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민은 자신이 다시 현재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하지만 무언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익숙했던 아파트 단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고층 빌딩들이 낯설게 솟아 있었다. 거리를 걸으며 그는 이상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과거에서의 작은 변화가 현재에 미친 영향을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처음 달라짐을 느낀 것은 그의 아파트였다. 승민이 기억하던 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건물은 완전히 다른 번호로 되어 있었고, 이름조차 낯선 사람이 초인종을 눌렀을 때 문을 열었다.
“여기... 강승민 씨가 살지 않나요?” 승민이 조심스레 물었다.
문을 연 중년의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여긴 제가 10년 전부터 살던 곳입니다. 강승민? 잘 모르겠는데요.”
승민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흔적이 지워졌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어머니에게 연락했을 때였다. 통화 연결음 뒤에 들려온 목소리는 따뜻했지만, 그에게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말투였다.
“저기, 어머니... 저예요. 승민이에요.”
“누구...라고요? 아드님이라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그녀는 자신이 승민이라는 사람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승민은 전화기를 손에서 놓치고, 차가운 현실이 마음을 짓눌렀다. 과거의 변화가 단순히 주변 환경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 듯했다.
승민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손목시계처럼 들고 다니는 시간 장치를 꺼내 들었다. 자신의 과거를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러나 기계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을 조작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고요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장치를 살펴보던 중, 장치의 금속 표면에 작은 균열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그 균열 안쪽에서는 희미하게 빛나는 파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승민은 이 문제가 시간의 왜곡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과거에서의 행동이 지나치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장치가 손상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무얼 잘못한 거지...”
승민은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과거를 되짚어보기로 했다. 그는 기억 속에서 자신이 가장 크게 개입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의 그에게 전달했던 조언, 사고를 막기 위해 선택했던 모든 행동이 현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행동들이 정확히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가 걸음을 멈춘 것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함께했던 공원의 벤치 앞에서였다. 이곳은 과거의 자신이 동생과 마지막으로 나눈 이야기를 목격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원이 아닌, 낯선 상업 건물이 들어선 자리로 변해 있었다.
“이 모든 걸 원래대로 돌릴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으며, 복잡하게 얽힌 시간의 흔적을 풀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시간의 장치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과거의 행동이 남긴 파장은 승민의 존재를 지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의 흐름을 왜곡시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흔적을 되찾고 미래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시간 여행자의 흔적이 느껴졌다. 승민은 조심스레 다가가 보았다. 혹시라도 이 상황을 해결할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그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었다.
“어쩌면 이게 시작일지도 몰라...”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며, 새로운 실마리를 찾기 위해 다시 한번 결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