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온 나는 익숙하지만 잊고 싶었던 풍경 속에 서 있었다. 10년 전의 거리는 여전히 분주했다. 길가에 늘어선 작은 상점들과 허름한 간판, 사람들이 오가며 흘리는 대화 소리까지도 생생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나를 차갑게 맞이하는 듯 느껴졌다.
어릴 적 살던 동네의 골목을 걷다 멈춰 섰다. 그곳엔 여전히 작은 벤치가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벤치가 아니라, 그 벤치에서 함께 웃던 동생의 얼굴만 떠오를 뿐이었다.
“수진아...”
이름을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는 이 시간이 아닌 미래에 있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미래의 내가 잃어버린 과거 속에 있었다.
동생을 떠올릴 때마다 내 안엔 죄책감이 솟구쳤다. 그날은 나의 사소한 판단 미스로 시작되었다. 너무나도 평범해 보였던 하루가 비극으로 끝날 줄 몰랐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녀는 지금도 내 곁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기회가 주어졌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날로 돌아가 동생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대가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였다.
내가 서성이고 있는 동안,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민아!”
뒤를 돌아보니, 그 시절의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소년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어린 나는 내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안내자의 경고가 머릿속을 스쳤다.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거는 건 금지돼 있어. 네 행동은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시간의 균형이 무너질 거야.”
하지만 어린 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아저씨, 누구세요?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나는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야. 그런데 너, 지금 어디 가는 거니?”
질문이 금기일지 몰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어린 내가 가던 길은 바로 그 사고가 일어나는 장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수진이 만나러 가요. 오늘 같이 놀기로 했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한마디가 내게 모든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그날, 내가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어린 내가 자리를 뜨자, 나는 재빨리 뒤를 따라갔다.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 아니, 멈춰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옳은 선택일까? 과거를 바꾸는 것이 단순히 동생을 구하는 일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계속 따라가야만 했다. 과거의 무게가, 동생을 잃었던 그날이, 나를 이 시간 속으로 다시 데려온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