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민은 과거의 자신과의 대화 후 깊은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다녔다. 과거의 자신이 수진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지, 그 결과 현재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를 짓눌렀다.
시간 여행 장치를 손에 쥐고 있던 그는 문득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치의 한쪽이 미세하게 깜빡이며 짧은 알람 소리를 냈다. 그는 문서를 다시 떠올렸다.
"작은 변화가 일어날 경우 장치에 기록된 시간선에 미세한 파장이 감지됩니다."
"무슨 변화가 생긴 거지?"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장치를 쳐다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승민은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사진, 소파에 던져진 담요, 심지어 냉장고 안의 물건들까지도 하나하나 확인했다. 처음에는 달라진 점이 없는 듯 보였지만, 작은 액자 속 사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원래 사진 속에 함께 있어야 할 수진의 모습이 조금 흐릿해 보였다. 마치 그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처럼. 승민은 사진을 떼어 들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수진..."
그는 당장 장치를 들고 데이터를 확인했다. 화면에는 미세한 시간선의 변화가 표시되었다. 그리고 작은 주석처럼 기록된 문구가 있었다.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영향 범위: 0.05%"
"0.05%? 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전혀 알 수 없잖아..." 승민은 고개를 감싸 쥐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며칠 후, 변화는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늘 마주치던 빵집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늘 보던 점원의 모습도 어딘가 달랐다. 동료들과의 대화에서도 작은 차이를 느꼈다. 누군가 승진에 대해 농담을 던졌을 때, 다른 동료가 "승진? 누구야?"라며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뭐지? 이건 사소한 변화가 아닌데..."
그는 점점 불안해졌다. 과거의 승민에게 준 경고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현실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날 저녁, 승민은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익숙했지만, 대화 도중 이상한 점을 느꼈다.
"수진이 요즘 어때요?"
"수진이?" 어머니는 잠시 침묵했다.
"너 동생 얘기하니?"
"네. 수진이요."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수진이가 요즘 좀 다르지 않니? 우리 집에 와서 이야기 좀 해보자."
승민은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모님이 다급한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어머니는 수진의 방을 가리켰다.
방에 들어선 순간, 승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수진은 침대에 앉아 있었지만, 그의 기억 속 동생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낯설었고, 표정 또한 과거에 그가 알던 따뜻하고 밝은 모습이 아니었다.
"오빠?" 수진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같았지만,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승민은 동생과 대화를 나누면서 변화의 실체를 조금씩 깨달았다. 그녀의 행동과 말투, 기억까지도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가 단지 수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진은 과거의 사건에서 벗어났지만, 그로 인해 그녀의 삶은 다른 궤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그 궤도가 승민의 기억 속 시간선과 크게 어긋나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옳은 선택을 했던 걸까?" 승민은 속으로 되뇌었다.
그는 다시 한번 시간 여행 장치를 쳐다보았다. 화면에는 또 다른 메시지가 떠 있었다.
"시간선의 교차로 발생. 추가 변화 가능성: 78%."
승민은 이를 악물고 장치를 손에 꼭 쥐었다. 그는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과거를 바꾼 순간, 그의 삶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