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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자와의 만남

by 라파엘다


승민은 사라진 자신의 흔적과 왜곡된 현실 속에서 점점 더 깊은 혼란에 빠져갔다. 모든 것이 자신이 알던 세계와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마리가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도시 외곽의 오래된 도서관에서 이상한 단서를 발견했다.


그 도서관은 과거에 그가 자주 다녔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더 크고 웅장한 형태로 변해 있었다. 내부는 조용했으며, 승민 외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책장 사이를 헤매다 한 권의 두꺼운 책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제목은 "시간의 조율자"였다.


그는 책을 펼쳤다. 내용은 시간의 흐름을 조작하는 방법,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왜곡과 그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내용을 누군가 직접 기록한 듯, 글씨체는 거칠었고 페이지 곳곳에 지워진 흔적도 있었다.


책장을 넘기던 중, 한쪽 구석에 흩뿌려진 잉크와 함께 적힌 문구가 눈에 띄었다.

"조율자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를 찾는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승민은 그 문장을 읽으며 묘한 전율을 느꼈다. 조율자란, 시간이 왜곡된 세계에서 균형을 바로잡는 자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 단서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결할 열쇠일지도 모른다고 직감했다.


승민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따라 도서관의 지하로 내려갔을 때, 오래된 금속 문이 그를 막아섰다. 문은 투박한 쇠사슬로 잠겨 있었지만, 그의 손에 들린 시간 장치가 빛을 발하며 스스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 장치가 문을 열 열쇠인 듯, 쇠사슬이 풀리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는 끝없는 어둠이 있었다. 승민은 두려움을 억누르며 한 걸음씩 걸음을 내디뎠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고, 그곳에는 작은 원형 테이블과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긴 망토를 두르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 놓인 시계 부품들을 조립하고 있었다.


“드디어 만났군.”

낯선 남자가 고개를 들어 승민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신이... 조율자인가요?” 승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그래, 나는 시간을 조율하는 자다. 네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큰 결단을 내렸다는 뜻이겠지.”


승민은 그에게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일을 설명했다. 과거로 돌아갔던 경험, 작은 변화를 시도했던 결과, 그리고 현재에서 자신의 흔적이 사라진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조율자는 승민의 말을 가만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단순한 직선이 아니다,” 조율자가 입을 열었다. “네가 과거에 가서 작은 결정을 바꾼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직선의 흐름을 비틀어버린 것이다. 네 선택은 단순히 너만의 미래를 바꾼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질서를 깨뜨렸다.”


“그렇다면... 이걸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까요?” 승민이 절박하게 물었다.


조율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간을 바로잡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네가 감당해야 할 대가와 책임을 요구한다. 네가 정말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느냐?”


“대가라니요? 어떤 대가를 말하는 거죠?”


조율자는 승민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네가 되돌리고자 하는 일은 과거의 결과뿐만 아니라, 현재의 네 존재까지도 다시 쓰는 것이다. 그것은 곧, 너 자신이 지금 알던 삶과 기억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승민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존재를 잃더라도 과거를 바로잡고, 동생과 가족을 구할 수만 있다면 그럴 가치가 있을까?


“나는 선택할 준비가 됐어요.”

승민은 결국 조율자를 향해 결심을 내비쳤다. 조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좋다. 하지만 네가 지금 내리는 선택은 되돌릴 수 없음을 명심해라. 이 장치에 마지막으로 힘을 불어넣을 테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균형을 찾는 건 온전히 네 몫이다.”


조율자는 손을 뻗어 승민의 시간 장치에 자신의 에너지를 주입했다. 장치는 새롭게 빛나기 시작했고, 조율자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려왔다.

“다시 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네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게 작동할 것이다. 잊지 마라. 네가 선택한 모든 것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승민은 장치를 손에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는 자신의 손에 주어진 새로운 기회를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며 조율자의 공간을 떠났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이 선택이 앞으로 어떤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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