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과의 대화 이후, 승민은 더 이상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동생의 목소리와 표정은 여전히 익숙했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사건과 시간의 흐름은 전혀 달랐다. 마치 수진은 그가 알던 세계와 조금 다른 차원에서 살아온 사람 같았다.
승민은 그녀가 방을 나간 뒤 장치를 다시 켰다. 화면에는 또 다른 경고 메시지가 떠 있었다.
"시간선의 균열 발견. 파장 범위 확대: 15%."
"15%라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장치를 조작하며 과거로의 균열을 추적했다. 화면에는 무수한 선들이 얽힌 복잡한 패턴이 나타났다. 그 중심에는 ‘10년 전 그날’이라는 단서가 있었다.
승민은 시간 여행으로 돌아간 과거의 날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가 던진 조언은 사소해 보였지만, 그것이 동생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작은 선택이 이렇게나 큰 변화를 불러올 줄은 몰랐어."
승민은 지금의 동생이 예전보다 훨씬 더 차갑고, 예민하며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의 현재는 과거의 미세한 변동으로 인해 왜곡된 현실의 조각처럼 보였다.
다음 날, 승민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집을 나섰다. 장치를 들고 도심을 걸으며 그는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를 찾아갔다. 그것은 바로 동생과의 마지막 다툼이 있었던 공원이었다.
공원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나무는 여전히 바람에 흔들렸고, 어린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승민의 눈에는 모든 것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는 벤치에 앉아 장치를 켜고 과거의 기록을 되짚었다. 화면에는 또 다른 문구가 떴다.
"균열의 시발점: 2014년 3월 15일 오후 3시 42분. 대상: 승민 & 수진의 대화."
"그날... 우리가 다퉜던 그날이었어."
승민은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수진은 자신이 그녀의 삶을 간섭한다고 생각했고, 그날의 말다툼이 그녀를 깊은 고독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번에 바뀐 시간선에서는 그 다툼이 없었다. 대신 그는 그녀에게 더 다정하게 대해줬고, 그 작은 변화가 새로운 사건들을 불러일으켰다.
승민은 장치를 통해 균열을 시각화했다. 그것은 마치 유리창에 생긴 금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균열은 단지 그와 수진의 관계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주변 세계의 다른 사건들까지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공원의 중심부로 향했다. 그곳에는 그날 수진과 대화했던 자리가 있었다. 벤치 위에는 그가 그날 가지고 있었던 노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이게 왜 여기에...?" 승민은 노트를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낯선 글씨체로 적힌 메시지가 있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조각이 바뀌면, 전체 그림이 왜곡된다."
메시지 아래에는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그것은 장치에서 본 균열의 패턴과 일치했다.
승민은 노트를 들고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며, 더 이상 이를 되돌릴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는 장치를 통해 무언가를 느꼈다.
장치가 다시 알림을 울리며 새로운 메시지를 보냈다.
"균열 복구 가능. 대가는 감수해야 함."
"대가...?"
승민은 화면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면,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장치를 손에 쥐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균열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게 어떤 대가든 감수하겠어."
승민은 다시 한번 장치의 빛에 몸을 맡기며, 균열의 근원으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과정임을 그는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