다.
사실 어떤 일이든 일이라는 것은 여유를 갖고 하기는 힘들다. 특히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면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한다면 어떤 장점들이 있는지 우체국에서 일하며 알게 되었다. 제일 큰 장점은 바로 일이 힘들지 않다는 것이었다. 일은 원래 힘들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많이 없기 때문이다. 다들 출근이 싫고 퇴근이 좋다. 그런데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하니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설레게 느껴졌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일은 힘들 수 있다. 일이라는 것은 목표가 뚜렷하고 반드시 그것을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니 더 이상 일이 힘들지 않게 되었다. 아마 시골에 위치한 우체국, 그리고 좋은 사람들 덕분에 여유를 가지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어떤 일도 우체국에서 배운 여유를 떠올리면 일이 좋아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힘들어서 가기 싫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에 일이 싫게 느껴지는 이유는 압박감 때문이다. 취미 생활은 못하거나 중간에 포기해도 괜찮지만 결국 일은 싫고 좋고를 떠나서 쉽게 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을 즐겁게 하라는 말은 솔직히 거짓말인 것 같다. 다들 쉬고 싶고 놀고 싶은데 어떻게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일에 있어서 마음을 비우고 여유를 가지게 된다면 일이 힘들게는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여유는 나의 노력만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